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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역 Jan 13. 2020

사다사다 질려서 만듭니다

톱질은 정직하게, 망치질은 리드미컬하게

주말마다 금속공예를 배운 지는 약 10개월이 되어간다.


양손에 반지 2~3개는 기본이고 귀걸이에 목걸이까지 온갖 장신구를 좋아하는 나는 몇년간 사 모은 액세서리만 해도 수백 개는 된다. 일주일에 몇 개씩 사던 때도 있었다.

작년 봄이었던가.

주말마다 사부작사부작 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우연히 연남동 금속공방을 알게 됐고 원데이 클래스를 듣게 됐다.



와. 신세계였다.
내가 그냥 턱턱 사는 액세서리들이 이런 노가다로 만들어진다고?
괜히 몇 만원씩 받는게 아니었네.



반지의 경우에는 손가락에 맞는 호수를 정하고 지름과 은의 두께를 기준으로 반지 만드는 공식에 대입해 계산을 해서, 정확한 사이즈로 은판을 톱으로 자르는 것부터 시작이 된다.


톱질부터 노동이다.

팔이 아프고 손톱 밑이 까매진다.

그리고 토치로 불을 내 땜질을 하고 망치질로 모양을 내고 사포질을 하고.

아 이건 영락없는 노동이다.



3시간 내내 작은 은쪼가리와 씨름하다 보니
아. 앞으로 액세서리는 그냥 사서 해야겠다. 하는 생각과, 사지 말고 내껀 내가 만들어서 하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처음 만든거 치고는 생각보다 너무나 맘에 드는 결과물이 나와서 그 자리에서 바로 수업 등록을 했고.
그 후로 10개월째 나는 매주 뭔가 어디에라도(?) 두를 수 있는 금속들을 만들어낸다.



금속공예를 배우며 느끼는 것은, 나처럼 조심성이 없는 사람에겐 침착함을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 성격이 급해서 뭐든 빨리 빨리 하는 편인데 이렇게 마음만 앞서는 날엔 꼭 사고를 낸다. 성급하게 하려다 장비를 태운 적도 있고, 손이 덴 적도 많고, 3시간 안에 두세개씩 욕심 내서 만들려다가 기스 투성이인 반지들을 만든 적도 있다.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들이 꼼꼼하게 잘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성격이 급한 나는 괜히 찔린다. 마음처럼 땜질이 잘 안될 땐 화도 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토닥이며 두 번이고 세번이고 완성이 될 때까지 다시 도전한다.



불을 다룬다는 건 정말 극도의 세심함이 필요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힘을 잘못 주거나 세게 주면 내가 정성 들여 톱질하고 모양을 내 놓은 은조각들이 순식간에 녹아 버린다. 적당한 힘 조절을 해가며 불을 살살 어르고 달랠 줄 아는 노련함이 필요하다.


수천, 수만 번의 땜질로 단련이 된 선생님은 내가 당황할 때마다 괜찮아요 하연씨 라고 해준다. 심지어 내가 의자 천을 태워 먹었을 때도 말이다.


반지, 팔찌, 목걸이, 귀걸이 종류별로 만들어 보고. 이니셜도 넣어보고. 진주도 달아보고. 원석도 넣어보고. 왁스 작업도 해보고.



망치질로 울룽불룽한 모양을 낼 때가 제일 좋다. 손목 스냅을 주면서 리듬을 주며 망치질을 할 때, 톱질로 반듯하게 은이 잘려 나갈 때 스트레스가 풀린다.


금속공예는 도구의 향연이다. 다양한 작업들을 할 때마다 새로운 도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때와 용도에 맞는 도구들이 척 나타나는 그 순간엔 늘 무릎을 탁 친다.


처음에 무조건 힘으로 하려고 했던 내게 선생님은 그때 마다 도구를 건네 줬고 힘이 필요한 취미기는 해도 머리를 쓰며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공방을 다닌 이후로는 쥬얼리를 안 사게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하고 그 모양대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다.



목 1개, 팔 2개, 손가락은 10개 밖에 없는 게 아쉽다.
그래서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쥬얼리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어떤 디자인을 좋아할까, 사이즈는 대충 이거겠지? 가늠하며 몇 시간을 공들여 만든 쥬얼리를 선물할 때, 그리고 받는 이가 좋아할 때 그 뿌듯함이 좋다.



올해도 금속과 불을 다루며 꼼꼼함과 침착함을 더 배워보려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쥬얼리를 더 많이 선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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