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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Jan 13. 2021

프랑스 레지던시의 추억 2편

오로지 공연만을 생각했던 그때를 떠올려보며

지난 1편에 이어서 2편을 써본다. 항상 밖에 나가서 하늘을 바라보면, 이렇게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건물 밖에는 이렇게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데, 캠핑카도 몇 대 있었다. 캠핑카는 팀이 투어 다닐 때 필요해서 샀다고 한다. 실제로 머무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늑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오스모시스의 예술감독 알리는 포앙우뜨에 머무르는 동안 캠핑카 안에서 생활했다.


소음 걱정 없이 연습 가능한 공간!

이제는 건물 내부를 살펴볼 차례. 포앙우뜨에서 머무르는 동안에는 이 공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연습을 여기서 했고, 공연 발표도 여기서 했기 때문이다. 공간의 규모가 굉장히 커서 연습을 하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에 비해 거리예술 작품은 공간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공간마저도 퍼포먼스의 일부가 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공간과 작품의 색깔이 잘 맞아야 한다. 거리예술 팀은 우선 연습할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느 정도는 실내에서 연습을 소화할 수 있지만, 리허설은 반드시 야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소음이나 통행 방해 등의 민원 발생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로 인한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럴 걱정이 전혀 없었다. 공간의 넓이도 넓었고, 소음 발생으로 인해 민원을 받을 위험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연습이 가능했다. 포벡에 있던 알리의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는 몇 번이나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 연습을 중단해야 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뚝딱 만들 수 있는 제작소도 있어요!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이곳은 제작소를 겸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규모가 큰 프랑스 공연팀 같은 경우에는 연습실과 제작소(아틀리에)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곳을 보니 이해가 갔다. 일단 공연에 사용 가능한 수많은 장비와 소품이 모여 있고, 무언가를 쉽게 만들거나 해체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보통 연습을 하다가 필요한 세트나 소품을 구하려면, 제작소를 찾아가거나 구매하러 나가야 하는데 여기에는 대부분의 것들이 갖춰져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역으로 여기에 있는 장비들을 보고 아이디어가 생겨서 장면에 새롭게 접목해볼 수도 있었다.


프랑스에서 역사가 오래된 서커스 1세대 공연팀이라 그런지 공간 견학을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만큼 이렇게 큰 규모의 공간을 갖고 있으면서 많은 장비를 보유한 팀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원래는 이 흑막으로 다 가려져 있었는데, 스태프들이 와서 잘 정리해 주었다. 덕분에 연습 환경이 잘 정비됐다. 사다리를 타고, 막 정리를 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피아다. 컴퍼니 오프의 기술 스태프인데,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기술 파트에 도움도 많이 주었지만, 팀 멤버들 중에는 영어 실력이 제일 뛰어나서 커뮤니케이션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가끔은 실내 연습실에서 연습을!

이 공간은 식당 옆쪽에 위치해 있는 실내 연습실이다. 옆으로는 팀의 공연 포스터가 쭉 붙어 있고, 빔 프로젝터가 있어서 영상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회의가 더 많이 필요한 날이라거나, 몸을 풀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연습할 때만 이 장소를 사용했다. 빈도로 따져보면, 이곳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휴식이 필요한 순간엔 이곳으로!


연습하다 목이 마르거나, 가끔 쉬는 시간에는 식당에 가서 차를 마시곤 했다. 점심 식사 시간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게 차 마시기에 좋았다. 


계단이 있는 건물이 사무실이 있는 공간인데, 사무실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프린트를 부탁할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모두 웃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획자인 우리부터 즐기지 못한다면, 과연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끔 직원들이 야외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캐주얼하게 회의하고, 이야기 나누기에 적당한 공간이었다. 특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더더욱이나 좋은 장소 중 하나로 손꼽는다.


오로지 공연에 의한, 공연만을 위한 시간들 


이곳에 머무르는 3주 정도의 기간 동안 따로 관광을 하러 나간 것은 딱 이틀이 전부다. 하루는 투르(Tours) 시내에, 다른 하루는 파리(Paris)에 갔었다. 여기서 거의 모든 시간을 다 보냈지만, 아쉽지는 않다. 이런 곳에서 레지던시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어서다.

얼마 전에도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찾다가 한 군데에서 제안을 받기는 했었는데, 꽤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용만큼의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고려해봤을 법도 한데 내가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커 보이지 않아서 과감히 접었다.


종종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기에는 너무나 소음이 많은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여기 있는 동안에는 오직 공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한국에 있으면, 이것저것 생각할 게 너무 많았을 텐데 이곳에 있으니 다른 무언가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시차가 있는 데다 인터넷 연결도 종종 끊겨서 지인이나 가족과의 연락도 뜸했고, 한국 소식을 듣기도 힘들었다.


그간 외국에 가서 좋았던 것은 이렇게 공연에만 오로지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공연만이 전부인 세상. 외부 요소는 티끌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예술가들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나누고, 미친 듯이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팀 멤버들과 팀워크를 다졌다. 사실 이런 꿈같은 시간은 현실 속에서 맞닥트리기 거의 불가능하다. 공연 말고도 생각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억은 힘든 시간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일깨워준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질 것.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하면서 긍정적인 에너지와 좋은 기운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기획자로 남고 싶다.


3편은 공연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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