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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Mar 19. 2021

포항운하와 동빈내항

형산강 지류와 하구 물줄기를 통해 바라본 포항 근현대사와 미래

포항도 울산과 마찬가지로 모두 공업도시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인가. 포스코 공장에서 쇳물에서 나오는 철강을 직접 본 기억도 있다. 당시 이름은 포항제철이었는데,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철강 수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내용을 한국지리 시간 때 수없이 들었다. 포스코뿐만 아니라 현대제철과 동국제강과 같은 철강기업들도 있어서 그야말로 철강인들의 도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포항에 공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포스코에서 시내를 바라보는 건너편에 포항운하관이 있다. 운하관 뒤로는 포항시민들이 산책과 휴식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운하 산책로도 있는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공장과 달리 사람들의 생기로 가득하다. 또한 운하를 통행하는 크루즈도 있어서 그런지 올해도 포항운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었다.


그럼 포항운하는 어떻게 조성되었고, 포항시민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었을까? 냉수리 신라비를 나서고 31번 국도를 따라 포항운하관으로 향했다.


동빈내항의 역사

     

냉수리에서 남쪽으로 68번 지방도를 타면 단구 나들목이 나온다. 여기서 31번 국도를 타면 시내까지 들어가는데, 포항터미널을 지나서 문예로를 만나면 좌회전 하자. 형산강이 보이는 곳까지 간 다음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오른쪽 편에 포항운하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포항운하관에 들어가서 운하에 대한 역사를 봤다. 옛 포항진 지도를 보면 형산강과 동해가 조선시대 당시 어떻게 이뤄졌는지 볼 수가 있는데, 형산강 본류 위에 섬이 하나 있고, 그 위에 조그만 강 지류가 있다. 본류 위에 섬은 오늘날 송도동이고, 지류가 오늘날의 포항운하다. 즉 포항운하는 예부터 실제 강 지류로 존재했다. 강 지류 위에 바로 동빈내항이 있다.


그래서 운하관을 보면 동빈내항에 대한 역사가 나오는데, 신라시대 때부터 고깃배가 드나든 항구였다고 한다. 조선 영조 8년(1732)년에는 포항창(浦項倉)이 설치되어 규모가 커졌는데, 곡물 저장과 동해안의 물자 수송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포항창이 설치된 이유를 찾아보니 당시 경상도에서 가뭄과 태풍이 반복되어 백성들의 식량이 부족해 굶주림에 시달리자, 경상감사 조현명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포항에 창진(倉鎭)을 설치해달라고 조정에 건의했기 때문. 조정에서 건의를 받아들인 후, 동빈내항과 형산강은 조선 후기 삼남지방의 물류수송 중심기지가 된다. 이는 연일읍 오천리에 있는 부조장터 공원에서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 후기 때만 못했지만 청어와 정어리잡이 수산기지로 명성을 떨쳤다.


포항운하관. 포항운하와 동빈내항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동빈내항의 역사를 보여주는 안내판


그러다가 1960년대 포항제철을 착공하면서 포항은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된다. 동시에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형산강 하천직선화공사가 이뤄지면서 기존 지류를 1974년 매립한다. 이로 인해 동빈내항은 물길이 막혀 일반적인 공산품만 취급하는 항구로 기능이 축소된다. 하지만 동빈내항도 울산 태화강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옛 지류가 막히다 보니 동빈내항에 오염물이 점점 쌓였고, 환경문제로 인해 주변 지역이 슬럼가로 변한 것. 게다가 소나무 숲이 울창하던 송도해수욕장이 난개발로 인해 모래가 사라져 폐장되는 안타까운 역사를 겪기도 했다. 90년대까지 수질오염이 계속되어 시에서 1997년부터 영일만 오염해역을 준설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찾은 해법이 막혔던 옛 물길을 운하로 다시 뚫어 수질오염을 줄이는 것. 게다가 운하는 공원 및 관광시설로도 활용이 가능해 일석이조의 해법이었다.


