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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우 Feb 26. 2021

석굴암 본존불을 바라보며

유리창 안에 있는 본존불은 언제 자유를 누리실까?

석불 뵈러 가는 길


불국사를 떠나 차를 타고 불국로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석굴암 입구가 나온다. 길이 워낙 고불고불하기에 안전운전은 필수다. 불국사에서 등정하는 코스도 있는데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순례자의 입장에서 참배하려면 도보로 가는 게 가장 좋겠지. 석굴암 입장료도 역시 성인 1명 기준으로 6,000원이다.


입구인 일주문에서 석굴암으로 들어가려면 15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묘비가 하나 있는데, 이렇게 써져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서 안 될 작품으로 경주의 불상을 갖고 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세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 - 고유섭의 신라의 조각(1934.10.)에서.”


우현 고유섭 선생.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많이 봤던 이름이다. 우리나라  미술사학자인데, 우리나라 사찰과 탑을 대상으로 근대적인 연구방법론을 확립한 학자라고 한다. 이를 통해 생전에 남겨 놓은 업적이 많아 오늘날에도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학도들은 선생의 저서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선생의 말씀처럼 석굴암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소중한 보물을 열심히 배워가야겠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그 자체니까.


가다보니 산 중턱에 목조건물 하나가 보인다. 바로 석굴암이 있는 곳인데 왜 목조건물로 가려졌을까? 석굴암도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 시절에 수모를 겪었다. 일제 강점기 데라우치 초대 총독이 석굴에 원래 있던 돌을 해체하여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발라서 보수공사를 시행했다. 그리고 아래 암반에 샘을 발견했는데, 물기가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샘에다 아연관을 묻었다고. 우리 일본의 선진장비로 말끔하게 보수했다는 데라우치의 정치과시 행위였다. 하지만 원작자 김대성을 무시한 일제의 만행으로 석굴에서 물이 샜고 이끼가 계속 자랐다. 일제는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석굴을 수증기 분무로 세척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저 멀리 암자 같은 목조건물이 보인다. 옛날 석굴의 광경을 우리는 볼 수 없다.

우리는 석굴의 누수현상과 습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광복을 맞았다. 1960년대에는 군사세력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았다.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문화재를 무기삼아 자신의 치적을 쌓으려 했다. 당시에도 석굴암의 누수, 이슬맺힘과 이끼발생은 공기 중 습기가 유입된다는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안에 이중돔을 설치하여 목조건물로 막고, 아래 흐르는 샘물의 배수구를 강화하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부 학자들은 그래도 이슬이 맺힌다고 반대했지만 묵살된 채로 진행되고 만다. 석굴암 보수공사를 마치는 데는 불과 3년 밖에 안 걸렸다. 오늘날 목조건물에 갇혀 있는 석굴도 그 때부터 50년 넘게 이어진 것.


원작자와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복원사업은 결국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만다. 공사가 끝나고 누수와 이슬맺힘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공사 직후 에어컨과 온풍기가 24시간 가동되었고, 일반인들이 석굴 안에 들어가는 건 통제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아울러 불상에 누수와 이슬맺힘이 왜 일어나는지 밝혀진 것도 공사가 끝나고 몇 년이 지나서였는데, 아래에 있는 샘이 석굴 하부의 온도를 낮추어 이슬을 땅 아래로 유도할 수 있다는 발표였다. 김대성이 갖고 있던 지식을 뒤늦게야 오늘날 사람들이 깨달았다.


이전에 독일에서 유학할 때 중앙아시아 현대정치에 대한 수업을 들은 바 있다. 강사님께서 독재자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어머니 동상을 크게 짓고 애국주의와 문화재 치적을 강조하여 독재자의 어두운 면을 가린다고. 데라우치와 박정희의 석굴암 보수 실패는 강사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줬다.


석굴암으로 가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신라인들이 쓴 석재들이 깔려있다. 일제의 보수공사 이후 군사정권에서 신라인들이 쓴 석재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던 전문가들이 있었을 터. 군사정권의 치적 때문에 묵살당한 건가? 석재 활용에 대한 연구가 당시 부족해서? 아니면 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건지? 이끼들이 수두룩하게 낀 옛 석재들을 보면서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고유섭 선생께서 1960년대에도 살아계셔서 신라인들의 석재가 아직까지 버려진 꼴을 보셨다면 어떤 심정이셨을까?


신라인들이 쓴 석재들. 석굴암에 들어가는 길에 있다. 데라우치 총독의 잘못된 보수공사로, 아직도 우리는 이들을 원래 위치에 짜맞추지 못하고 있다.
신라인들이 쓴 석재들. 석굴암을 나서는 길에 있다.


이산가족이 된 석불님과 우리

     

신라인이 남긴 석재들을 뒤로 하고, 목재건물 안에 계신 본존불상을 뵈러 들어갔다. 유리창으로 막아 놓아 석불 주위에 있는 10대 제자들이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김대성의 실수로 세 개로 쪼개지다가 천신이 다시 고쳤다는 <삼국유사> 이야기가 담긴 석굴암 천정돌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오늘날까지도 세 개로 쪼개진 금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50년 동안 부처님과 가까이 하지 못한 불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마치 교도소에 죄 없는 부처님을 면회하러 온 기분이 아닐까? 온풍기와 에어컨 때문에 갇혀 있었어도 석불님의 단아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일제 그리고 1,200년 후 후손들마저 석불님께 큰 죄를 저질렀는데도. 석불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딱 한 번 기회가 있다. 바로 부처님 오신 날. 이날에 마치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기분과 같으리라. 하지만 작년에는 코로나19로 부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올해도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거라고.


석굴암 본존불상. 오늘날은 유리너머로만 볼 수 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김대성의 실수로 쪼개진 천정돌. 흔적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석굴암 석굴 팔부중상. 석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과 함께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서 석굴의 숨을 쉬게 하고, 샘을 다시 원상복구 시키라고 쓴 게 무려 26년이나 지났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복원을 포기했는지? 복원에 엄두가 안 나는지? 아니면 너무나 훼손된 것이 많아 복원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언제 석불은 답답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50년 넘게 갇혀 있는 석불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섰는데, 외국 관광객들이 자신의 소원을 적은 기와가 있었다. 요즘 프랑스어를 배워서 그런지 아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스위스인이 남긴 기와 메시지


- Suisse -

“Que ma famille, mes proches soient en bonne santé et puissent trouver la paix.   Que le monde soit tolérants, bienfaisant et en paix. Que nos coeur soient remplis d'amour et de gentillesse, de fleurs et d'arbres verts. 10.12.19 Amélie"


- 스위스 -

“나의 가족과 지인들이 건강하고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세상이 관대해지고 자비롭고 평화롭기를. 우리의 마음이 사랑, 친절함, 꽃들과 푸른 나무로 가득하길. 2019년 12월 10일, 아멜리.”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과 지인들 무엇보다 나와 모두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이다. 역사의 수모를 심하게 겪었지만 우리의 영원한 보물인 석불님께도 안녕과 평안을 기원해야지. 언젠가 이슬맺힘과 이끼가 사라진 석불님이 유리와 목조로 된 감옥에서 빠져 나와 중생들과 매일 만나는 평화를 누리길 기원한다.


* 커버사진: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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