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합니다.
----
■ 2.
새벽 2시. 무전기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신고 접수가 들어왔다.
치-이익
"간담랜드 앞 무료급식소 근처, 폭행 사건. 출동 바람."
한결은 순찰차 시동을 걸었다. 옆자리의 후배 김 순경이 하품을 했다.
"또 그쪽이네요. 요즘 거기 자주 터지던데."
"그러게."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무료급식소 앞 골목. 한 남자가 노숙자를 밀치고 있었다.
"이 XX가! 돈 빌려달라고? 너 저번에도 그랬잖아!"
"죄송합니다... 정말 딱 만 원만..."
노숙자는 50대로 보였다. 헐렁한 점퍼에 찢어진 바지. 술 냄새와 토 냄새가 섞여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경찰입니다. 그만하세요."
한결과 김 순경이 두 사람을 분리했다. 피해자는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이 새끼 저번에도 나한테 돈 빌려달라고 했어요! 안 주니까 따라와서 욕하고!"
"알겠습니다. 진정하시고 여기 앉으세요."
한결은 노숙자를 순찰차 쪽으로 데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더 처참했다.
볼이 푹 꺼지고,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손은 계속 떨렸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최범수."
"주민등록번호는?"
"71... 아니 72... 잠깐만요..."
자기 생년월일도 제대로 기억 못 했다.
김 순경이 신원 조회를 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형님, 이 사람 전과 5범이에요. 도박, 사기, 절도..."
"또?"
"네. 최근 6개월 동안만 벌써 네 번째 신고예요. 전부 간담랜드 근처에서."
한결은 노숙자를 다시 봤다. 최범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왜 자꾸 이러세요?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하시든가."
"... 오늘 딸 거예요."
"네?"
"오늘은... 꼭 딸 거예요. 느낌이 와요. 꿈에서 하느님이..."
최범수가 중얼거렸다. 눈빛이 흐릿했다.
"만 원만 있으면... 만 원이면 십만 원 되고... 십만 원이면 백만 원 되고..."
"정신 차리세요."
한결이 어깨를 흔들었지만 최범수는 계속 중얼거렸다.
"어제도... 조금만 더 했으면... 조금만 더..."
김 순경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형님, 저 인간들 맨날 저래요."
"... 그래?"
"네. 후딱 정리하고 빨리 퇴근하시죠."
한결은 최범수를 봤다. 남루한 옷차림, 떨리는 손, 흐릿한 눈빛.
'저 사람도 예전엔 멀쩡 했겠지.'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것이고,
누군가의 남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멀쩡한 직장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 일단 유치장 데려가자. 피해자가 처벌 원하면 조서 쓰고."
최범수를 순찰차 뒷좌석에 태웠다. 그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었다.
차문을 닫는 순간,
한결은 최범수의 손목을 봤다.
시계 자국이 선명했다.
시계를 차고 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없었다.
아마 전당포에 맡겼겠지.
'나는 저렇게 안 될 거야.'
한결은 생각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
■ 3.
주말. 한두 달이 지나고 한결은 오랜만에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갔다.
순무가 죽은 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발령받고는 6개월이 지나고, 한결은 업무에 치여서 집에 자주 들르지 못했다. 강원도에 출발해서 아내가 있는 집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내가 거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순무의 사진을 쓰다듬고 있었다.
한결은 천천히 다가가 거실에 앉았다.
"아침에 밥을 안 먹더니... 점심쯤에..."
순무.
12년을 함께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주워온 길고양이.
손바닥만 했던 녀석이 어느새 12살이 됐다. 연애할 때도, 결혼할 때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함께였다. 딸이 태어나서 집으로 오던 날, 순무가 근처로 다가와 야옹 울었던 것도 기억난다.
"제대로 수술도 못하고 결국 죽었어."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한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쩔 수가 없잖아. 2000만 원을 구할 수도 없고."
정적. 아내가 싸늘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 당신이 돈 없다고 했잖아."
감정이 차오르던 한결의 아내는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두 달 전에 말했을 때 당신이 뭐라고 했는데. '지금 여유 없어. 좀 기다려봐.' 그래놓고 주식은 계속하고 있었잖아."
"그건..."
"알아. 다 잃었다는 거. 통장에 253원 남았다는 것도 알아."
한결은 입을 다물었다.
아내가 고개를 들어 한결을 봤다.
"우리 순무가... 돈이 없어서 죽었어."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아내가 한결을 노려본다.
"당신 때문에."
저녁을 먹지 않았다. 아내도, 한결도.
아내가 입을 열었다.
"여보. 나... 힘들어."
"... 나도 힘들어."
"나는 하루 종일 애랑 둘이야. 밖에도 못 나가. 아는 사람도 없어. 당신이라도 있으면..."
"나는 안 힘들어? 매번 있는 야간근무 꾹꾹 참고 여기 오려고 4시간 운전해서 오는데!"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도 당신은 밖에 나가잖아. 사람도 만나고. 나는..."
"사람 만나? 노숙자들 상대하고 술 취한 놈들 말리는 게 사람 만나는 거야?"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일을 하라고? 애는 누가 봐!"
"... 벌이라도 있으면 애 맡기지!"
순간 한결의 입에서 아내를 향한 비수가 날아갔다.
"당신이 얼마 버는데!"
침묵.
아내의 얼굴이 굳었다.
"... 뭐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내가 애 낳아서 일 못하게 됐다는 거지? 내가 짐이라는 거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당신도 육아휴직 냈잖아. 그래서 발령받은 거잖아. 근데 그게 내 탓이야?"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고 있었다.
한결이 말했다.
"... 그래. 맞아. 우리 둘 다 육아휴직 냈지. 그래서 나 발령받았어. 그래서 지금 이 꼴이야."
"이 꼴?"
"매달 대출 이자 80만 원씩 나가. 월급 230만 원으로 어떻게 살아. 순무 수술비도 못 내고. 통장에 2만 원 남았어. 이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야?"
"난 결국 회사에서 잘렸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해?“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한결이 소리쳤다.
딸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내가 딸을 안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한결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뭘 잘못한 거지.'
머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그냥... 가족 먹여 살리려고 한 건데.'
주식도 그래서 했다.
돈 벌어서 아내 편하게 해 주려고.
집도 넓은 데로 옮기고,
차도 바꾸고.
근데 다 날렸다.
방에서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딸도 울고 있었다.
한결은 일어났다. 현관으로 향했다.
아내가 방문을 열고 물었다.
"어디 가?"
"... 잠깐 바람 쐬고 올게."
"지금 몇 신데."
"금방 올게."
"가. 그냥 가. 니 강원도 가든지 어디든지 가."
한결은 대답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에 올라 조수석 서랍을 열었다.
봉투가 나왔다.
비자금 70만 원.
원래는 긴급 상황용이었다. 아내 생일 선물이나, 딸 장난감이나 사려고.
순무는 이미 죽었다.
아내는 방문을 잠갔다.
딸은 울고 있다.
'그깟 돈... 구하면 되잖아.'
한결은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에 '간담랜드'를 검색했다.
예상 소요 시간: 42분.
새벽 1시 30분.
도로는 한산했다.
운전하면서 한결은 계속 생각했다.
'70만 원으로 돈을 벌자.'
하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