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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Mar 25. 2020

이후 일기

그래서 이혼 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https://brunch.co.kr/@mindclinic/286

며칠 전 브런치를 뒤적이다가 노박사님의 "이혼 후 하지 말아야 하는 3가지 선택" 이란 글을 읽게 되었다.

전에 글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나름 이혼 삼년상(?)을 지나고 보니 이 글 속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글에서 작가님은 첫째, 사랑에 빠지지 말 것, 둘째 본격적인 새 출발은 천천히 할 것, 셋째 명품이나 차를 사지 말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놀랍게도, 세 가지 모두 너무나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떠오르는 것부터 적어보자면 이렇다.


1. 과소비를 하게 된다.

모르겠다. 반발심리 같은 건가? 아니다. 아마도 보상심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결혼할 때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고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반지, 그 반지 하나만을 갖고 싶었다. (ft. 은전 한 닢)

연애를 할 때 나는 커플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반지를 선물 받은 적은 있지만 희한하게도 커플링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결혼반지에 유독 고심을 했다. 어떤 디자인이 좋을지, 어떤 게 평범하지 않은지.

그래서 속으로 반지 디자인을 찜해두고는 그걸로 맞추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뿔싸, 그가 프로포즈를 위해 겸사겸사 웨딩링을 혼자!! 맞춰버린 것이다. 즉 나는 디자인에 의견 한번 못 내보고(...) 직접 고르긴커녕 안겨주는 것으로 졸지에 웨딩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충분히 좋은 링이었고 나름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그는 마음에 안 들면 바꿔도 된다고 했지만 그러기엔 기존 링을 산 게 환불도 안되고, 그런 곳에 돈 낭비하기엔 너무 쓸데없는 거라고 느껴져서 그까짓 거 나만 욕심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단념했더랬다. 한데 친정 집으로 돌아오고 별거를 시작하니 갑자기 네 번째 손가락이 너무 신경 쓰이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반지 갑갑하다고 잘 안 끼던 나였는데, 이상하게 손가락이 너무나 허전해  보였다.  그때 내게 갖고 싶었던 반지 디자인이 떠올랐고 이참에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난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내가 갖고 싶었던 브랜드의 반지 링을 찾았고,  진짜를 사기엔 너무 큰돈이 들었기에 일명 카피 상품을 찾아내 반지를 맞췄다. 일주일 뒤, 집으로 반지가 도착했다. 하지만 막상 집으로 반지가 배달되어 온 것을 보니... 아... 너무 예쁘고 뭔가 허탈했다.

그 반지는 지금도 가끔 한 번씩 끼긴 하는데, 사실 지금 생각하면 왜 여기다 쓸데없이 돈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금이라 가격도 꽤 나간다. 세공도 어려워 세공비용도 추가되었다...) 아마도 허전한 네 번째 손가락을 채우고 싶던 마음과  내가 원하는 것을 갖고 싶다!라는 반발심, 보상심리가 쓸데없이 이 반지를 사게 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2. 연애를 하고 싶어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연애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람이었다. 애인이 없으면 외롭고 연애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절히 애인을 만들려 노력한다기보다는 없을 땐 없는 대로 내 일상은 잘 흘러간다.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가고 공연을 보고. 가끔 외롭다 느낄지언정 정작 남자 친구가 없어도 즐겁게 잘 지내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단 한 번, 연애가 절실히 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건 정말 신기하게도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먹고 친정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후부터 였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스스로가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간절히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싶었고 정확히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참 우스운 일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이 정도의 강렬한 외로움을 느낀 적도, 연애하고 싶다고 애타 한 적도 없건마는 정말 이상하게도 헤어지고 나니 연애가 하고 싶었다. 스스로도 당황해서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소통도 힘들고 일방적이었던 이전 생활과 다르게 누군가와 제대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마음과 마음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필요했던 것 같다. 또한 일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사람이 일순간 곁에서 사라져 버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느꼈던 그 허전함과 공허함. 슬픔과 외로움. 아마도 곁에서 그걸 메워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낀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러한 기분에도 불구하고 난 이 시기에 누구를 만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사 이 상황에 누구를 만나서 좋아한들, 아직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내가 온전한 연애를 할 수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연애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보살피고 사랑을 주고 마음을 살펴야 하는 것인데 내 마음조차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타인에게 줄 마음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이 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잊으라고 흔히들 연애가 끝난 후에 소개팅을 많이 시켜주곤  한다. 그러나 나 역시 그것이 단순한 연애이건 이혼이건 간에 이별이 남긴 상처가 완전히 치유된 뒤에 다른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3.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글에서는 섣부른 이직이나 이민, 대학원 진학 같은 것들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역시나 위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이혼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스트레스와 상처를 회복한 뒤에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혼 후 새 출발 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텐데,  그것은 마치 큰 부상을 입은 축구선수가 회복 전에 다시 시합을 뛰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나의 경우엔 케이스가 조금 달랐다. 나는 별거-이혼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극작 아카데미가 있었는데,  내겐 이 일이 너무나 하고 싶던 일이어 선지 매우 타이트하고 힘들게 진행되었음에도 오히려 내 현재를 잊게 해주는 약으로 작용해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극작이 내가 오래전부터 꿈꿔왔고 늘 하고 싶던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것일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하라고 쥐어준 일이었거나 갑작스럽게 한 결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어릴 때부터 하고 싶던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는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힘든 와중에도 놓고 싶지 않았고 결국 최선을 다해 매시간 수업을 듣고 밤을 새워 과제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개월이 지나 있었고 그 결과로 지금의 나에게 극작가라는 새로운 호칭이 생겨났다.  

