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어느 카지노 경찰관 이야기 (4)

by 서우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 단체, 종교, 지명, 사건 등과는 무관합니다.

---

■ 12.

뭔가 홀린 것 같았다.

칩을 걸 때마다 이겼다. 플레이어, 플레이어. 연속으로 맞췄다.

"저 사람 대박이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시작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시선이었다.

'그래, 이제야 여기서 빛을 발하는구나.'

"플레이어 승."

또 이겼다.

300만 원이 400만 원이 됐다.

10만 원씩 조심스럽게 걸던 한결은 이제 20만 원을 걸기 시작했다.

이겼다. 420만 원.

'이거... 되는데?'


심장이 뛰었다.

계속 이기다 보니 300만 원짜리 칩이 어느 500만 원어치가 되었다. 테이블에 있는 칩이 두둑해졌다.


주식에서 파란색 빨간색 그래프가 요동치면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보다도, 실시간으로 쌓이는 칩을 보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눈에 보이니까. 한결은 그 순간에 흥분하고 있었다.

"베팅해 주세요."

'크게 가보자.'

100만 원을 걸었다.

“플레이어 승."

600만 원.

옆에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형님, 오늘 대박이시네요. 어떻게 그렇게 다 맞추세요?"
"그냥... 감으로요."
"감이 장난 아니신데요? 저도 형님 따라 걸어도 될까요?"

한결은 웃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 정도 돈이면...'


600만 원.


목표했던 돈이다. 대출 이자 6개월 치를 넘었다. 아니, 원금도 조금 갚을 수 있다.


아내한테 주면... 아내가 뭐라고 할까.

'당신 어디서 이런 돈을 벌어왔어?‘

범죄자 잡아넣어서 실적 잘 받아서 보너스 받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려나 생각하려던 찰나에 연락이 왔다.


띠링.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자기 퇴근했어? 연락이 도통 없네."

시간을 봤다.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답장해야 하는데...'

"베팅해 주세요."

딜러의 목소리.

'한 판만 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번에 300만 원을 걸었다.

”플레이어 승."

900만 원.

환호성이 나왔다. 옆에 같이 건 남자가 어깨를 쳤다.

"형님! 대박! 운수 좋은 날이네요!"

운수 좋은 날.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

■ 13.

새벽 1시.

한결 앞에는 어느새 1000만 원어치의 칩이 쌓여있었다.

'여기서 그만둘까?'

순간 망설여졌다.


'아니야. 조금만 더...'

그러면 정말 여유가 생긴다. 대출도 빠르게 갚고, 딸아이 육아비도 낼 수 있다.

"베팅해 주세요."

100만 원을 플레이어에 걸었다.

카드가 나왔다.

내추럴 나인.

"뱅커 승."


100만 원이 사라졌다.

900만 원.

'괜찮아. 아직 많이 남았어.'

다시 900만 원을 걸었다. 이번엔 뱅커에.

"플레이어 승."

800만 원.

손이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진정해. 두 번 진 거야. 다시 이기면 돼.'

200만 원을 플레이어에 놓았다.

"뱅커 승."

600만 원.

'이상한데...'

아까까지 계속 이기지 않았나. 왜 갑자기.

200만 원을 걸었다. 잃은 것을 다시 회복해야 했다.

"뱅커 승."

400만 원이 됐다.

'안 돼...'

다시 200만 원.

"플레이어 승."

200만 원.

손이 심하게 떨렸다.

'본전... 본전만...'

원금은 300만 원이었다. 지금 200만 원. 100만 원만 따면 된다.

50만 원을 걸었다.

"뱅커 승."

250만 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돌아와.'


그 순간.

최범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떨리는 손. 흐릿한 눈빛.

"따서 찾아올 거야..."

한결은 고개를 저었다.

150만 원을 걸었다.

"뱅커 승."

100만 원.

'안 돼...'

100만 원을 전부 걸었다.

"뱅커 승."

200만 원.

'조금만 더. 300만 원까지만.'

100만 원을 걸었다.

"타이."

무승부. 돌려받았다.

다시 200만 원.

"뱅커 승."

50만 원. 잃었다.


'안 돼... 안 돼...'

150만 원을 전부 걸었다.

"뱅커 승."

0원.

.

.

.

한결은 빈 테이블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칩이 하나도 없었다.

딜러가 말했다.

"게임 계속하시겠습니까?"

.

.

.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을 꺼냈다.

카드. 현금. 신분증.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손님, 게임 계속하시겠습니까?"
"... 아니요."

한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화장실로 걸어갔다.

---

■ 14.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

한결은 빈털터리가 되었다.

칩이 없었다.

300만 원.

전부 사라졌다.

월급 150만 원. 첫날 딴 돈 150만 원. 합쳐서 300만 원.


4시간 만에 전부 날렸다.

'어떻게 된 거지.'

1000만 원까지 갔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왜.

왜 멈출 수 없었을까.

핸드폰을 꺼냈다. 아내한테 부재중 전화 7통. 카톡 12개.

"자기야 어디야?"
"왜 연락이 없어?"
"무슨 일 있어?"

아내의 카톡이 이어졌다. 장문의 카톡도.

"전화 좀 받아."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내일 얘기하자."

마지막 카톡 시간. 새벽 1시 23분.

한결은 핸드폰을 꺼버렸다.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봤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나 뭐 하는 거야.'

세면대에 손을 짚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300만 원...'

비자금 70만 원으로 시작했다. 150만 원을 땄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욕심을 부렸다. 300만 원을 더 가져왔다.

결국 전부 잃었다.

'아내한테 뭐라고 하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내의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았다.

아내가 있는 집으로 한결은 차를 돌려서 향했다.

---

■ 15.

새벽 4시 반.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조용히 열었다.

거실 불이 꺼져 있었다. 아내는 자고 있는 것 같았다.

한결은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돌아누웠다.

"왔어?"
"... 응. 미안. 야근했어."
".. 연락도 없이?"
"야근 중이라 정신없었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말했다.

"... 알았어. 자."

한결은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300만 원...'

어떻게 메꾸지.

다음 월급? 150만 원.

그래도 150만 원이 모자라다.

'야근 수당으로 조금씩 벌었다고 하면...'

머릿속이 복잡했다.

---

■ 16.

일주일, 이주일이 지났다.

한결은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순찰 중에도, 서류 작업 중에도, 문득문득 그날 밤이 떠올랐다.

1000만 원까지 갔던 순간. 주변에서 추켜세우는 순간, 그리고 전부 잃은 순간.

"이 경장. 이 경장!"

석 경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예?"
"뭐 해? 서류 언제 처리할 거야?"
"아, 죄송합니다. 지금 하겠습니다."

석 경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저 새끼가.'


석주현 경위. 밑의 사람들 갈구기로 유명한 싸가지 없는 놈. 예전 같으면 속으로 삭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달랐다. 짜증이 쉽게 올라왔다.

'월급 고작 150만 원 받으면서 왜 저렇게 굽신거려야 하지.'


그날 밤, 1000만 원을 들고 있을 때가 떠올랐다.

'한 번만 더 가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형님!"

한결이 잠시 생각 속에 빠지려던 순간 김 순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찰 돌 시간입니다.”

그래도 일은 굴러가야 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1화#11. 어느 카지노 경찰관 이야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