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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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20세.
키 163cm, 단정한 이목구비.
가만히 있으면 고양이 같지만,
웃으면 묘하게 토끼상.
적당히 이쁜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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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 때부터 "예쁘다", "승무원상이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 말들이 지수의 정체성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과는 항공서비스학과로 입학.
1학년일 때도 나름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2:2, 3:3 미팅 자리도 많이 들어오고,
한 번쯤은 놀러 나가고 싶었던 클럽에도 갔다.
이태원, 홍대.
가서 남자들이 말을 걸어올 때도.
지수에겐 항상 자신의 외모가 먼저였다.
"지수야, 너 진짜 이쁘다."
"와, 00 닮으신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지수는 기분이 좋았다.
이쁜 것은 역시 최고였다.
인별에 사진을 자주 올렸다.
"오늘 날씨 너무 좋다"
"나 어때?" 같은 캡션과 함께. 사진을 올리고 나면 5분마다 한 번씩 폰을 확인했다.
좋아요 수가 늘어날 때마다 안도했고,
다른 각도로 찍은 사진을 매번 올리고,
스토리도 매일 올렸다.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3학년이 된 지수는 학교가 지루해졌다.
똑같은 과 친구들.
똑같은 수업.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
과제를 하면서도 계속 폰만 만지작거렸다.
인별 스토리를 올리고,
다른 사람들 피드를 구경하고,
DM을 확인했다.
‘뭔가 특별한 경험은 없을까.’
그러다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봤다.
"#호주워홀 #자유로운 삶 #YOLO"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예쁜 언니가 넓은 해변가를 배경으로 웃고 있었다.
여유로운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고, 잘생긴 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
댓글에는 부러워하는 반응들이 가득했다.
"와 언니 너무 이뻐요ㅠㅠ"
"언니 진짜 갓생 사시네요..."
"오늘도 잘 보고 가요 ㅎㅎ"
지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저런 사진들 인별에 올리면 얼마나 좋아요가 많이 나올까.
'취업은 언제든 할 수 있잖아.'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
취업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심하게 반대했다.
반대가 너무 심해 어머니와 아버지와 심하게 싸우다 지수는 결국 연락을 단절했다.
그래도 지수의 머릿속은 온통 워홀 생각으로 가득 찼다. SNS에 올릴 멋진 컨텐츠들, 부러워할 친구들의 반응, "와 이쁘다.."라는 댓글들.
돈을 일단 모아야 했다.
PC방 알바, 매장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내고,
짬짬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지수는 다시 복학을 하고,
졸업과 동시에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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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천공항에서 찍은 셀카.
"#새로운 시작 #호주 가자 #워홀"이라는 캡션을 달았다. 좋아요가 200개 넘는다.
도파민이 머릿속에 톡! 하고 퍼진다.
처음 몇 달은 정말 그럴듯했다.
예쁜 카페, 해변, 시티 풍경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매일 올렸다.
"#일상이 여행 #자유로운 삶"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부러워한다는 댓글.
이쁘다는 댓글들.
종종 비공계 계정으로 이상한 DM을 보내는 사람들은 가볍게 무시.
일하는 곳은 한인마트였고, 주변은 온통 한국 사람들이지만, 돈은 생활비로 빠져나가지만 뭐 어쩔 건가.
중요한 건 인별에 예쁜 사진이 올라가는 거였고,
멋진 언니들처럼 워홀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올릴 것이 부족해졌다.
매일 같은 루트, 같은 풍경, 같은 일상.
예전처럼 좋아요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 반응도 이제는 시큰둥했다.
2년이 지났다.
이제는 돈이 부족했다.
바다 풍경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보면 우울한 마음도 든다.
한국이 그립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지수는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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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천공항에 내린 지수는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는 기분이 복잡했다.
항공과 친구들도 이제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취업해서 만날 사람들이 없었다. 월세를 구하고, 자수도 이제 취업할 나이가 되어 다시 서류를 썼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뒤늦게 항공사에 지원해 봤지만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이력서에 쓸 만한 경력은 워홀 경험과 금방 금방 그만둔 알바 경력들이 전부였다.
겨우 잡힌 면접에도,
졸업 후의 2년의 공백기동안 어떻게 지냈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지수는 그렇게 방황하면서 시간만을 보냈다.
지수는 예전과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며 생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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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느 날에는 워홀 가기 전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항공과 동기 유진과 약속을 잡아 홍대의 예쁜 카페에 도착했다.
유진은 치즈케이크와 라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있다.
"와, 지수야 진짜 2년 만이다. 어땠어?"
유진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지수는 답하려다가 폰 진동에 화면을 확인했다.
별 거 아니었지만 그냥 인별을 켰다.
"아 응, 좋았어. 진짜 많이 배웠고."
지수가 폰을 보며 대충 답했다.
폰 화면에는 카페에 도착하면서 찍었던 사진에 새로 달린 좋아요가 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좋았어? 일은 뭐 했어?"
유진이 계속 물었다.
지수와 눈을 맞추려고 했지만 지수는 여전히 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 일? 현지인들이랑 지내면서 많은 거 배웠지."
한인마트에서 계산대를 본 것이 전부 다였지만.
속으로 지수는 생각했다.
”이쁜 곳도 많이 가고 너무 좋았어."
