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에서 느낀 벅찬 감동의 시간 속으로
리얼리티를 구현하기 위한 여정 - 농촌 워크숍의 기억
<내 땅의 땀으로부터>에 출연할 아티스트를 모집할 공고에서부터 이 작품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는 모두 농촌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었다. 전작 <철의 대성당>이 그랬었듯, 알리는 항상 '리얼리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어떤 소재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고자 할 때는 그 리얼리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때문에 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다.
그런 이유로 선발된 아티스트들과는 경상북도 군위에 머무르며 농사를 짓는 분들도 만나고, 또 일도 직접 돕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도 당연하게 먹는 식재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오게 되는지 실제로 보는 과정은 그만큼 가치 있었다. 농사일에 어설픈 우리는 그분들께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조금이나마 우리의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었다.
매일이 연습, 그리고 또 연습
거의 매일이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이었다. 예술감독인 알리는 본래 댄서로 작품에 직접 출연도 하고 연출도 하지만, 이번 작품만은 출연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었다. '농업'을 소재로 한 작품이고, 한국의 혼이 담긴 이야기라 본인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게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그 대신 연출에 전념하면서 이렇게 댄서들에게 직접 동작을 시범 보이기도 했다.
특히 알리의 작품은 사람의 한계를 극한으로까지 시험해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연습을 볼 때마다 아티스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만큼 나도 작품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 준비할 것들
공연 전날에는 트럭이 도착했다. 우리 작품에 등장하는 트럭에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내 땅의 땀으로부터'라는 글자를 넣기로 했었다. 기술감독님이 페인트로 작업을 해주셨다. 어찌 보면 대단치 않아 보이지만, 이런 사소한 디테일들이 모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공연을 본 관객분 중 하나가 이 글자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작품을 관람하면서 무슨 의미인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이 풍선은 풍요를 상징하는 '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컴퍼니 오프에서 제작해 주었는데, 엄청나게 고가라고 들었다. 그 때문에 한 번 공기를 주입할 때도 굉장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보관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데, 현재는 집에 고이 모셔져 있다. 비록 사용이나 관리는 힘들지만, 달이 담고 있는 상징성을 생각해 보면, 잘 사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 조명이나 소품으로는 살릴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공연 당시, 프랑스의 사진작가분이 찍어주신 건데 아직도 작품 홍보 이미지로 잘 활용하고 있다.
공연 전날 리허설은 통상 실제 공연과 똑같은 상황에서 진행된다. 본 공연을 완벽하게 선보이기 위해서 이 시간 동안에 수정 보완 사항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의문이 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 공연 때 문제가 생기기 쉽다.
공연을 완성시켜주는 요소가 뭐다! 관객이 있어야지!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를 잘해도 관객이 없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때문에 홍보는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공연의 홍보는 컴퍼니 오프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주었다.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간단한 공연 소개와 정보에 대해 올려주었다. 이에 질세라 알리도 오스모시스의 페이스북 계정에 다음과 같은 홍보물을 올려서 공연 홍보를 했다.
우리 공연은 '한불상호교류의 해' 공식인증사업으로 선정돼 '항공료'를 지원받았고,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창작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홍보물에는 다음과 같이 로고를 넣었다.
드디어 다가온 공연 당일, 설레는 그 순간!
공연 전에 나가보니 꽤 많은 관객들이 와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은 내가 '올웨이즈 어웨이크'라는 회사를 만들고 처음 선보이는 것이라 더욱 설렜던 것 같다. 농업이라는 다소 생경한 소재로 만든 작품인 만큼, 프랑스 사람들의 반응이 더 궁금했다.
본 공연 시작 전에는 컴퍼니 오프의 예술감독인 필리프 프레스롱이 나와서 관객들에게 우리 소개를 해주었다. 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당일 점심때 그가 급하게 나를 찾는다고 해서 가보니, 종이와 펜을 들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아티스트의 이름을 틀리는 건 정말 실례일 것 같다며, 최대한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소개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발음해 주는 대로 팀 멤버들의 이름을 모두 받아 적고 연습을 한참 했다. 그 과정을 알기에 소개를 해줄 때,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소개 이후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한 과정을 멋진 결과물로 보여줄 시간이었다. 공연 동안 나는 비디오 촬영을 해야 해서 또 바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땅에서 농부들이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리얼리티를 너무나 잘 담아낸 것 같아서다.
공연이 끝나고 아티스트들이 관객에게 인사를 할 때, 마음이 뭉클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작품을 기획하고, 오디션을 진행하고, 출연자와 스태프를 모으고, 농촌으로 갔던 기억. 지원금을 받기 위해 지원서를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순간. 프랑스문화원과 예술경영지원센터에 가서 미팅을 진행하고, 프랑스 레지던시와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들. 그 모든 노력의 과정이 모여 오늘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기획자는 커튼콜 때 무대에 오르지 않지만, 무대 뒤에서 이 박수와 함성의 벅찬 감동을 느낀다. 이 시간만은 그간의 고생을 잊고, 오롯이 행복감을 만끽한다.
첫 제작 프로젝트가 성공한 걸 축하해!
공연이 끝난 뒤에 컴퍼니 오프 스태프들이 내게 와서 축하 인사를 해주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끝낸 걸 축하해! 넌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이런 이야기를 해준 게 아직도 기억난다. 난 컴퍼니 오프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잘 끝낼 수 없었을 거라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깜짝 파티가 열렸다. 컴퍼니 오프 스태프들이 미리 음식과 술을 한가득 준비해서 우리와 관객들이 맘껏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파티 시간에는 관객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에 대한 소감이 궁금했는데,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을 관통하는 뜨거운 에너지와 노동의 가치를 전하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무엇보다 프랑스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소재와 스타일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당시엔 3주가 두 달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었다. 아마도 매일 알차게 보냈기 때문이리라. 코로나가 어서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미리 기획해두었던 국제 교류 프로젝트를 어서 실행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