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옛 집성촌
영천 시가지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상주영천고속도로와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만나는 화산분기점이 보인다. 분기점을 지나 길을 좀 더 가면 마을이 하나 있는데, 바로 가래실 마을이다. 옛날에 이곳에 가래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이렇게 지어졌다고 한다. 역사도 500년이 넘었는데, 안동 권 씨, 평산 신 씨, 영천 이 씨 3개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이다.
보통 옛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가득한 유명 집성촌들과 달리 여기는 현대 조각 작품들과 벽화가 기와집들과 조화를 잘 이룬다. 마을 입구에는 옛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시안미술관도 있다. 그래서 이곳을 별별미술마을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술작품으로 생기가 도는 집성촌을 좀 더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가래실 마을 이야기
가래실 마을로 들어가니 노란색 바탕으로 분홍색 의자와 초록색 서랍으로 그려진 버스정류장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 옆에는 별을 든 아이와 달 위에 앉은 소녀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꿈으로 가득했던 시골 아이의 동심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나는 이 마을의 옛 흔적을 찾기 위해 큰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가 보니 또다시 수많은 벽화들이 있다. 비눗방울을 부는 어린 소녀와 유럽 어느 운하길 산책로에 흰 양산을 들고 앉아 있는 여성의 그림 사이에 ‘풍영정 걷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왼쪽에 풍영정(風泳亭) 현판이 새겨진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조선 현종 때 학자인 권응도(1616~1673)를 기념하기 위해 후손들이 1932년에 세운 것이다.
그런데 정자 아래로 내려가면 500여 년의 세월을 견딘 풍영정이라는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단수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안동 권 씨 후손들은 이 마을에 가장 먼저 정착한 구의헌 권열이 심은 후 가문 대대로 이 나무 아래서 시와 학문을 강론하고 예절과 활쏘기를 익혔다고 한다. 이후 현손 권응도가 이 나무에 풍영정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였고, 자신의 아호도 이와 같이 했다. 가래실 마을의 흔적은 여기서 시작하는 셈이다.
마을에 그려진 다채로운 벽화 작품들을 감상했는데, 경북대 학생들이 다채롭게 그린 벽화들이 눈부신 햇살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니 별빛으로 가득한 담당 아래 앉은 어린 왕자와 여우도 있고. 나한테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타일로 이뤄진 십이지상과 지난번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본 용무늬기와가 눈에 띄었다. 이들의 표정을 보니 마을의 상징인 풍영정 느티나무와 주민들을 잘 지키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좀 더 아래에 내려가 보니 작은 초록색 건물이 하나 보인다. 이름은 ‘우리동네 박물관’. 들어가니 1966년 제15회 화산동부초등학교 졸업생들의 사진이 있다. 좀 더 들어가 보니 이 마을을 지키신 어르신들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옛 시절에는 800명이 넘는 초등학생들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어르신들로 가득한 마을로 바뀌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실제 화산면 주민들의 거의 절반의 인구가 만 65세 이상이라고 한다.
신라의 화려한 보물로 가득한 국립경주박물관과 달리 여기는 이들이 어떻게 마을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어르신들 사진 반대편으로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서 결혼 그리고 손자, 손녀들까지 바라본 조부모가 되기까지의 사진과 마을에서 치러졌던 장례식 사진으로 가득하다. 마치 오늘날 이 마을의 관혼상제를 잘 표현했다고 해야 하나. 마지막에는 마을의 일상 모습이 보이는데, 벼농사뿐만 아니라 영천의 상징인 포도와 복숭아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사진이 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어찌 보면 가래실 마을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박물관 밖을 나가서 다시금 미술작품들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갈색 바탕에 은색 구슬로 작가만의 암호를 나타낸 느낌이다. 제목은 고산금 작가의 ‘공산폭포 산수화’.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문장으로 공산폭포 풍경을 쇠구슬이라는 코드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래편 알록달록한 타일작품을 따라가면 노란색 새장으로 장식된 아담한 기와집이 있다. 원래 이곳에는 옷들과 공예품들을 팔았던 아트 만물상인데, 지금은 사라졌다. 대신 왼편에 홍반장 ‘아트자동차 - 바람’ 프로젝트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작가가 마을의 택시운전사가 되어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비디오를 볼 수 있다.
시안 미술관
마을의 알록달록한 벽화들을 보고 내가 간 곳은 시안 미술관이다. 원래 여기는 어르신의 학창 추억으로 가득했던 화산동부초등학교였다.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폐교되었다가 2004년 영천 최초의 미술관으로 다시금 탄생하였다. 이번에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전시회는 ‘INVISIBLE MONUMENTS - 이상이 실제가 될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한 예술작품들을 전시했다.
전시관에 들어가니 네 가지 형태의 작품들로 있었다. 수묵화로 몽환이 깃든 자연풍경들을 표현한 차현욱 작가의 작품, 멀리서 볼 때는 검은 물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볼 때는 수많은 글자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자화상을 표현한 장석헌 작가의 작품 그리고 스케치 선의 묘미를 살려서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표현한 최지이 작가의 작품들이 있다.
내 눈에 띄었던 작품은 안민 작가의 일그러진 자동차들로 가득한 그림이었다. 왜 일그러지게 그렸는가에 대한 작가의 해설을 보니 불법주차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차들에 대한 분노와 심정을 표현했다고. 실제로 이런 주차를 한 자동차를 부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고. 이러한 충동을 예술로 승화해 남긴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폐차장에 어지럽게 놓인 차들은 불법주차를 한 이기적인 차주들의 일그러진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감상하고 미술관을 둘러보니 1층에는 각종 공예 체험장이 2층에는 마을을 돌아다닌 이들에게 편안한 쉼과 음료를 제공하는 카페가 있다. 오늘은 완연한 봄 날씨여서 그런지 가족들도 많이 찾아왔는데, 미술작품과 함께 뛰놀 수 있는 넓은 운동장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옛 3개 성씨의 집성촌의 흔적과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의 영천 농촌 일상으로 이뤄진 가래실 마을은 이제 다채로운 예술마을로 진화했다. 벽화 색이 뚜렷한 원색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마을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미술마을 프로젝트가 끝난 지 11년이 지났어도 별별미술마을에 찾아오는 발길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수많은 아이들이 사라져 학교가 미술관이 된 지금, 이 터전을 지키던 주민들을 이어 아름답게 장식된 마을을 누가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동네 박물관에 사진들의 다음 모습들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이곳에 전시된 예술작품들이 500여 년 된 풍영정 느티나무처럼 오래가기를 기원하며 이곳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