공연기획자가 하는 일 4. 같이 할 사람들 모으기

공연을 위해 힘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by 김연정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 프로그램북을 사서 모으시는 관객분들은 아시리라. '이 공연 한 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구나!' 하는 것을. 나도 기획자로 일하기 전에는 무대 뒤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으리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들을 제외하고는 티켓을 찾을 때 마주치는 티켓마스터, 또 극장 안으로 진입하기 앞서 로비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극장 안내원, 하우스매니저분들을 마주칠 기회 정도였으니까.


1.jpg 제26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프로그램북

예전에 일했던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의 프로그램북이다. 공연팀을 제외하고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위해 참여한다. 다른 기획자분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참여했던 공연이나 축제 등의 홍보물은 모두 모아서 보관하는 편이다.


처음 기획자로 일을 시작해 공연을 올리게 되었을 때, 내 이름 세 글자가 공연 홍보물에 들어가는 것이 마냥 신기하면서도 기뻤던 기억이 난다. 기획자는 무대 전면에 나서거나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에 프로그램북에 이름 세 글자를 올리는 것 말고는 그 존재가 부각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프로그램북을 보면서 혼자 엄청 뿌듯해하고 행복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도 몰라주면 또 어떠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공연을 보신 관객분들이 행복하시다면 그것이 행복인 것을.

이 홍보물은 라이브라는 공연의 속성과 달리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이름이나 역할에 오타가 나지 않도록 검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십 번을 봐도 오타가 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송구스러웠는지 모른다.

책자를 다시 인쇄할 수는 없으니 이름을 넣어 제작한 스티커를 일일이 잘라 붙인 적도 있었다. 그 고생이 싫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오로지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탄식했을 뿐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잘라 붙인다고 해도 스티커를 붙인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오기 때문에 티가 날 수밖에 없는 법. 오타가 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지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는 공연에 참여해 주신 분들의 이름이 절대 틀리게 나오지 않도록 노력, 또 노력하련다.


2.jpg 축제 총괄로 일했던 제15회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 프로그램북


캐스팅은 어떻게?


"공연기획자가 출연할 배우들을 결정하는 거야?"라고 주변에서 많이 묻곤 하는데, 나의 경우에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었다. "저번에 ooo 작품을 봤는데 이 배우가 연기를 참 잘하더라고요." 혹은 "ooo 배우가 이 작품에는 적격일 것 같긴 해요."라고 의견 제시를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는 제작자, 작품을 쓴 작가, 연출자의 논의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오디션으로 배우를 선발하는 경우


캐스팅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으로는 '오디션'이 있겠다. 작품을 쓰는 작가나 연출이 특별히 염두에 둔 배우가 없다거나,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고자 하는 경우, 또는 작품에 딱 맞는 배역을 선정하고자 하는 경우 등등 다양한 이유로 출연자를 뽑기 위한 오디션이 개최된다. 오디션은 개최하는 기획사의 홈페이지나 SNS 혹은 오티알(0TR)과 같은 공연소셜네트워크, 혹은 각종 협회 등에 공지글로 올라온다.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모집하는 배역 인원과 캐릭터에 대해 소개하고, 오디션 일정과 방식 등에 대해 기재하는 식이다.


오디션은 다양한 배우들이 모집에 응하는 경우에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고, 캐릭터에 잘 맞는 인물을 선정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 사전에 작품 홍보를 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디션은 공연이 오르기 전에 작품에 대한 소개와 모집 인원에 대한 정보가 짤막하게 제시되기 때문에 향후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고, 어떤 배우가 선정될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오디션의 단점이라고 하면, 그전에 전혀 같이 작업을 해보지 않은 배우가 선발되는 경우 연출자와 배우가 서로의 성향과 장단점을 파악하고 호흡을 맞추는데 적응기가 필요하다는 점인 것 같다. 또 회사 면접과 마찬가지로 오디션도 짧은 시간 안에 배우의 실력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야 하는 만큼 한계점이 분명히 있다. 특히 실전에는 강하지만 면접에서 그만큼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배우분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비록 오디션에 탈락했다고 할지라도 그게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기력과 실력이 뛰어난 배우는 언제고 빛을 발하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 같으므로.



