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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May 26. 2020

반려견 이야기-내 작은 위로에게

내 작은 위로. 나는 우리 강아지를 그렇게 부른다.


누리가 내 방문을 긁는다. 벅- 벅-  작지만 또렷하고 강하지만 수줍은 발소리.

문을 여니 놀란 토끼처럼 재빨리 도망쳐 거실에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는 네가 보인다.

자기가 불러놓고 막상 내가 나오면 폴짝폴짝 뛰어 얼른 도망가고,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너. 저렇게 겁이 많아서야.

누리가 우리 집에 온 지 5년이 넘어서야 닫혀 있는 내 방에 와서 문을 긁어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방문을 건드리는 게 무서워서 상상도 못 했던 일을 5년 만에 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우리 가족의 첫 강아지 시나를 데려온 일을 기억한다.

미니핀이라는 종은 굉장히 사납고 굉장히 똑똑하며, 충성심이 강하고 활발한 편인데, 우리 시나는 이미 여러 집에서 사고를 많이 친다는 이유로 파양을 당하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케이스였다.

온통 까만색의 털을 지니고 뾰족한 귀로 사방을 경계하던 너는, 우리 집에 온 뒤에도 바짝 세운 꼬리로 모든 것을 경계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가족들이 부르면 저 멀리 3미터는 넘게 떨어진 식탁 밑에서 눈만 데록 데록 굴리며 바라만 본다. 짧은 꼬리는 살짝 흔들리는 듯하다가 이내 멈춰버린다. 단 한 번도, 신나게 빠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거실의 소파 끝과 저 안쪽 부엌 식탁 밑, 딱 그만큼의 거리.

네 번의 파양을 겪은 시나는 네 번의 상처만큼 사람으로부터 멀어져 버렸다.

그런 시나가 우리 식구들에게 마음을 여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네 달이란 시간을 떠돌던 녀석은 그보다 몇 배의 사랑을 받고,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아 식탁 밑을 탈출했고 그렇게 겨우 한 발자국씩 식구들의 품으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나와 함께 했던 2015년 어느 날.

      



시나와 그의 딸 졸리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지금 누리만 남았다.

몇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졸리를 잃은 뒤, 거의 세 달을 울면서 잠들던 나는 졸리의 빈자리가 너무나 허전했던 나머지 엄마 몰래 다른 강아지를 데려올 계획을 세웠다. 가입되어 있던 강아지 커뮤니티에 가정견 분양을 알아봤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미니핀이 새끼 네 마리를 낳아 분양 중이란 글을 발견했다.  

근데 세상에, 그 집 넷째가 먼저 간 우리 졸리랑 정말 똑같은 것이다.

나는 당장 주인분께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오늘 분양됐다는 말이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그래도 왠지 남은 아이들을 보고 오고 싶었다. 딱히 마음 가는 녀석이 없었으면서도.  


"한 번 보러 가도 될까요?"


 주인분은 그러라고 하셨고, 다음날 나는 차를 타고 그 집 앞에 도착했다.

똥꼬 발랄이란 말이 딱 들어맞을 것 같은 첫째 녀석이 신나게 들썩이며 주인 품에 들려온다.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신나게 몸을 비틀면서 발차기를 하고 내 손을 마구잡이로 핥는다. 헥헥 대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귓가에 울렸다. 이윽고 첫째가 들어가자, 세상 소심하게 주인의 품에 웅크려 안겨 있는 둘째가 나왔다. 첫째보다 현저히 작은 덩치에 뭐가 그리 무서운지 동그란 눈엔 겁이 가득해서, 부들부들 떨면서 흰자위가 보이게 흘끗 거리며 연신 나를 흘겨본다.


“겁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에요. 집에서도 맨날 소파 밑에 들어가 있어요.

얘는 강아지가 있는 집에 보냈으면 해요. 소심한 애니까 강아지 있는 집이 나을 것 같아서요”


네, 그렇군요. 나는 그 둘째가 너무 떨어서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 자꾸만 그 녀석이 생각났다. 발랄하고 사람 좋아하는 첫째 말고 주인 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조그만 둘째 녀석이.

왜 이렇게 마음이 쓰일까. 뭐가 이리 마음에 걸릴까.

마치 이리저리 파양 당하다 우리 집에 왔던 시나가 그랬던 것처럼, 사방을 경계하는 눈빛과 세상 모든 게 무섭다는 듯 떨고 있던 그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서, 나는 다음날 눈뜨자마자 달려 나가 둘째를 데리고 왔다.

그때가 시나의 딸 졸리가 떠난 뒤 삼 개월 후였는데,  성격이 워낙 까탈스러운 시나가 누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하던 것도 잠시, 누리를 본 시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녀석을 지그시 들여다보더니 마치 제 새끼를 돌보듯 정성스레 얼굴을 핥아주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엄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기특하다고, 우리 시나 착하다고 한없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도도도- 토도도도- 누리가 신나게 인형을 물고 뛰어다닌다.

네가 내는 작은 발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작고 소심했던 발소리는 이제 제법 크고 당당해져 더 깊이 내 가슴속에 들어온다.

토도도도 하는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차오르고 행복감은 번져간다.

소심해서 늘 들어가던 소파 밑은 이제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지금은 이 사람 저 사람 어서 나를 만지라며 슬쩍 궁둥이를 갖다 붙이는 웃기는 녀석. 간식이 먹고 싶거나 산책이 가고 싶으면 내 앞에서 나 좀보라며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궁둥이까지 흔들릴 정도로 연신 꼬리를 흔들어 대는 기막힌 녀석.

사랑했던 너희가 있어서, 내 곁에서 매일매일 더 사랑스러워지는 네가 있어서, 아낌없이 사랑해줄 수 있어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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