하지만, 당시 매립지에 살던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던 것은 당연했다. 매립지 위에 있던 479동의 건물을 철거하고 827세대 2,225명을 이주시켜야 했는데, 철거민 이주대책위원회와 보상금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 2009년 뉴스 기사를 보면 당시 주민들이 뒤늦게 찾아온 박승호 포항시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주택공사의 보상절차와 보상가도 현실성이 떨어져 포항시청 앞에서 보상 현실화 집회를 열었다는 기사도 있다. 그래도 공청회로 시에서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는지 2011년에는 주민 이주율이 92%였다고 한다. 2년 동안 시와 주민과 마찰이 계속 있었지만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한 것 같다.


주민들의 이주가 끝난 후 2012년 5월 9일에 운하를 착공하고 2014년 1월 8일에 공사를 마친다. 사업비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보상비 800억과 포스코가 출자한 300억을 포함하여 총 1,600억 원. 태화강과 포항운하를 볼 때, 산업발전과 환경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단번에 잡는 건 인류에게 여전히 어려운 과제인가 보다. 새로운 산업으로 도시의 경제발전을 기대하다가 환경오염 때문에 고생하고 그걸 해소하기 위한 환경비용을 추가로 투입하는 일이 전 세계에서 오늘날까지 반복되고 있으니까. 


포항크루즈


포항운하관을 나선 후, 아래로 내려가 포항크루즈에 탑승했다. 가격은 성인 1명 당 12,000원. 배를 타기 때문에 본인의 생년월일과 전화번호를 꼭 남겨야 한다. 겨울철인 데다가 코로나19가 아직 해소되지 않아서, 크루즈 정원의 50%만 탑승할 수 있다. 물론 마스크는 크루즈를 타는 동안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배가 출발하면 운하관 바로 옆에 있는 다리 밑으로 가는데, 바로 포항운하로 들어가는 입구다. 홍수 때는 다리에 있는 수문을 닫아서 운하 수위를 조절한다고. 얕은 운하길이라서 그런지 배가 매우 천천히 달린다. 그리고 육교 3개소를 통과하는데, 육교 이름들이 매우 재미있다. 이름은 ‘탈랑교’. ‘말랑교’, ‘우짤랑교’. 표준말로 해석하면, ‘타실 건가요?’ 안 타실 건가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다. 크루즈 가이드에 의하면, 회사에서 재미로 세 이름을 제안했는데 포항시에서 맘에 들었는지 그대로 채택해 버렸다고 한다. 


운하 좌우 산책로에는 조각 작품이 가득한데, 포항의 상징인 철로 만든 예술품이다. 포항에서는 2012년부터 매년 가을쯤에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을 여는데 여기에 참여한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전시되었다고 한다. 철조각 길(Steel Artway)은 포항운하부터 영일대 해수욕장을 거쳐 시립미술관까지 이어져 있다고. 워낙 잘 조성해놓아서 2016년 ‘포항, 스틸 라이프(Steel Life)’라는 주제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하는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운하공원 한가운데에 놓인 꽃나무다. 


내가 탔던 유람선
최정화 작가의 'Flower tree'.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다.
정국택 작가의 비즈니스맨과 말랑橋
우짤랑橋 전경. 왼쪽에 죽도시장이 있다.

