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법 저녁 약속이 많은 편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그랬다.
다르게 말하면 술자리도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즐겼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지내오면서 점점 그 약속이란 것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약속을 잡는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유로 사람들에게 먼저 만나자고 하기가 싫어진 것도 있고, 그런 만남이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만큼 순수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돼서 그런 듯하다.
그렇게 정리 아닌 정리가 된 후 이제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내가 먼저 보자고 이야기를 하고 약속을 잡는다.
지난주 화요일쯤에 한 두 달에 한 번은 만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다음 주 중에 시간 좀 내주라. 얼굴 보자."
그리고 월요일 6시 회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 친구는 건강기능식품회사에 다니고 있고 우리 아내의 임신 소식에 엽산, 비타민D, 유산균 등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그걸 받아놓고 고맙다고 전화를 하며 얼굴 한번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후로 한 달이 넘은 후에 보게 된 것이다.
현재 새싹이는 10주 5일 차.
새싹이의 소식 이후에 여간해서는 약속을 잡지 않았었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고 임신 초반이다 보니 약속을 잡지 않은 것도 있었으며, 회사 일도 바빴다.
하지만 이번 주 조금은 짬이 날듯 하여 여러 가지 선물을 보내 준 고마운 친구라는 핑계로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종식이 만나기로 했어."
"아 그래?"
"응, 새싹이 소식에 여러 가지 보내줬잖아. 고기라도 한번 사야지."
괜스레 뜨끔하여 빠르게 핑계를 댔다.
"오빠 당연히 그래야지. 잘 만나고 와."
이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으면서도 왜 그렇게 빨리 핑계를 댔을까 싶다.
"일찍 들어올게! 앞으로 저녁 약속 많이 잡지 않을 거야."
약속하고 나선 월요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앉아 있는 나의 휴대폰에 진동이 느껴진다.
메시지를 확인한다.
"하이, 정말 미안한데 우리 한주만 연기하자. 장소는 동일하고 금요일 어때?"
그래, 나의 보답을 1주일만 미루자.
조금은 허탈한 마음으로 약속한다.
약속을 많이 잡지 않겠다는 약속도 1주일만 미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