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2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격년으로 건강검진을 하지만 할 때마다 느끼는 건 일부러 시간 내서 내 몸을 살피는 일이 무척이나 귀찮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이 살고 있는데 건강검진결과로 혹시나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나오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되어 적잖이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미루고 미루다 그나마 한가한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검진을 한다. 건강검진은 마냥 귀찮지만 끝내야만 하는 숙제로 느껴졌기 때문에 크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추가 건강검진은 신경 쓰지 않고 겨우 하나 추가 하는 검진은 수면으로 하는 위내시경이 전부다. 혹시나 기본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있다고 하면 그 후에 정밀검사를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직장에서 건강검진비로 20만 원을 지원해 준다고 했다. 20만 원을 무료로 지원해 준다니 그렇다면 수면 위내시경 외에 무엇을 추가로 할 것인가 잠시 고민을 했다. 남편은 대장내시경을 하라고 했지만 대장내시경은 검사를 위해 필요한 준비작업이 꽤나 고통스러운 것을 목격했기에 아직은 아니라 판단했고 여성을 위한 검사를 추가하기로 했다. 질초음파와 갑상선 초음파.
하루 전날 저녁부터 금식하고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건강검진센터에는 무척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연세 드신 분들부터 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접수하는 곳에서 상세한 설명을 듣고 하나하나 건강검진코스를 돌기 시작했다. 역시나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키, 몸무게, 시력, 청력, 혈압, 소변검사, 피검사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강검진, 흉부엑스레이, 유방촬영검사, 자궁경부암검사, 갑상선초음파, 수면 위내시경까지. 코스별로 돌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 금식한 지 12시간을 넘어 16시간이 되어가니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남편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건강검진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다른 것은 별 이상이 없는데 질초음파검사에서 자궁에 큰 혹이 있다고 하네? 무려 4.7cm~5cm 이상이래."
"그래? 제법 크네."
"그래서 그랬나? 어쩐지 생리통 증상이 크게 없었는데 몇 달 전부터는 생리통이 느껴졌거든. 유난히 배도 아프고 두통도 생기고 생리기간에는 아랫배도 심각하게 나왔었는데. 의사는 나에게 다음에 생리가 끝나면 병원에 다시 오래. 생리가 끝나면 혹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 봐야 한다고."
"별일이 아니여야 할 텐데. 그럼 다음에 병원에 가봐."
사실 친언니도 결혼 전에 자궁근종으로 수술을 했고 최근에는 아는 지인이 얼마 전 자궁근종으로 힘들어해서 수술을 했었다. 나도 혹시 수술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그다음 생리가 끝났지만 난 병원에 다시 가지 못했다. 예약을 못했기도 했지만 혹시나 의사로부터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쉽사리 병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11월 생리기간이 되었다. 그런데 자다가 깰 정도로 속이 더부룩하고 두통도 심하고 소화도 잘 안 돼서 너무 힘이 들었다. 자궁근종 때문에 그런가? 이제는 미루면 안 되겠다생각했다. 급한 대로 건강검진을 했던 병원은 예약을 하지 못해서 못 가고 주말에 시간을 내서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그곳은 내가 세 아이를 출산한 산부인과다. 무려 세 아이를 받아준 정말 고마운 의사지만 그는 여전히 낯선 남자다. 진료 특성상 자주 만나기는 무척이나 껄끄럽고어색한사이.
마감 시간 가까이 진료를 보러 간 탓일까. 병원은 무척 한산했고 환자는 나 혼자였다.
의사 선생님께 여름에 받았던 건강검진결과 이야기를 했고 자궁의 혹 크기를 다시 확인하고자 왔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일단 초음파를 봐야겠다고 하셨다. 진료복으로 갈아입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 자리를 잡는다. 늘 하는 자세지만 익숙하지도 않고 참으로 이상한 자세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앞에 몇 분간 그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 40을 넘은 중반에 애도 셋이나 난 아줌마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나의 기분을 내색할 수 없는 진료받는 자리이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참아야 한다.
차가운 기기가 들어오는 순간 '흡'하는 짧은 심호흡 소리를 냈다. 참기 거북한 기기의 움직임이 아래에서 느껴졌다. 간호사 선생님은 머리 위쪽 모니터를 보라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은 질 내부 안을 비춰주셨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두 번째는 질초음파로 난소, 자궁, 혹의 크기를 보여주셨다. 의외로 혹이 컸다. 약 5cm~ 5.5cm로 건강검진의 결과와 비슷했다. 자궁의 크기만큼.
"혹이 몇 개예요?"
난 담담한 듯 물었다.
"혹이 작은 것들이 있긴 한대요. 자잘한 혹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혹이 제법 큰 것이 있는 게 문제죠."
한참을 초음파기기로 보며 사진을 찍은 후, 진료실로 나온 그는 차트를 넘기면서 내 진료기록들을 보고 그동안 병원에 자주 오지 않으셨네요라고 말했다. 난 진료를 보러 오지 않은 게 아니고 다른 곳에서 건강검진을 했을 뿐 크게 이상이 있어서 오지 않은 것이라고는 말을 못 했다.
"환자분은 미레나 하세요. 아직은 40대 중반 가임기이기도 하고 혹이 더 이상 자라지 않게 하려면 미레나 하면 됩니다. 수술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니니까."
미레나.
자궁 안에 넣는 피임기구.
자궁근종이 크지 않도록 할 때 넣는 장치.
몇 년 전에도 의사가 권했던 시술이다.
그때는 피임을 위해 권했다면 이번엔 자궁근종을 위해 시술하자고 한 것이다.
"미레나요? 제가 알아보니까 그거 부작용이 꽤 있던데요?"
"다른 것 그만 찾아보시고요.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제발 전문가가 하는 말 좀 들으세요. "
기분이 나쁘셨나? 전문가 앞에서 떠돌아다니는 인터넷 검색 정보 따위로 반박해서 그런가.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사진을 잘라 풀을 바르고 내 진료기록에 착착 붙이며 말했다.
"다음 생리 시작하고 4일이 되었을 때쯤 오세요. 그때 하면 괜찮아요."
"네."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이 환자를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전문가 앞에서 비전문가인 내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부작용 이야기를하는 내 모습이.
"전문가 말 좀 들으세요!"라는 의사의 말이 병원에서 나오는 내내 내 귓가에 맴돌았다.
집에 와서 폭풍검색을 해본다. 미레나 부작용, 미레나 삽입 후기, 미레나 시술법, 미레나 효과, 미레나 할 때 마취 방법 등
아. 이런. 괜찮다는 후기보다 아프다. 힘들었다. 미레나가 빠져나와 다시 시술했다 등등. 부작용은 왜 이렇게 많아? 좋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네. 이래도 전문가 말을 들어야 하나. 물론 치료를 위해 전문가 말을 들어야 하겠지만 난 인터넷 후기의 말이 더 솔깃하다. 과연 나는 다음 달에 산부인과에 방문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나는 전문가의 말대로 결정을 하지 못하는,부작용이 더 무서운 소심하고 불안한 환자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