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버이날 라디오

by 서우

어느덧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휴대폰 달력은 5월 8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하고 자주 싸우면서 보냈던 유년기는 주황 신호등처럼 흐릿한 기억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내가 이제 그 당시 어머니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퇴근하고 나서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건다.


내비게이션에는 납골당 주소를 툭툭 입력하면서,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의 세월과 시간을 툭툭 건드렸다.


솔직히 어머니하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좋은 기억들이 손에 꼽힐 정도로,

가족이 같이 웃은 날이 있었나.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따뜻한 반찬, 온화한 미소, 가족들과의 티키타카.


그런 평범한 모습이 우리 가족에게는 없다고 느끼고 스스로 비교하게 되면서 아쉬워하는 날이 즐거워하는 날보다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도 흐릿해진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려 보고, 기억을 하나 둘 더듬어 보려는 것은...


내가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파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

무덤을 파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엔진 소리 가득한 차 안.


홀로 남겨진 나와 엔진 소리만 가득한 차 안에서 나는 적적함을 떨쳐 내기 위해 FM 라디오를 만지작거린다. 옛날 TV랑 라디오에서 들었던 방송들을 추억한다.


“고속도로정보입니다, 지역별 교통정보, 사고소식과..."


치... 이이이익.

내가 기억하는 소리, 주파수를 찾아본다.


“Somehow ~ I cannot hide ~ who I am...”


TV와 컴퓨터가 전부였던 어린 시절 세상에서 봤던 뮬란의 목소리.


"Reflection"을 부르는 청아한 목소리.


비디오 대여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플레이어로 봤던 디즈니 영화들.


싸우는 게 다반사였으나... 아주 가끔....

아주 가끔 TV에서 진행되는 종편 드라마들을 가족들과 같이 보면서 하하 웃던 그 모습.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나 자신도 너무나도 낡고 닳아버렸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왜 나를 낳으셨느냐고 하소연을 하고 싶어도 이제는 볼 수 없는 두 분.

납골당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길을 따라 차를 움직이면서 나를 이루고 있는 조각들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하는 추억 한 편에 대해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추억하고,

누군가는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라디오 방송국은 슬픔과 유년시절의 기쁨을 노래하는 사연곡들을 모아 차가 지나다니는 고속도로 길을 채우고 있었다. 지나가는 당신들도 아마 가장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고 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대차게 쏟아지면서 무심하게 고속도로 길을 두드리고 있었다.


비바람 속에서 삼켜지는 내 차 안에서.


나는 다시 내 과거에 삼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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