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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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씨, 사무실로 와봐요."
첫날부터 실수를 저지른 지수. 연수원 생활을 무난히 마쳤던 지수는 성질이 변덕스럽다는 홍실장에게 찍혀 사무실로 불려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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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첫날인 건 이해해. 하지만 손님들이 계속 불만을 제기하면 우리도 곤란해."
홍 실장의 목소리가 차갑다.
"우수조였다면서? 그럼 현장에서 왜 이 모양이야! 교육원이랑 실전은 달라. 긴장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계약 해지될 수도 있어."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순간 홍 실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베팅 계산을 틀리면 어떻게 돼? 그 손님이 100만 원 걸었는데 당신이 50만 원으로 착각해서 칩을 줬잖아. 그것도 두 번씩이나."
홍 실장, 한숨을 푹 쉰다.
지수는 그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바카라 테이블에서 칩을 잘못 계산했을 때, 주변에 서 있던 다른 딜러들이 하나둘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또 다른 이는 동료에게 뭔가 속삭였다. 그 시선들이 지수의 등을 따갑게 찔렀다.
"이 XXX 년아! 열심히 하는 걸로 돼? 그 사람 우리 VIP 중에서도 큰손이었다고!"
50대 여성 VIP가 보인 반응이 지수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차가운 말.
“이 딜러는 아마추어 같다.”
아마추어.
그 단어가 지수의 가슴에 박혔다.
"다음부터는 혼자야. 실수하면 두 번 기회는 없어."
사무실을 나서며 지수는 동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대놓고 비웃는 표정이었고, 어떤 이는 동정 섞인 눈빛으로 쳐다봤다. 둘 다 견딜 수 없었다.
라커룸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지수는 거울 속 자신을 봤다.
겨우 하루였는데 벌써 지쳐 보였다. 온몸이 무거웠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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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퇴근길. 오전 3시 반.
서늘한 밤공기, 어두운 하늘을 쳐다본다. 오늘 일어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동료들의 기웃거리는 시선, VIP의 차가운 목소리, 홍 실장의 화난 표정.
'아마추어라고 했어. 맞아, 나는 아마추어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럭키에잇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을 했어도, 실전은 달랐다. 손님들의 예리한 눈빛 앞에서는 모든 게 달라 보였다. 그 날카로운 시선들이 지수 마음에 계속 비수처럼 박혔다.
휴대폰을 들어 8조 단톡방을 열었다.
지수:... 나 잘할 수 있을까..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지운다.
'이 새벽에 카톡 보내봤자 뭐 하냐..'
마음이 너무 착잡하다. 이렇게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니.
그럴 즈음 원경이한테 카톡이 왔다.
원경: 언니 괜찮아요? 저도 정신없어서 지금 연락하는데 같이 가요!
'맞다... 원경이도 오늘 같이 출근했지.'
원경이의 말에 지수는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지수는 핸드폰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원경이에게 털어놔봤자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혼자 있기엔 너무 답답했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하다.
오늘이 첫날인데 벌써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한 달은 어떻게 버텨야 할까?
'진짜 할 수 있을까?'
지수는 핸드폰을 다시 꺼낸다.
지수: 원경아, 같이 술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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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새벽 시간, 편의점에 술을 주섬주섬 사고 원경이네 집으로 왔다. 럭키에잇 카지노에서 15분 걸으면 나오는 자취방. 원경이가 거기에 사니 근처에서 술을 먹는 게 어떠냐고 먼저 제안을 했다.
원경이 방에 들어가니 가지런히 놓인 서재와 원목 느낌의 인테리어, 아주 깔끔한 모노톤 베이지색 책상이 공부방처럼 놓여 있었다. 원룸인데도 공간을 알차게 서서 버리는 것 없이 필요한 부분만 딱 있는 깔끔한 느낌이었다. 여행 에세이와 해외 원서들이 차곡차걱 정리된 것이 눈에 띄었다.
원경이가 테이블을 중간에 두고, 맥주 2캔과 마른오징어를 놓았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언니, 오늘 뭔 일 있었어요?"
지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VIP 고객이 '아마추어'라고 했던 것, 동료들의 시선, 홍 실장에게 혼난 것까지.
"아, 진짜 스트레스 받겠다. “
원경이가 맥주를 먹으면서 ‘캬아~!’ 소리를 낸다.
“나도 처음엔 떨려서 난리였는데."
원경이가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도 언니 진짜 멋져요. 이런 어려운 일도 하시고."
"멋져?"
지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뭐가 멋져. 실수투성이인데."
"아니에요! 언니 워홀도 다녀오셨잖아요. 저도 언니처럼 꼭 해외 경험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돈 모아서 가족들이랑 베트남이라도 가보려고요."
원경이의 눈이 반짝였다. 지수는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넌 왜 그렇게 외국에 대한 동경이 있어?"