우짤랑교를 지나면 갈매기들이 배로 몰려든다. 갈매기가 여기에 몰려든 것을 보면 어디에 먹을거리가 많다는 것인데……. 아 바로 왼쪽에 죽도시장이 있다. 워낙 방송에 많이 나와 오늘날 포항을 상징하는 대표 재래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객들은 주로 물회, 과메기, 회와 대게를 즐기러 이곳에 온다. 그리고 개복치를 유일하게 다루는 우리나라 재래시장이어서 관광객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원래 죽도동은 주로 논과 갈밭 지역이었는데, 1924년 형산강제방축조공사와 1932년 남빈동매립공사로 동빈내항에서 마을 어구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 마을 어구에 들어섰던 장이 바로 포항장과 여천장이다. 조선 후기 3대 장터였던 부조시장은 이 두 곳에 시장 상권을 내주게 된다. 1940년대 읍 당국에서 포항과 여천장을 오늘날 대흥동 옛 포항역 북동부에 새로 옮겨 포항정기시장을 구축했는데, 위치 선정 문제로 포항장의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광복 후 한국전쟁 때까지 죽도동에 400여 각종 도소매상이 즐비하였는데, 이것이 죽도시장의 시초이다. 한국전쟁 때 포항이 격전지여서 도,소매상들이 진열했던 물품들이 안타깝게도 파괴되었지만, 1954년 상인들이 재건하여 남부상설시장으로 개장한다. 그리고 1971년 11월에 죽도시장이 공식 개설되어 오늘날까지 이른다. 즉 죽도시장은 앞에서 말한 조선 부조시장과 일제강점기 포항장을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죽도시장은 포항운하의 종점이자 동빈내항의 시점이다. 시장 가까이에는 고깃배들로 가득하다. 이는 부산 자갈치시장과 남항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붉은색 다리를 지나면 큰 배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오른쪽에 요트들과 군함이 보인다. 군함은 바로 PCC-756 포항함. 최초의 포항급 초계함이며, 1984년 12월에 취역해 2009년 6월 30일에 퇴역했다. 포항함에는 천안함 장병을 구하려다 희생된 한주호 준위의 동상도 있는데, 이전에 안타깝게 침몰했던 천안함이 포항급 초계함 중 하나라서 그렇다. 초계함이 있는 오른쪽 편으로는 요트, 해양경찰청 선박, 옛 크루즈 선 등으로 가득한데, 동빈내항은 포항의 모든 종류의 배가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항 죽도시장
포항 동빈내항은 수많은 종류의 배들로 가득하다. 왼쪽 사진의 군함은 PCC-756 포항함


쭉 가서 울릉도행 배를 탈 수 있는 포항여객선 터미널과 등대를 지나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 동해바다에서 다시 형산강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쪽으로 구체로 된 건물이 하나 보인다. 바로 포항 송도해수욕장이다. 무려 1931년 일제강점기 시절 정식 해수욕장으로 개장했는데, 하얀 모래와 뒤에 있는 소나무 숲으로 때문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다고. 북한의 원산해수욕장과 동해안에서 쌍벽을 이뤘다고 한다. 1935년 형산강 제방 축조공사가 끝나고 송정바다와 분리되면서 규모가 반으로 줄었지만 1970~80년에도 포항을 상징하는 해수욕장이었다. 하지만 1970년 말 두 차례 큰 해일로 백사장이 사라졌는데, 침식이 더 심화되어 2007년에 폐장했다. 이듬해부터 백사장 복원사업을 14년째 진행했는데 올해 다시 개장한다고 한다. 무려 15만 톤의 모래를 다시 채웠다고 한다. 


반대편에는 포항제철소가 보이는데, 올해 7월 1일부터 세계 최대길이인 6km 야간 경관조명을 완성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관조명이라……. 다음에 포항크루즈를 탈 기회가 생기면 금/토/일 오후 4시쯤 포항운하관에서 죽도시장까지 산책로를 따라 운하와 조각 작품을 꼼꼼히 감상하면 되겠다. 배고파지면 죽도시장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반대편 산책로로 운하관으로 돌아가 야간 크루즈를 즐기면 좋겠다. 물론 코로나19가 확실히 진정되고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 


포항크루즈는 포항시내의 역사를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동빈내항, 일제강점기와 70년대에 유명세를 떨친 후 올해 다시 개장하는 송도해수욕장 그리고 해방 후 동해안 최대 시장으로 된 죽도시장이 있다. 운하 주변에는 조각들로 가득한데, 포항의 현재와 미래를 말해주는 곳이 아닐는지? 게다가 포스코 조명도 추가되어서 포항운하의 콘텐츠가 점점 더 다양하게 바뀌는 것 같다. 시에서 지속적으로 운하를 잘 관리해서 한국관광 100선의 명성을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동빈내항을 나오는 길.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보인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주말에 유람선을 타고 포스코 야간조명을 감상해보자. 
무려 15만 톤의 모래를 채워 올해 다시 개장하는 송도해수욕장. 옛 명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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