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노크하지 않는 집> 공연 때문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당시 대학로 예술극장 하우스 매니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공연 장소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이었기에 공연 운영 관련해 급하게 상의할 것이 있나 싶어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공연기획자로 일하며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꽤 많은 공연을 올린지라 친분이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
"다름이 아니라 극장에 일본인 관객분이 오셨는데, 일본어 할 수 있으시죠? 공연 관련해서 문의하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문득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일전에 일본인 지인이 공연을 보러 와서 이야기 나누던 것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라고 묻자, 수화기 너머로 일본인 남성의 음성이 들렸다. 그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빠르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일본에서 공연 스태프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뮤지컬 공연이 보고 싶어서 한국에 와버렸습니다. 한국에서 공연하면 대학로라는 곳이 유명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오기는 왔는데, 아는 게 없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좋은 공연 좀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공연 추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참 난감하다. 잠시 기다려달라고 요청한 뒤, 일본어 자막이 있는 뮤지컬 공연을 찾았다. 마침 뮤지컬 <빨래>가 일본어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는 정보를 찾았고, 이왕이면 일본어 자막이 제공되는 뮤지컬을 보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했다. 그 외에도 일본인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뮤지컬 작품을 2~3개 더 추천해 주었다.
만나서 도움 주고 싶지만, 공연 준비 때문에 극장에 가야 한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공연 준비하신다고요? 어떤 공연을 올리시죠? 저는 그걸 보고 싶습니다."
더없이 고마운 이야기였지만, 우리 공연은 일본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만큼 관람에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혹시 공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짤막하게 공연의 컨셉과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극장으로 갔다. 그와 아내는 약속대로 소극장으로 왔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부부는 공연을 관람하러 입장했다.
From. 친구 To. 친구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공연장 근처의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스즈키 타다시 선생님의 4개국 프로젝트에 참가한 인연이 있어 일본의 토가와 시즈오카, 도쿄에 간 적이 있다고 말했더니, 부부는 더없이 반가워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공연의 감상평을 나누기도 하고, 일하고 사는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만약 김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뭘 봐야 할지 몰라서 헤맸을 거예요.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 일본에 오게 되면, 꼭 말씀해 주세요!"
다음 날 또 일이 바쁜 고로 짧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극장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그 일본인 관객분께서 전해달라고 물건을 맡기고 가셨어요. 이따 꼭 찾으러 오세요."
극장에 가보니 로이스생초컬릿과 편지가 맡겨져 있었다. 편지봉투에 쓰인 From. 친구 To. 친구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편지를 열어보니 이렇게 한국어와 일본어, 2개 국어로 쓰여있었다.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정성을 담아 쓴 게 보였다.
엉겁결에 친구가 된 이 부부와는 이후에도 연락하고 지냈고, 내가 일본에 출장 갔을 때 공항까지 배웅하러 나와준 적도 있다. 이 친구는 결국 한국에 일하러 오기도 했었다. 아직도 가끔은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아무래도 공연계 종사자다 보니 더 통하는 바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공연을 보러 온 외국인들과 친구가 된 경우는 몇 번 더 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인연이라 생각한다. 외국에 출장 갈 때마다 많은 스태프들과 현지 사람들에게 친절한 환대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돌아보면 그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와 맛있는 음식보다도 좋은 사람과 만난 것이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내가 만난 것은 한 국가에 속하는 일부의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로 인해 국가의 이미지가 결정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도 해외에 출장 가거나, 국내의 국제축제에서 일할 때면 최대한 친절하고,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덕에 이렇게 예상지 못했던 관객 2인을 확보할 수 있었고, 좋은 친구도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