오디션 없이 출연자를 선정하는 경우


오디션 없이 출연자를 선정하는 경우는 작가가 집필을 할 때부터 염두에 둔 배우가 있거나, 혹은 연출자나 제작자가 그동안 눈여겨온 배우가 있어 바로 캐스팅을 결정짓는 경우다. 봉준호 감독하면, 송강호 배우가 페르소나로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연출자들이 오래 같이 작업을 하면서 호흡이 잘 맞는 배우들을 바로 캐스팅하는 경우도 있다.

극단 같은 경우에는 통상 소속 단원들이 작품에 출연하나, 단원 중에 특정 역할을 소화할 사람이 없는 경우에 한해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 경우도 있다.



오디션을 진행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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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합작으로 제작한 <내 땅의 땀으로부터>에 참여할 댄서와 연주자를 모집할 때는 오디션 공고를 블로그와 예술경영지원센터 구인란, 그리고 OTR에 올렸다. 또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댄서나 댄스컴퍼니 쪽에도 오디션 소식을 전했다. 작품과 국제 협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역량이 뛰어난 아티스트들을 모집하기 위함이었다.


예술감독인 알리와 함께 약 3일간의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개인 소개와 각자의 장기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즉흥으로 안무를 짠다거나 악기를 연주해보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오디션 일정이 길었고, 몸을 많이 써야 하는 미션들이 있어서 참가하신 분들 모두 굉장히 고생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때는 오디션 일정이 길고 힘들었던 만큼 최종 합격자를 가리는데 많은 고민을 했었다.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참여하신 분들과 같이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서류에만은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작품을 같이 빛내주시는 스태프분들과



작품을 같이 한 땀 한 땀 완성해나갈 스태프분들도 함께


제작사는 출연자 이외에 작품에 함께 참여할 스태프들을 모으게 되는데, 작품의 규모가 클수록 참여하는 스태프들의 숫자도 많을 수밖에 없다. 공연의 제작에 참여하는 연출, 조연출, 무대 디자이너, 무대감독, 조명 디자이너, 조명감독, 음악감독, 음향 디자이너, 의상디자이너, 분장사 등의 스태프들이 있고, 또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우스매니저, 어셔, 티켓마스터 등등의 스태프들도 있다. 이런 스태프분들도 함께 모으게 되는데 총 공연 제작비와 공연 제작 환경, 또 극장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공공극장에서 하우스매니저, 어셔, 티켓마스터 등의 인력을 지원해 주는 경우에는 따로 인력을 모집할 필요가 없다.


같이 일하게 될 스태프들은 경력이나 지난 작업의 결과물을 토대로 선정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잘 만들어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실력 있는 스태프분들은 업계에 두루 알려지게 되기 때문에 미리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사람 몸은 한 개이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계약은 정확하게


참여할 배우와 스태프들이 결정되면, 미리 협의한 내용에 근거해 계약 조건 및 사례비 내역이 기재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 기획사나 제작사, 단체별로 사용하는 계약서 서식은 다소 상이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는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울문화재단 같은 기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표준 계약서' 서식을 다운로드해 활용하는 것이 좋다. 계약서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조건이나 실제 사례비 금액이 기재되기 때문에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혹여라도 중요한 내용이 잘못 기재되지는 않았는지 여러 번 확인해야 한다. 계약서에 서명날인한 이후에는 양측 모두 상호 합의한 계약서 내용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울문화재단.jpg 서울문화재단 예술지원 자료실 화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


에디터로 일할 때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물론 인터뷰와 취재 때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기사라는 결과물은 오로지 혼자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면서부터는 많은 아티스트, 스태프들과 같이 일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

좋은 공연을 위해 애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물론 이제까지 내가 함께 일하면서 많은 영감과 동력원을 준 아티스트, 스태프분들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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