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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역 Dec 06. 2018

엄마같은 엄마가 되긴 어려울 거야

엄마에 대한 단상

엄마에 대해 말하자면 키워드가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녀 같고, 똑똑하고, 건강하며, 애교와 질투가 많다. 아기자기한 볼펜, 일년에 대여섯권은 쓰는 카테고리별 다이어리,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예쁜 쇼핑백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모으는 엄마만의 감성이 있다.


자연을 사랑한다.

자연의 모든 순간을 동경한다.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단풍나무를 보러 기꺼이 먼 길에 오르기도 수십 번, 길가다 보이는 꽃 이름들을 줄줄 외고, 탄천에 녹음이 우거지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한다. 안개가 끼면 근사한 날이고, 비가 거침없이 내리면 시원한 날이며, 아무리 힘든 산행길이라도 정상에서 먹는 김밥이 제일 맛있다 자랑한다.  


명품 백보다 터키 열기구에서 본 노을사진이나 제주도 올레길 완주 뱃지 같은 것들을 자랑하고, 캐시미어 코트보다는 비행기 티켓을 더 탐낸다.  

2018. 4. Fukuoka



할 줄 아는게 많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삶이 주어지지만, 그 주어진 시간과 순간들을 충분히 즐기고 음미하는 방법이 누구보다 탁월하다. 커피 한 잔만 있어도 몇 시간씩 탄천 벤치에 앉아 그 순간 자체를 소중히 할 줄 알고, 대학에 갓 입학한 조카부터 머리가 하얗게 된 엄마의 이모들까지 모든 연령대와 수월하게 대화할 줄도 안다. 김동률 콘서트에 가서 오케스트라 반주가 벅차게 좋으면 눈물을 흘릴 줄도 알고,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처럼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일어나서 흔들 줄도 알고, 겁 없이 10년 만에 운전대를 잡고 혼자 운전을 한다거나 초행길의 산을 혼자 오를 줄도 안다.



IT에 밝다. 

구글포토의 기억소환 기능이나 카카오뱅크 앱에 적금 기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것도 엄마다. 워낙 스스로 다 잘 하니 20대 딸인 나에게 뭐 어떻게 하는 법 좀 알려줘 등등의 질문을 하는 법이 거의 없는데, 간혹가다 물어볼 일이 생길 때 툭툭 성의없게 대답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너무 미안해진다.


뭐든지 대충하는 법이 없다. 

완벽에 가깝다.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지리까지 숙지를 하고 모든 걸 흡수하고 오랫동안 내내 기억한다. 전시회를 가던, 영화를 보던, 모든 것의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 난 뒤에야 즐긴다. 철저하게 계획 하는 걸 좋아한다. 일단 하고 보는 나와 아빠와는 정말 정반대라 서로의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으나, 애초에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엄마는 아빠를 존경한다.

스무살 때 처음 만난 남자를 지금 30년이 넘게 좋아하고 있다. 특히 아빠의 무던한 성격, 툭툭 터지는 재치, 물어보면 술술 나오는 역사 이야기 같은 엄마에게는 없는 면들을 사랑한다.


엄마와 아빠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나는 진짜 사랑이란 '존중하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2016. 7. Hongkong. 엄마의 생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는 인천 주안에서 몇 십년동안 약국을 하셨다. 엄마는 그 시절의 약국집 맏딸로 큰 부족함 없이 자라면서 피아니스트를 꿈꾸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아노를 그만두고 공부를 해 원하던 고대에 입학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맏딸로서 또 삼남매 중 첫째로서, 어려서부터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크게 느끼며 자랐을텐데. 기대에 부응하는 것들을 또 그만큼 해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일한 자랑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번이 바로 뒤였던 아빠를 과동기로 만나 6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대학 졸업, 아빠의 취직, 결혼이 꽤 이른 나이에 동시에 이뤄져 엄마는 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전업 주부가 됐다. 지금 내 시대에는 잘 없는 일이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엄마는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 시절의 실력을 살려 어린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피아노학원을 몇년 동안 운영했다. 전공은 교육학과에, 피아노를 전공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 엄마에게는 어떤 긍정의 힘과 자신감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다.


남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하고, 상담해주는 걸 잘했던 엄마는 그 후로 나와 내 또래의 아이들을 집에서 꽤 오래 가르쳤다. 엄마가 가르쳐주는 수업은 머리에 쏙쏙 잘 들어왔다. 나는 그 시절의 엄마가 참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그 후로도 혼자 공부해 전문상담사 자격증 같은 걸 따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상담 해주고 학습 진도가 부진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 가나다 한글 카드 같은 걸 직접 만들고 왕복 세네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들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녔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3~4살이었고 엄마의 피아노학원 바로 윗층에 우리집이 있었다. 빚쟁이가 집에 찾아왔던 것 같다. 또렷하진 않지만 그 때의 기억이 꽤 강렬하게 남아있다.


내가 아주 애기였을 때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우던 순간도 기억한다. 지금의 아빠의 모습에서는 잘 상상이 안되는, 꽤나 살벌했던 아빠의 표정이나, 오고 갔던 대화들이 그 당시 어렸던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선명한 기억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랑 충분한 대화를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난 엄마에게 친구같은 딸이야 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가장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를 엄마가 싫어한다는 걸 알게되면서부터 엄마에게 숨기는게 많아졌다. 그 때 난 엄마한테 '엄마 속물 같아'라는 말을 내뱉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엄마에게 정말 미안했던 적이 있다. 남자친구와의 여행이나 스킨십 같이 엄마에게는 거짓말하며 비밀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을 엄마가 혼자서 알게 돼 고민을 하다가 나한테 어렵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 나를 꾸짖거나 한 게 아니라 친언니처럼, 이모처럼, 진심으로 조언해 주고 이해해줬던 엄마의 표정이나 그 때 나눈 이야기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그때의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2018. 4. 엄마와 나




피아노를 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요즘 대학교 동기합창단에 푹 빠져 지낸다. 주 역할은 알토인데 부반주자도 하고 있다. 첫 공연을 보러갔다가 생각보다 더 근사하게 준비한 공연에 눈물이 날 뻔했다. 다 누군가의 아내고 아빠고 남편인데 그날 만큼은 본인 그 자체의 모습으로 무대에서 번쩍 번쩍 빛이 나는 모습들을 봤다. 나는 엄마가 합창단을 몇년이고 계속 했으면 좋겠다. 내내 응원할거다.  


늘 건강하고 젊게 사는 엄마에게도 언젠가는 노년기가 찾아 올거다. 여행을 가거나 산에 오르는 일이 맘처럼 쉽지 않게 되는 날이 올거고, 엄마가 내게 하는 잔소리보다는 내가 엄마에게 하는 잔소리가 많아지게 될거고, 늘 뭐든지 척척 해냈던 엄마가 나에게 의지하는 순간도 분명 올거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막 눈물이 날 거 같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엄마같은 엄마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들을 조금이라도 닮은 엄마가 되고 싶다.


'소확행' 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엄마는 많은 걸 바라지도, 욕심을 부리지도 않지만, 제일 중요하고 확실한 행복이 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엄마가 언제까지나 자연을 사랑하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으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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