지수는 폰을 내려놓지 않은 채,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인별 스토리를 하나씩 넘겨보고 있었다.
유진이 치즈케이크 포크를 내려놓았다.
"지수야."
갑자기 차분하게 내려간 유진의 목소리.
"응?"
"폰 좀 내려놔. 2년 만에 보는 건데."
"아 미안, 잠깐만."
지수가 폰을 내려놓는 척했지만 몇 초 뒤 또 들었다.
무의식적이었다.
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야, 그러지 말고 뭐라도 알아봐."
지수는 여전히 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비스직이라든지. 넌 예쁘고 영어도 잘하잖아."
"알아보고 있어. 근데 아직 구체적으로는…"
지수의 폰이 또 진동했다.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유진이 표정을 구겼다.
답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수야, 솔직히 말해. 지금 상황이 어때?"
그제야 지수가 폰에서 눈을 뗐다.
하지만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호주? 신기했지. 거기 사람들 진짜 자유롭더라…"
유진이 치즈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며 지수를 바라봤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지수는 어색함을 달래려는 듯 다시 폰을 만지작거렸다. 화면을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나 먼저 가볼게."
유진이 가방을 메며 일어났다.
"어? 벌써?"
"응. 내일 일찍 출근해야 돼."
"아 그래? 그럼 나도…"
지수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지하철 시간을 확인한다는 핑계였지만 사실은 그냥 습관적으로 인별을 켰다.
"지수야, 진짜 뭐든 빨리 알아봐. 알았지?"
"응응, 알겠어. 고마워."
유진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힐끔 보며 지수는 폰을 든 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걸으면서도 지수는 계속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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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집에 혼자 돌아온 지수는 침대에 누워 폰을 켰다.
어젯밤 11시에 올린 셀카에 좋아요가 338개.
어? 어제저녁엔 분명 352개였는데.
누가 좋아요를 취소했을까.
'아 진짜.'
지수는 점점 더 자주 폰을 들여다봤다.
같은 과 동기들은 이미 항공사에 취업해서 유니폼 입은 사진들을 SNS에 올리고 있었다.
인별 피드를 위아래로 쓱쓱 넘기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해 보이는 일상을 구경했다.
예전처럼 자주 사진을 올리지도 못했다.
올릴 만한 게 없었으니까.
집에서 폰만 만지작거리는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더 폰을 붙잡고 있었다.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릴스도 볼 내용이 없어져 컴퓨터 앞으로 간다.
이력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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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 29세 / 여성
경력사항 없음
경험 : PC방 알바, 매장 알바, 워홀 등등
외국어: 토익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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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력서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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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29세.
키 163cm,
이제는 빛이 서서히 바래고 있는 외모.
약간의 얼굴 처짐.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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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쩌다 이렇게 됐지.’
답도 없이 취업 사이트 공고를 확인하던 중,
지수는 하나의 공고를 보게 된다.
| GDL(굿대한랜드) 신입 딜러 모집 |
공기업 / 정년보장 / 서비스직
각종 대출 및 자금 지원, 기념품 지급
외국어 우대 / 3교대 근무
게임운영 서비스 직무 수행 가능자
지수는 스마트폰을 들어 'GDL'를 검색해 봤다.
이미지에 깔끔한 호텔 사진들과 화려한 조명이 보인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관광산업의 선도기업' 대문짝만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채용되면 럭키에잇 카지노에 근무하게 된다고 한다.
'카지노라…’
처음엔 망설여졌다.
하지만 29살 백수.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도 항공과 나왔는데,
키도 크고 예쁘다고 했는데.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회사 후기도 같이 본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술 취한 사람들 상대해야 함"
"돈은 나름 괜찮지만 정신건강 ㅠㅠ"
"여자 딜러들한테 성희롱하는 손님들 많다던데"
지수는 댓글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리고 다시 공식 홈페이지로 돌아갔다.
밝은 색감의 호텔 로비 사진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수는 자신을 합리화했다.
호텔 업계니까 결국 관광산업이지.
해외 손님들도 많이 오고, 그러면 영어도 쓸 수 있고. 호주에서 한인마트에서 일한 경험도 있으니까 실제로 영어로 응대하면서 서비스와 친절함으로 대응했다고 포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공기업이잖아. 정년보장이고.‘
지수는 공기업인 게 마음에 들었다.
연차 쓰고 적당히 일하고,
여행을 가면 예전처럼 멋진 나를 인별에 올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다시 좋아요도 많이 받고.
멋있는 나로 되돌아가는 거야.
거울을 보니 아직은 봐줄 만한 얼굴이었다.
‘아직까진 반반한 외모라고 할 수 있지.'
잠시 지수는 생각에 잠긴다.
'일단 일하자. 돈 좀 모으면 다시 여행 가고 이쁜 사진 올리고.....'
예전에 화려했던 인별 피드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며 지수는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토익 점수와 워홀 경험을 잘 포장시켜 빈칸을 채워 넣었다.
[귀하의 지원서를 성공적으로 접수했습니다.]
모니터에 뜬 메시지를 보며 지수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게 최선인 것 같았다.
폰을 들어 인별을 켰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들이 피드에 가득했다.
마음속에 억눌렸던 열등감이 터져 나온다.
‘언젠가 나도 다시...’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며 이를 악물고,
독기를 품고 잠든 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