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이 과정이라고

by 서울경별진

나는 지금 병원에 앉아있다. 가요를 피아노로 연주한 경쾌한 음악이 울린다. 오전 8시 30분에 글쓰기를 잊지 않기 위해 설정해둔 알림을 확인했다. 진료가 끝나면 가족들과 얼마 전부터 이야기했던 식당을 가기로 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족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을 한다. 아프지 않을 때는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은데, 막상 아프면 살고 싶어 진다. 가족들과 떨어져 본 적 없는 내가 가족들과 더 오래 함께 살고 싶어 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버킷리스트는 1년에 한 번씩 적어둔다. 어느 날은 '이게 무슨 소용이야.' 하다가도 '아직도 해보지 못한 것이 많아.' 라며 고이 간직한다.


아직도 해보지 못한 것이 많다. 버킷리스트를 적기 전에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했는데, 버킷리스트를 적으며 조금의 희망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꿈꾸는 생명체라는 것이 그것을 보며 힘을 얻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전에는 거창한 일들을 생각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일상적인 것들을 더 적게 된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정도의 일들을 차근히 이루면서 하나씩 지워 가다 보면 어느새 거창한 일들 앞에 가 있고는 했다.


모든 삶이 과정이라는 말이 어느 날 내게 와닿았다. 같은 말이어도 내 상태와 나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 같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느 날은 알지 못했던 것들이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깨달음을 주는 것처럼 가끔 듣는 말이었는데, 그날은 더 와닿았다. '내 삶은 아직 과정이고, 나는 과정 속에 있다.'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나는 꿈이 컸던 20대를 보내고, 꿈을 이루기엔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30대를 살고 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 때문에 애태우는 그런 시절에 있는 것 같다. 70대에 영어공부를 시작한 할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나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러니의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자존감이 낮은 나 같은 경우에는 나를 너무 낮게 보기 때문에 나를 잘 모른다. 나를 알면, 나를 사랑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반대로 나를 너무 사랑해서 오는 부작용들도 보인다.


무엇이든 균형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균형을 위해 홀로 싸운다. 나를 위해, 타인을 위해 홀로 싸운다. 언니는 내가 너무 진지하다고 한다. 나도 가볍게 생각하고, 유머 있고 싶다. 가끔 하는 말장난에 직장 동료들이 웃어주면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진지하다.


병원에 앉아 피아노로 치는 가요를 들으며 진지하게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요즘은 너무 오래 대화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나처럼 진지한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몇 달 동안 위통에 시달렸는데 이제야 병원에 왔다. 위산이 많이 나와서 뱃속을 괴롭히는 것 같다고 한다. 뭐든지 넘치면 병이 나기 마련이다. 과도한 생각, 과도한 행동, 과도한 식성, 과도한 미디어 등등 어쩌면 우리는 과잉 시대에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좋지 않은 생각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머릿속과 몸을 지배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오해하며 산다. 상대의 눈빛을 보고 혼자 생각하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생각 없이 뱉은 말들에 나를 붙여놓는다. 그리고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병을 얻는다. 직접적인 공격을 받을 때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상처 받는 통로가 생기고, 때때로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그러다가 나를 방어하기 위해 무언가를 결심한다.


그 결심 중에는 나를 방치하는 것과 공격적이 되는 것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건강한 방어와 해소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말과 행동에 여유가 있다. 나는 그런 건강한 해소를 위해 글을 쓴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아프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의사 선생님은 항상 내가 잘 관리하면 좋아질 거라고 한다. 아프고 낫는 것도 과정이니까. 나아가는 과정이 또 시작됐다.


아직 삶의 결론이 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계속 그 과정안에 있을 거라는 말이 울적하면 울적한 대로 적어내렸던 내 글들을 애정 하면서도 조금은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자유해졌다. 모든 것이 나인데. 좋았던 날도, 좋지 않았던 날도. 나는 여태 결론 나지 않을 과정 속의 위로를 적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이제는 엉클어진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더 좋은 글을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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