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느 카지노 딜러의 이야기 (3)

by 서우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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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lucky Day"

딜러가 계속 이기는 날은 딜러 입장에서는 Unlucky Day이다. 10판, 20판을 잃는 손님 입장에서는 굉장히 화가 나서 딜러한테 팁을 주지 않아 결국 딜러가 버는 것이 없다.

그게 하필 지수가 출근한 첫날부터여서 문제였던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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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첫 출근을 한 지수.


'이제 실전이구나.'

나이트 시프트에 배치받은 지수.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근무해야 하지만 첫 출근이라 긴장한 상태여서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깨끗하게 묶은 머리, 깔끔하게 다리미질된 복장을 입은 채로 지수는 라운지에 도착했다. 카지노장 Staff실에 가니 아주 피곤한 기색을 보이는 선배 여성 한 분이 보였다. 얇은 금색 명찰에는 '안현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수 씨 반가워요. 오늘부터 실전이네요."

전혀 반갑지 않은 피곤한 기색의 표정.

현빈은 성의 없이 빠르게 설명했다.


"사수는 딱 하루만 붙어드려요. '이수진'님이 오늘 지수 씨 사수가 되실 분인데, 내일부터는 혼자서 해야 하니까 오늘 최대한 집중해서 보세요. 제가 바빠서 일일이 다 못 알려드려요."


'하루만?'

지수는 당황했지만 표정 관리를 했다.


"일단 필수만 알려드릴게요. 인아웃 체크하는 법. 손님 들어올 때 칩 확인하고 나갈 때 평균 배팅 금액 입력하는 거예요. 이거 틀리면 간부한테 엄청 혼나요. 칩 보충은 8 스택 이하로 떨어지면 바로 요청하고, 간부 호출은 분쟁 상황이나 큰 금액 배팅할 때만. 괜히 부르면 눈칫밥 먹어요."


숨 돌릴 틈도 없이 쏟아지는 정보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절대 실수하지 마세요. 특히 계산 실수. 한 번 틀리면 사번 따이고 점수에 반영돼요. 간부님들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특히 홍 실장님은 조심하세요. 그날 기분 따라 왔다 갔다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손님들 성향도 빠르게 파악해야 해요. 돈 많이 잃으면 예민해지니까 말 함부로 걸지 마시고, 테이블 분위기 안 좋으면 조용히 게임만 진행하세요. 괜히 친근하게 굴다가 화풀이당할 수도 있어요."


현빈은 시계를 힐끗 보더니 말을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일단 돌아가요. 뭐 모르는 건 나중에 다른 선배들한테 물어보시고... 전 이제 집 가야 해서."


'이게 끝이야?'

지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지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업장으로 내려갔다.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로 내려가면서도 뭔가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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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업장에 들어서자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슬롯머신의 경쾌한 효과음과 바카라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 그 사이로 섞인 중국어와 영어 대화들. 24시간 돌아가는 인공적인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였다.


시간 감각이 사라지도록 설계된 공간 속에서 지수는 흥분과 긴장 속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손님이 들어왔다. 홍콩계로 보이는 40대 남성. 명품 정장에 은색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시계, 하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담배 냄새와 함께 술 냄새도 섞여 나왔다.


"Good evening, sir. Welcome to Lucky Eight Casino."

지수가 연습했던 대로 최대한 밝게 인사했다.


남성은 지수를 한 번 훑어보더니 대답 없이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칩을 꺼내는데 500만원짜리 칩이 빼곡하게 차 있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VIP급 인사였다.


'와... 선배님들한테 들었던 게 진짜구나.'


지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첫 게임인 만큼 남성은 작게 17번에 500만원을 걸었다. 스트레이트 업, 35배 배당.

지수는 연습했던 대로 휠을 돌리고 볼을 떨어뜨렸다. 휠이 돌아가는 소리와 볼이 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24번.


"Shit."

남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두 번째 게임. 이번엔 7번과 8번 사이에 스플릿으로 1000만원을 걸었다.


30번.

또 잃었다.


세 번째 게임에서는 빨간색 전체에 2000만원을 걸었다.

12번. 빨간색이지만 남성이 원하던 번호는 아니었다.


"... Strange. (이상하네.)"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계속해서 남성이 잃었다. 아무리 확률 게임이라지만 연속으로 외면당하는 상황.

"What is wrong with this? (이게 정상이야?)"

남성이 지수를 째려봤다.


"Sir, this is completely random...(손님, 게임은 랜덤합니다.)"

"Shut up. It's very strange. (닥쳐, 정말 이상하다고.)"

남성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계속 잃고 있어 못 마땅한 상황이었다. 벌써 몇 억을 잃어 곧 있으면 수십억을 잃게 되는 상황.


여덟 번째 게임에서 남성이 베팅을 금액을 걸었다. 17번 스트레이트 업, 17이 포함된 스트릿, 빨간색.


지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17번이 나오면 스트레이트 업 35배에 스트릿 11배까지...'

룰렛의 공이 굴러간다.


톡.

또르르륵....

.

.

33번.

검은색.


