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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Apr 10. 2021

공연, 왜 팀워크의 예술일까?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여서 가능하기에

물론 팀으로 펼치는 모든 승부와 활동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공연 또한 '팀워크가 예술'일 때, 더욱 빛나는 '예술작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공연에는 수많은 예술가와 스태프가 참여하고, 거의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을 타고 완성되는 만큼 개인플레이가 불가하다. 일단 팀워크가 좋다는 것은 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공동의 약속을 잘 지키는 것- 곧, 정해진 스케줄에 차질 없이 참여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나 변동 상황이 생겼을 경우에는 미리 팀에게 알릴 것. 상대방을 배려하고, 함께 도울 일이 있으면, 서로 힘을 보태 완수할 것. 등등이다.

여러 축제에서 일하면서 많은 팀과 일했다. 대다수는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했으나, 그에 반해 팀워크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팀을 만난 적도 있다. 팀워크는 보통 개인 간의 갈등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공연 진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팀 바깥에 있는 외부인이었으나, 축제 스태프의 한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면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사례: 나는 나, 너는 너. 흩어지는 주특기를 마구 선사한 팀 


의전통역으로 일했던 시기의 이야기다. A팀은 워낙 많은 인원수를 자랑했기에, 공항 도착 전부터 우려가 컸다.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보통 해외 투어를 가는 경우에는 단체 행동이 국룰이다. 개인 짐에 더해 공연 소품이나 의상을 나눠 싣는 경우가 많은 데다, 각종 돌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어 한 몸처럼 붙어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이 팀은 입국하자마자 순식간에 흩어지는 놀라운 신공을 선사해 보였다. 공연팀을 환영하는 팻말을 보고 3인 정도가 우리 쪽으로 왔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 갔냐 물으니 그걸 왜 우리한테 묻냐는 표정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중 몇몇은 유심칩을 구매하느라 정신없었고, 몇몇은 편의점에 있었고, 몇몇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으며, 몇몇은 화장실에 갔고, 몇몇은 다른 게이트 앞에 서성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을 다 모아서 출발하려는 순간, 아뿔싸! A팀이 오기 전부터 소통을 담당했던 투어매니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고, 다른 팀원에게 물으니 소품이 문제가 되어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해결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하자, 나머지 팀원들 왈. "매니저는 언제 나올지 모르고, 우리는 너무 피곤하니까, 빨리 호텔로 가자고."


팀 매니저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알바 아니라는 그들의 짜증 섞인 태도를 보면서 앞으로의 여정이 힘들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다 모인 팀원을 대형버스에 태웠고, 매니저가 나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알고 보니 매니저는 실제 총을 개조한 소품 총을 가지고 입국하다 문제가 되어 오랫동안 나오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축제 측에서는 분명 그 총을 한국에서 구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는데, 왜 가져온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팀 매니저는 어린 나이였고, 많은 숫자의 팀원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녀가 공지사항을 전달하려 할 때마다 다른 팀원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각자 할 말을 하기 일쑤였다. 이런 이유로 각종 스케줄을 조정할 때마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들은 셋업 시에 술을 반입하거나, 갑자기 스케줄을 바꾸는 식으로 공연 진행에 차질을 빚게 만들었다.


떠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매니저는 대다수의 팀원이 출국할 때 같이 출국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의 창구가 사라진 셈이었다. 출국할 때도 이 팀의 멤버들은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지는 신공을 선보였다. 쇼핑을 해야 한다며 배낭만 메고 서둘러 출국 수속을 밟은 이를 시작으로, 따로 여행 온 사람처럼 앞다퉈 출국 수속을 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팀은 이런 이유로 낼 필요도 없었던 짐 추가 요금을 낼 상황에 처했다. 결국 잘 해결은 됐지만, 마지막까지도 실종된 팀워크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두 번째 사례: 팀 내 따돌림은 규탄합시다!


축제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만난 B팀. 무대 셋업 전 미팅 자리에서 만난 이 팀을 보고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출연자 C는 심하게 겉도는 것이 보였는데, 스태프 D와 E는 너무나 친밀한 사이임을 시종일관 과시하는 모양새였다. D와 E는 약속된 리허설 시간에 늦어 피해를 주기도 했다.

매니저 역할을 하던 D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C에게 공지사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C의 연락처를 따로 받았다. 팀 매니저를 통해 공지사항이 팀원에게 전달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팀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C와 D에게 공지사항을 모두 전달했고, 그 뒤로 스케줄이 어긋나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D와 E의 따돌림은 계속됐다. C와 같이 식사를 하러 가기로 약속해놓고, 둘만 식사를 하러 가버리는 식이었다. 혼자 남겨진 C는 사무국에서 일하던 나를 찾아와 같이 식사를 하자고 말하곤 했다. 너무 바쁜 상황이라 거절도 몇 번 했다. 그래도 사무국 근처를 배회하며 내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린 적이 있어 같이 식사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고민을 듣고 공감해 주려고 노력했으나, 안타깝게도 그에게 부정적인 내부 평가가 쏟아졌다. 너무 잦은 방문으로 인해 사무국 스태프들에게도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그는 놀라운 언어감각을 갖고 있어 내가 스치듯 말한 한국어도 곧잘 따라 하기 일쑤였는데,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정확하게 알아채버리곤 했다. 어떻게든 수습하려 해 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 팀의 문제인데, 내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이런 사태를 떠안았다고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모른 척 방관할 수만은 없었고, 내가 가진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이 팀의 문제를 봉합하려 애썼다.

공연 스케줄 외에 허락된 자유 시간까지 축제 사무국이 통제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각자의 기호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먹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의도적으로 팀 일원을 따돌리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깨어진 팀워크는 어떻게든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세 번째 사례: 그만 좀 싸워요! 그래도 싸울 거면 알아듣게 영어로 해줘요!


E팀도 축제에서 일할 때 만났다. E팀의 F와 J는 과거 연인이었다는 설을 듣긴 했는데, 둘은 틈만 나면 언성을 높여 싸우기 일쑤였다. 둘이 팀의 최연장자였기 때문에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팀 내에는 싸한 냉기가 감돌았다. 


둘이 싸우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둘은 불어로 싸우곤 했는데, 나는 불어는 1도 몰랐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싸우는지 파악이 불가했다. 치열하게 싸우고도 일에는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보이는듯했으나, 돌발상황은 셋업을 준비하던 와중에 일어났다. F와 나는 극장 난간에 기대 서 있었는데 갑자기 F가 나를 보며 "나 지금 여기서 떨어져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내 귀를 의심한 순간이었다. 


결국 F와는 따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획대로 공연 진행이 척척 되지 않아 불안했다는 이야기와 시차 때문에 너무 지쳐서 나온 발언이니 개의치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하고, F를 호텔로 보냈다. 우리가 할 일을 다 하고 있을 테니 호텔로 가서 푹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갈등이 있어 싸울 때는 꼭 영어로 이야기해달라고. 절대 팀을 사적으로 비난할 의도는 없다고도 말했다. 우리는 한 팀인 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사소한 갈등이나 문제도 우리가 다 파악해야 일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으니, 주저 없이 말해달라고.

그다음 날 F는 회복된 컨디션으로 무대로 돌아왔다. 사소하게 다툼은 계속됐으나, 첫날에 비해서는 상당히 진정된 모습을 보였고, 공연도 무리 없이 잘 끝났다.

해외 투어를 갈 때면, 다른 시차 혹은 기후의 영향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일의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않을 때 초조해진 마음에 다툼도 생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팀워크는 빛을 발한다.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배려심과 내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서툴게나마 도우려고 내민 손이 말해준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여서 가능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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