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어느 카지노 딜러의 이야기(完)

by 서우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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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원경이가 죽었다.

삼일장이 열린 장례식장은 사고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마련되었다. 빈소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영정사진 속 원경이의 환한 미소였다. 가족들과 함께 찍었던 여행 사진이었다. 베트남에서 찍었을까.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우리 가족 어떡해...."


원경이의 이모가 영정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업무 때문에 한국에 남아있었던 유일한 가족.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원경이의 친구들, 카지노 동료들, 그리고 몇몇 지인들. 슬퍼해줄 가족들은 모두 그 비행기에 함께 있었다.


지수는 주리, 유안과 함께 앞으로 나가 절을 올렸다. 향을 피우고 영정사진을 다시 바라봤다. 발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리와 유안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진짜일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픔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빈소를 나서는 세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주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안도 지수도 대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가자."


지수의 말에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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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장례식 다음 날, 지수는 평소처럼 출근했다.

동료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괜찮아?"

"응, 괜찮아."

지수는 그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괜찮은 것 같았다.

바카라 테이블에 서서 카드를 나눴다.


칩을 정리했다.

손님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다.

원경이 빼고.


원경이가 서 있던 테이블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딜러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휴게실에서 원경이가 앉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퇴근길에 같이 걸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이틀째도, 사흘째도, 일주일째도 마찬가지였다.


"야? 괜찮지? 일 똑바로 해."

홍 실장이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지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속으로 외쳤다.


'안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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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휴게실 자판기 앞에서 지수는 버튼을 눌렀다. 평소처럼 캔 커피를 뽑으려다가 실수로 옆 버튼을 눌렀다.


쿵.

복숭아 아이스티.


원경이가 항상 마시던 음료였다.

"언니, 저 이거 진짜 좋아해요."

복숭아 아이스티를 들고 환하게 웃던 원경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청 달던데?"
"그래서 좋은 거죠. 힘들 때는 단 게 최고예요."

손이 떨렸다. 캔을 들어 올리는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

아.'


지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원경이가 정말 죽었구나.

더 이상 함께 퇴근할 수 없구나.

더 이상 옆에서 웃는 얼굴을 볼 수 없구나.


휴게실을 뛰쳐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칸막이 안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지수는 소리를 죽이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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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집에 돌아와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수는 베란다에 전자담배를 피우며 핸드폰을 켰다.

카톡을 열었다.

원경이의 프로필.


'1.1. ~ 1.7. 휴가, 가족들과 행복한 베트남 여행!'


프로필 사진에는 가족들과 함께 웃고 있는 원경이가 있었다.

톡방을 열었다.

원경이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들.

"언니, 괜찮을 거예요. 언니는 멋진 사람이니까요."

천천히 다시 읽었다.

"언니는 잘 기억하고, 그걸 위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수용이 정말 빨라요. 뭔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한 번 상대방 입장에서도 고민해 보고, 그냥 넘겨짚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들어주고, 시도해 보고 답을 주려고 하잖아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언니는 잘할 거예요. 분명."

원경이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

"세상은 넓고,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들고 싶다며. 잘 다녀와."

아직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미안해, 원경아."

지수는 핸드폰을 껴안고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지수는 갤러리를 열었다.

예전에 찍어둔 영상들이 있었다.

캐나다 워홀 때, 여행을 다니며 찍었던 영상들.

한때는 이걸로 유튜브를 해볼까 싶었지만 바쁜 일상에 잊고 지냈던 것들.


"언니, 이 영상 진짜 재미있는데요? 기획도 좋고. 근데 이 부분 편집이 조금 아쉬워요. 여기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때요?"


원경이가 영상을 보며 해줬던 피드백들이 떠올랐다.


"꼭 올려봐요. 사람들이 좋아할 거예요."


지수는 편집 프로그램을 켰다.

처음엔 조회수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원경이 생각이 나서.

원경이가 말했던 대로 하나씩 고쳐가며 영상을 만들었다.


'봐, 원경아. 네가 말한 대로 고쳤어.'

'이제 괜찮아?'