남성이 갑자기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났다.

그러더니 공이 탁 하고 튀어서 남성의 머리를 툭하고 때린다.


"What the fxxk! (*발!)"

남성이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주변 테이블 손님들이 모두 돌아봤다.


"This game cheating, ah? I bring big money, but only I keep losing! (이 게임 조작하는 거 아냐? 계속 내가 잃기만 하잖아!)"


지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Sir, please calm down. This is completely fair game...(손님 진정하세요, 공정한 게임입니다.)"


"F**k! What is wrong with you b**ch! (*발, 뭐 하는 년이야!)“


다른 손님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수인 수진이가 뒤에서 나타났다.


"Sir, I’m sorry, but you’re disturbing the other guests. Could you please calm down? (손님, 죄송하지만 다른 고객들께 피해가 되고 있습니다. 조금 진정해 주시겠어요?)"

하지만 남성은 더욱 흥분했다.


"How can I keep losing like this? This is cheating! (이렇게 계속 잃을 수가 있어? 이건 조작이야!)"

남성이 칩을 집어던지려는 순간, 간부가 급하게 달려왔다.

홍 실장. 지수가 말로 들었던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뭐야, 첫날부터 이런 상황을 만들어?"

홍 실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지수를 향했다.

손님을 달래기보다는 지수를 먼저 질책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진정시키는 것도 딜러 업무야. 첫날부터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떡해?"

"실장님, 제가 옆 테이블에 있었는데 지수 씨 잘못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진이 변호해 줬지만 실장은 이미 얼굴을 가뜩 찡끄린 표정이었다.


"사수는 뭐 했어? 신입 관리도 제대로 못해? 너도 경력이 얼마나 된다고..."

수진까지 함께 혼나는 상황.

지수는 더욱 위축되었다.

다른 딜러들이 힐끗 눈빛을 흘긴다. 하지만 도와주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우리 일에 지장 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라고 바라보는 표정. 오히려 '첫날부터 사고 치네'라는 식의 시선들이 지수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이들에게 신입 딜러는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평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에 연루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런 일 또 생기면 바로 잘라버릴 거야."

홍 실장이 차갑게 말하고는 손님을 달래러 갔다.


손님이 정리되고 나서도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


"첫날부터 이런 일 만들면 곤란해요. 앞으로 조심하세요."

수진이 조용하게 지수한테 건넨 말이 마지막 경고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다른 딜러들도 지수를 힐끗힐끗 보면서 각자 자리에서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누구도 위로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부족했어요."

풀이 죽은 지수의 목소리.

수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녀도 피곤해 보였다.


"이런 일 한두 번 일어나요. 그래도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 원래 첫 한 달이 제일 힘들어요."


'한 달이나 더?'

수진이 툭 던진 말이 지수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다.


나머지 근무 시간 동안 지수는 계속 긴장 상태였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마다 혹시 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손이 떨려서 칩을 제대로 쌓지도 못했고, 계산할 때도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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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저 신입 때문에 오늘 분위기 다 망쳤네."

"우리 테이블까지 영향받으면 어떡하지."

수군거리는 다른 딜러들.


지수는 '첫날부터 사고 친 신입'이라는 낙인이 찍힌 느낌이었다. 휴식 시간에도 다른 딜러들이 지수를 피하는 게 느껴졌다.


"신입들 요즘 멘탈이 약해. 우리 때는 맞으면서도 버텼는데."

"교육 과정이 너무 짧아진 것 같아. 현장 적응 못하는 애들이 많아져."

혼자 구석에서 커피를 마시는 지수를 보며 몇몇 선배들이 수군거렸다.


'하... 어쩌지...'

지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너무 고된 일정이었다.


홍 실장이 유독 지수 테이블만 자주 지나다니며 체크했다. 칩 배치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눈짓으로 지적했고, 게임 진행 속도가 조금 느려도 째려봤다.


"신입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 다른 딜러들과 똑같은 기준이야."

중간에 홍 실장이 귀엣말로 경고했다.


지수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오전 1시쯤, 또 다른 홍콩 손님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50대 여성이었는데 첫 번째 남성보다 더 까다로워 보였다. 이미 한 번 실수했던 것을 수습해야 하는 마음에 지수는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교육받을 때 한 번도 안 했던 계산 실수를 한다.


여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Change the dealer.(딜러 바꿔줘.)"

"Excuse me?"

"You’re a rookie. Get me another dealer.(신입 티 너무 나. 다른 딜러 불러.)"

지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주변 딜러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I’m sorry, but it’s not shift change time yet…(죄송하지만 지금 교대 시간이 아니어서...)"

"Then I'm not in. (그럼 나 안 해.)"

여성이 일어나려 하자 홍 실장이 다시 나타났다.


"뭔 일이야?"

"손님이 딜러 교체를 요청하시는데..."

홍 실장이 지수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는 '너 때문에 하루 종일 귀찮게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결국 다른 딜러가 와서 교대했다. 지수는 일찍 근무를 마쳐야 했다.


"지수 씨, 사무실로 와봐요."

홍 실장의 부름에 지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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