결국 나에겐 쉬지 않고 곧바로 다른 일에 몰두했던 것이 오히려 힘든 시간을 지나갈 수 있게 해 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아카데미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들었던 것을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괴로울 때 일을 더 늘리는 사람이 있다. 몰아치는 일로 몸이 힘들어질지 모르지만 잡생각은 없어진다. 아마도 내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게 일어난 일들.

 

나는 평소에 무척 건강하다고 자부하는데, 그만큼 아예 사고가 나거나 하지 않는 이상 병치례를 하는 일이 드물었다. 똑같이 굴을 먹고 남들은 식중독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데 나는 며칠 배앓이만 살짝 하고 끝나기도 하고 심지어 감기도 잘 안 걸리는 타입이다. (나이 들면서 조금 걸리긴 한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 병약한 여주인공이 픽 쓰러져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을 보면 내가 저게 소원이라고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얘기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아픈 적이 있었다. 그게 바로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시점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귀가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뭔가 놀이기구 타고 내린 것 같은 어지러움이 있었고 먹먹함은 일을 하는 동안에도 더 심해져 혹시 중이염이 왔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귀에서 삐-하는 이명도 들리는 것이었다. 이런 증상이 5일도 넘게 지속되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이비인후과를 갔는데, 거기서 청각 검사랑 몇 가지 검사를 자세히 하더니 하는 말이 '돌발성 난청'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비인후과에서는 응급질환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원인을 알 수 없이 발병하며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심할 경우 며칠 사이에 심각한 청각 손실이 오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심하게 오지 않아서 청력 손실은 없었지만 동네 병원에서 갑자기 대학병원으로 옮겨 다시 약을 처방받고 한동안 피곤하지 않게 신경 쓰면서 경과를 살펴야 했다. 처음에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한창 혼자 울다 잠들고 주변 친구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던 시절, 엄마 아빠도 내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야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혼자 힘든 결혼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로 앓아온지도 오래된 때였고 헤어지기로 결심한 후 그 스트레스가 극대화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아침에 눈뜨는 게 싫었던 내가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마음이 무너져 내린 상태로 한 달이 지나자 마음의 병이 몸으로 찾아들어 돌발성 난청이라는 질병을 가져온 것이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내 의지만 있다면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지만 나는 이걸 반대로 경험해 버렸다. 아픈 마음은 육체를 상하게 한다.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이라도 질병에 걸릴 만큼 이혼은 엄청난 일이었다. 돌발성 난청에 걸리고 난 후, 나는 내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바람에 약해질 대로 약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몸이 다급한 신호를 보내고서야 내가 나를 버려두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혼 스트레스 속에서 극작 아카데미가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일이었다면, 우리 집 강아지는 마음의 위로를 주는 일을 했다. 말이 없고 조용한 이 녀석은 늘 곁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자신을 쓰다듬으라고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신기하게도 녀석을 쓰다듬고 나란히 낮잠을 자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어느 기사에서 읽은 것인데 사람들은 반려견과 눈을 맞추고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지수가 많이 감소한다고 한다.

괴로웠던 신혼집. 울면서 잠들던 수많은 밤들 속에서, 나는 강아지 사진과 동영상을 가끔 들여다봤다.

친정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강아지를 껴안고 체온을 나누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는 잠이 들었다.

내 작은 위로.

나는 우리 집 강아지를 그렇게 불렀다.

작은 생명체가 나눠주는 서슴없는 사랑의 온기는 아무리 차가운 마음이라도 금세 따듯하게 녹여준다.

강아지가 있어서, 강아지를 보다 보면 웃고, 말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된다.

밤에 잠 못 들 때 늦은 시간 산책을 나가면 아무리 깊은 밤이어도 늘 우리 강아지가 따라나서곤 했었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 보면 그 시간대만 느낄 수 있는 적막함과 고요함이 있어서 시끄럽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곤 했다.

지금도 우리 강아지는 밤 산책이 습관으로 남아서 12시쯤 되면 나에게 산책을 가자고 졸라대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아무리 귀찮아도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산책 준비를 하고 있다. (솔직히 지금은, 밤늦게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다니던 것을 조금은 후회한다. 특히 한 겨울에는... 너무 춥다... 너도 떨잖아...)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전문가의 말처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안 좋을 수도, 혹은 나처럼 약이 될 수도 있다. 집에 있는 강아지의 눈망울이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서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한다.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이혼을 하면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라면 나는 스스로를 위해 무엇이든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산책을 하던, 혼자 영화를 보던, 안 가본 여행을 가던, 아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던, 무엇이건 간에 나를 위로하고 괴로운 시간을 견디게 해 줄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지금을 벗어나게 해 주고 나를 조금이라도 우울감에서 멀어지게 할 무언가.


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

나를 온전히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뿐이다.

나마저 나를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몸이 아프고 나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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