대답은 없었지만, 계속 영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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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시간이 약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어떤 상처는 시간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원경이와 보냈던 시간들이 그랬다.


한 달이 지났다.

지수는 여전히 카지노에서 일했다.

출근하고, 카드를 나누고, 퇴근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 하지만 뭔가 달랐다.


휴게실에서 복숭아 아이스티가 보일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원경이가 서 있던 테이블을 지날 때마다 걸음이 느려졌다. 퇴근길을 혼자 걸을 때마다 적막했다.

그래도 영상은 계속 만들었다. 원경이가 피드백해줬던 부분들을 하나씩 고쳐가며.


6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한 영상의 조회수가 급격히 올랐다.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여행 콘텐츠 찾고 있었어요."

"진짜 현지 분위기가 느껴져요."

원경이가 좋아할 만한 댓글들이었다.

지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봤다. 가슴이 벅찼다.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밀려왔다.

'봐, 원경아. 사람들이 좋아해.'


1년이 지났다.

구독자가 조금씩 늘었다. 영상 요청 댓글도 달렸다. 광고 수익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지노 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매일 똑같은 바카라 테이블. 똑같은 칩 소리. 똑같은 손님들의 얼굴.

주리와 유안을 만났을 때, 지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희들은... 계속 여기서 일할 거야?"

"글쎄. 아직 모르겠어. 너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어느덧 지수는 이제 선배가 되어 신입 딜러들을 교육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날도 평범한 교대 시간이었다. 지수가 교육한 신입이 슈에서 카드를 교체하고 있었다.

"확인 제대로 했어?"

"네, 선배님."


하지만 게임이 시작되고 얼마 안 가서, 빨간 카드 사이에서 파란 카드가 나왔다. 순간 테이블이 얼어붙었다.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간부가 달려왔다. 신입 딜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안합니다, 선배님. 제가..."

"괜찮아. 실수는 누구나 해."

간부에게 혼나는 신입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도 저랬었는데.'

원경이라면 이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아마 걱정스러운 얼굴로 격려해 줬겠지.

"괜찮아요,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켰다.

유튜브에 댓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이 영상 보고 용기 내서 여행 갔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지수는 멍하니 그 댓글을 바라봤다.

내 영상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줬다.

원경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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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사직하고 싶습니다."

인사 담당 간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 일도 잘하고 있고, 여기서 계속하면 승진도 빠를 텐데.“


지수가 고개를 잠시 숙이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기 일이 싫었던 건 아니에요. 많이 배웠고, 성장했고. 하지만 이젠 다른 길을 가보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수의 손이 떨렸다.

'이게 맞는 건가.'

원경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언니, 괜찮을 거예요. 잘 선택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을까.

아니면 걱정스러운 얼굴로,

"언니, 정말 괜찮으세요?"

라고 물었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원경이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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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마지막 근무 날.

동료들이 작은 송별회를 열어줬다.

주리와 유안도 왔다.


"진짜 가는 거야?"

"응."

"후회 안 해?"

"글쎄. 해봐야 알겠지."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나가서도 잘할 거야. 넌 뭘 해도 잘할 스타일이라."

주리의 확언에 지수도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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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스페인행 티켓을 끊었다. 원경이가 노래를 부르면서 가고 싶었던 곳.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 지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 섰다.

관광객들이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거리 음악가가 기타를 연주했다.


지수는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카메라를 통해 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햇살이 건물에 부딪혀 반짝였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원경이는 이 거리를 걷지 못해.'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먹먹했다.


'가족들과 웃으며 사진 찍는 저 사람들처럼, 원경이 가족은 다시 여행을 올 수 없어.'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도 지수는 셔터를 눌렀다.


"봐, 원경아. 세상은 정말 넓어. 네가 말한 대로."

읽지 않음.


"내가 대신 담아줄게. 네가 보고 싶어 했을 풍경들."

읽지 않음.


여전히 답은 없었다. 아마 평생 답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지수는 걸어간다. 원경이의 몫까지.


카메라 뷰파인더 속 바르셀로나가 흔들렸다.

눈물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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