목소리에 약간의 날이 서 있었다.
자신의 워홀 실패와 겹쳐 보여서 기분이 복잡했다.
원경이가 잠깐 멈칫했다.
지수의 말투에서 뭔가를 느낀 듯했다.
신중하게 말을 골라내는 듯한 태도였다.
원경이는 조금 더 진솔하게 말했다.
세상은 넓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남기고 싶거든요.
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원경이의 말이 마음 깊숙이 박혔다. 자신은 언제부터인가 그런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렸구나. 자신의 실패를 다른 사람에게 투영하려 했던 이기적인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아, 그리고 언니. 다음번에 긴 연휴 돌아오면 그 전이 8조 친구들이랑 같이 모이는 거 어때요?"
초롱초롱한 원경이의 눈. 같이 야근을 한 것이 맞냐고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응... 좋아."
지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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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몇 주가 지났다. 지수는 매일 출근하기 전 카드 배분과 칩 계산을 연습했다. 실수는 줄어들었지만, 그날의 악몽은 계속 따라다녔다. 동료들의 비웃는 시선, VIP의 차가운 목소리.
몸도 점점 지쳐갔다. 하루 8시간씩 서서 일하다 보니 발목과 무릎이 아팠다. 카드를 계속 다루느라 손목도 결렸다. 새벽에 퇴근해서 낮에 자고, 저녁에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생체리듬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담배 냄새였다. 업장에서 나오면 옷과 머리카락에 냄새가 배어 있었다. 샤워를 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어... 지수야. 바카라 딜링할 때 카드 각도를 조금 더 이렇게 해봐."
사수였던 수진이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처음 받는 제대로 된 조언이었다.
홍 실장은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많이 나아졌긴 한데, 아직 멀었어. 또 실수하면 어떡하려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이렇게 괴로운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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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두 달 정도가 지난 후, 지수는 확실히 늘어있었다. VIP 룸에서도 큰 실수 없이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중국 사업가 VIP 한 분이 바카라를 하고 있었다. 게임이 끝나고 통역사가 말했다.
"딜러분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하시네요. 혹시 결혼 안 하셨냐고, 아들 소개해주고 싶다고."
주변에 같이 게임을 진행하던 VIP들도 웃음이 터졌다. 지수도 당황하며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다.
그 후로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됐다. 고객들의 칭찬, 동료들의 인정. 하지만 뭔가 공허했다.
휴게시간에 지수는 전자담배를 꺼냈다. 언제부터인가 피우기 시작했다. 다른 딜러들과 손님들을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바카라, 룰렛, 블랙잭. 돈을 거는 사람들, 돈을 잃고 화내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조용히 게임을 진행하는 자신.
'내가 과연 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건가?'
‘내가 원하던 삶이 뭐였지..?’
어떤 고객은 하루 종일 앉아서 수백만 원을 잃었다.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지수는 지켜봐야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것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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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언니, 다음 달에 휴가 내서 베트남 가려고요!"
원경이가 신나게 말했다. 근무 시간이 자주 겹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수는 원경이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둘은 퇴근 후 늘 들르는 편의점 앞에서 캔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베트남어 조금씩 배우고 있어요. 여기서 만난 베트남 손님분이 현지 맛집 리스트도 줬어요."
원경이는 정말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지수는 그 모습을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언니는 언제 어디 가실 거예요?"
지수는 답할 말이 없었다.
돈은 벌고 있지만, 정작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었다. 원경이처럼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설렘도 없다. 이미 해외라면 지겹게 경험해 봤고.
"언니, 괜찮아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아니야, 괜찮아. 그냥 피곤해서."
거짓말이었다.
피곤한 게 아니라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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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새벽 4시. 또 다른 퇴근길.
지수는 택시를 타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 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 이 시간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은 다들 어떤 사람들일까?
나처럼 카지노에서 일하는 사람들, 새벽 배송을 하는 사람들, 야간 근무를 마친 사람들.
우리는 다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을까?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며 거울 속 자신을 봤다. 몇 달 전보다 야위어 보였다. 담배 냄새는 여전히 머리카락에 남아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럭키에잇에 공부하고 입사했을 때는 분명 안정을 찾아간다는 기분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또 어디론가 방황하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명 뭔가 목표가 있었는데. 그때는 매일이 의미 있었는데.’
지금은 돈을 벌고 있지만, 그 돈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핸드폰을 들어 8조 단톡방을 봤다. 며칠 전 강주리가 8조 모임을 진행하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 약속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뭘 이야기해야 할까?
나는 지금 뭘 하며 살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원경이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다양한 경험, 해외여행, 새로운 만남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정말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20대가 지나서 30대가 되어 앞으로 할 목표가 흐려젔고, 그 열정을 다시 태울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
지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흘러가는 시간과 몰려오는 피로감에 침대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