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목욕탕을 추억하며 행화탕을 바라보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목욕탕을 갔었던 게 언제였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춘기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 우리는 매주 일요일 아침, 의식을 치르듯 목욕탕에 갔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목욕탕으로 향했던 것에는 다가 올 일주일을 개운하게 보내고 싶어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잠시 들려 사 먹는 간식은 꿀맛이었다. 그렇게 매주, 10년을 오갔다. 목욕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후 목욕탕을 가긴 했지만 자주는 아니었고,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함께 목욕탕 가는 일은 줄었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매주 목욕탕을 오가며 마주 했던 장면들을 천천히 되새기다 보면 목욕탕이라는 공간이 묵은 때를 밀어내는 곳이기도 하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마주치기 힘들었던 사람들과 만나면 안부를 묻는 장소이기도 했다. 또 지금의 찜질방처럼 TV도 볼 수 있고, 식혜까진 아니어도 내부에 음료를 판매하고 있어서 목욕을 하다가도 잠시 나와서 사 먹을 수도 있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그때 드나들던 목욕탕이 문득 생각나 궁금해져 찾아 가봤더니 다행히도 여전히 위치도 그대로, 건물도 그대로였다. 엄청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임대'라고 적힌 현수막을 발견하고 나니 더 이상 목욕탕으로 이용되지 않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차마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었는데, 그 이후로 세월이 2년이나 흘렀다. 과연, 목욕탕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라 졌을까?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을까?
특별할 것 없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회사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점심시간만큼은 나만의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어 보자며 회사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한 장소가 오늘 소개할 행화탕이다. '행화'는 살구나무가 많았던 과거의 아현동을, '탕'은 말 그대로 목욕탕을 의미한다. 1958년 문을 연 이후로 오랫동안 주민들의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다가 24시간 찜질방과 사우나가 등장하게 되면서 목욕탕을 찾는 이들이 줄었다. 중간에 주인이 한번 바뀌고, 2대째 운영이 되다가 주인이 세상을 떠났다. 2008년도에 폐업을 하게 되고, 2011년에는 행화탕이 위치해 있는 아현동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5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는데 작업실 겸 공간을 찾고 있던 문화예술 기획자의 눈에 우연히 발견되면서, 2016년 5월 15일 목욕탕이라는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예술로 풀어내는,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이곳을 알게 되었을 때는 행화탕이 오픈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고, '행화 커피'라는 브랜드가 론칭되면서 카페 오픈 준비 중이었다. 말 그대로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당장에 내부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며칠 뒤 들른 행화탕에서 어린 시절 드나들던 목욕탕이 생각나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단순히 '과거 목욕탕이었던 공간이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넘어서 '목욕탕'이라는 공간 경험을 통해 정서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장소다. 일상적이고, 아늑하면서도 편안한 그런 곳.
행화탕의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으로 뻗어 나가는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곧장 앞으로 나아가 작은 문을 통과하면 바로 목욕탕 내부 공간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분명 목욕탕인데 '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냉탕, 온탕 그 탕 말이다. 운영자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부터 타일 벽이나 샤워기가 있었던 흔적들만 남아 있었을 뿐 탕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괜찮다. 남아 있는 것들로만으로도 과거의 모습을 상상해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질반질한 타일 벽 위로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흘러내릴 것이고 샤워기 앞에 나란히 앉아 때를 열심히 밀고, 그 옆에선 목욕관리사가 그 누군가의 때를 밀어주었을 것이다. 온탕에서는 몸의 때를 불리고, 냉탕에서는 수영 놀이를 하고, 잠시 아주 뜨거운 온기를 채운 사우나에도 들어간다.
탕이 없는 대신 길을 두고, 벽으로 나뉜 두 개의 공간을 연결했다. 그 길과 맞닿은 곳엔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하며 즐길 수 있도록 평상도 놓았다. 흔히 놓인 의자 아닌 평상에 앉는 기존 목욕탕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커뮤니티적인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콘셉트화 하였다. 이것이 바로 탕 없는 목욕탕, 행화탕이다.
'자박자박 '
소리 나는 돌 위를 걷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더 선명해진다. 세월이 흘러 본래 형태와 색을 잃은 벽돌은 흉하기는커녕 이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을지, 방문하는 손님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이 자리에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지 그저 궁금해질 뿐이었다.
방치되어 있던 공간, 행화탕이 복합 문화공간으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특별했다. 하지만 이 공간에 매력을 느꼈던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커다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운 어느 뜨거운 여름날, 목욕탕 안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명절, 생일처럼 특별한 날만, 누군가는 의식을 치르듯 때 맞춰 방문하는 장소.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일명 때 빼고 광 내는 곳이기도 한, 일상의 공간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젖어들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가야금, 대금, 피아노 합주 공연은 '뭔가 거창한, 대단한 것을 해서 예술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에 잠시나마 새로움을 안겨 줄 수 있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했다. 목욕탕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 새로움을 의미하는 음악공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재개발로 언제 사라질지 모를 운명에 처한 어느 목욕탕. 목욕을 하던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순 없지만 공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콘셉트를 기획하여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여전히 목욕탕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 정체성이 더욱더 뚜렷해졌다는 증거고, 그 순간에 들었던 음악, 보았던 장면들, 느꼈던 감정들이 행화탕을 통해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더 특별했던 것이다.
공간으로 왔지만 여기서 얻어지고 나누어진 대화나 경험으로 인해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 거기서 얻어지는 가치가 중요한 것이다.
-행화탕 서상혁 공동대표의 인터뷰 -
행화탕은 철거 일정이 정해지면 언제든 건물을 비워야 하고, 언젠가 철거되는 운명에 처해있다. 하지만 이에 절망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 동안 '행화탕'이라는 공간을 통해 다양한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런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한쪽 가슴이 허했다. 어릴 적 동네 목욕탕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현동과 마찬가지로 재개발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두 군데 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공간을 이끌고, 채우고, 활용하는 주체가 달랐다. 달랐기 때문에 행화탕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될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행화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공간으로 존재함으로서 더 가치 있고, 공간을 통해 얻는 경험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