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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나 Oct 18. 2020

적당히 가까워도 꽤 괜찮잖아요

일상 한 단락 - 셋, 적당히 거리두기가 아닌, 적당히 가까워지기

'느슨한 연대'

작년 즈음부터 각종 트렌드 분석 콘텐츠의 단골 키워드로 등장하는 말이다. 공동체주의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한국에서, 혈연 지연 학연과같은 끈끈하지만 때로는 불편한 관계를 벗어나 관심사, 취미, 등으로 모인 사람들간의 관계를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초등학교때 우리반 급훈은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였고, 대학교에 입학하니 모든 동아리모임의 마무리는 다 함께 건배사를 외치며 끝나곤 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공동체주의에 꽤나 잘 맞았던 나는 (아마 길들여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만나는 모두와 끈끈한 유대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어떻게든 우리라는 테두리안에 끼워넣으려 애쓰곤 했는데, 모두가 당연히 '함께' 를 더 좋아할거란 확신이 있었던것 같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면서, 모든 조직이 꼭 끈끈하지만은 않고, 또 그럴수 없다는걸 체감했다. 각자의 목표달성을 위해 모인 조직인 회사, 스터디나 독서모임 같은 커뮤니티까지. 세상에는 '끈끈하지 않아도 괜찮은' 연대를 갖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올해 초, 유료 독서모임인 트레바리에서 활동하며 '느슨한 연대의 힘' 을 경험했다.

펀드매니저, 공무원, 변호사, 대학생, 사업가, 식품영업 담당자, 그리고 그때는 잠시 무직의 백수였던 나까지.

모임이 아니었다면 우연히라도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 3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토론했던날은 아직까지도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다. 나이, 학벌, 연애나 결혼여부 등 첫 만남에서 으레 묻게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우리가 읽은 책 그리고 각자의 시선과 경험들을 털어놓을 뿐이었다.


느슨한 연대는, 감정으로 엮이지 않아, 언제든 맺고 끊을수 있기에 어떻게보면 '정없는' 것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엮인 끈끈한 연대보다, 적당한 유대감으로 이어진 수많은 관계가 더 많아져 건강한 일상의 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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