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끝났지만 혜순과 나에게는 아직 큰일이 남아있었다. 그건 바로 남순의 집을 치우는 일이었다. 남순은 몰욕이 대단했다. 평생 끌어모으기만 했지, 버리거나 처분한 적 없었던 남순의 유품은 그의 89년 평생의 역사가 담겨 있을 것이었다. 그걸 잘 아는 혜순은 지레 겁을 먹고 직접 정리하겠다는 나를 말렸다. 그냥 유품정리업체에 돈을 주고 맡기자고 했다. 나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인이 남긴 유품을 정리하며 그의 지난 삶을 상기하는 것도 ‘보내 주는 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내가 남순을 위해 해줄 마지막 도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순의 성격 대로라면 값비싼 물건들이 포장지도 뜯기지 않은 채 집안 구석구석 숨어있을 것이었다. 남순이 어딘가 남기고 갔을 ‘보물찾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혼자는 도저히 힘들 것 같아 혜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방마다 물건이 가득한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혼자 정리하다가는 1년이 걸려도 다 못할 것 같았다. 큰 것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자개농들이었다.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12자 자개농과 화장대, 서랍, 그리고 장식장까지. 남순의 자개농을 몹시 아꼈다. 그 옛날 논 한 마지기 값을 주고 마련했다는 자개농이었다. 내가 남순을 보러 갈 때마다 당부했다.
“내 죽거든 버리지 말고 나중에 니가 꼭 가져가거라.”
알았다고 약속했지만 사실 가져갈 방법도 놔둘 공간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쓸모가 없었다. 신신당부하던 남순의 목소리와 그러겠다 약속했던 내 대답이 자꾸 떠올라 처분을 하자니 영 내키지 않았다. 고민하는 나를 보고 혜순은 말했다.
“아쉽고 섭섭한 거 다 따지면 세상에 버릴 물건 하나도 없다. 의미만 남기고 보내야 할 땐 떠나보내야지. 너도 나누고 버리고 가볍게 살아.”
맞는 말이었다. 계속 의미를 부여하고 미련을 남기다간 10톤도 넘을 남순의 유품을 모두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판이었다. 과감히 처분하기로 했다. 중고 마켓에 올려보고 팔리지 않는다면 무료 나눔, 그것도 찾는 이가 없다면 미련 없이 버리기로 혜순과 합의했다. 헐값에 올리니 생각보다 찾는 사람이 많았다. 버려져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는 필요한 누군가가 가져가 잘 써준다면 남순도 분명 기뻐할 거였다. 큰 물건들은 거의 다 처분을 했는데 문제는 옷가지와 세간들이었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버리려니 끝이 없었다.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지는 유품 정리에 혜순은 혀를 찼다.
“엄마는 이번에 아주 큰 배움을 얻었다.”
“무슨 배움?”
“나는 절대로 물건을 이렇게 많이 남겨서 니가 이 짓거릴 또 하게 하지 않을 거야. 안 남기고 가는 게 최고다.”
“그래,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우리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자!”
꺼내고 꺼내도 끝없이 나오는 물건들에 질색하며 의기투합했지만 사실 혜순도 나도 미니멀 라이프를 할 수 있는 성격은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순보다는 덜해도 혜순도 쉽게 버리는 성격은 아니었고, 그 둘을 보고 자란 내 상황이 다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남순의 집을 정리하며 다짐을 하긴 했다. 최대한 나누고 버려야겠다고. 그게 쉽지 않다면 그만큼 소비라도 줄여야겠다고. 남순이 가르쳐준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중고마켓에 팔고 무료 나눔을 하고도 남은 남순의 옷가지는 헌옷수거업체에 넘겼는데 무려 200킬로그램에 육박했다. 수거업체 사장님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거 한 사람 옷 맞아요? 그럼요, 저희도 믿을 수가 없네요. 우리는 그날 저녁 헌 옷을 넘기고 받은 돈으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유품더미에 파묻혀 정신이 혼미하고 육신이 고단하기도 했으나 그 와중에 우리가 찾은 ‘보물'이 없지는 않았다. 작은 방구석에서 선욱의 레코드판 묶음을 찾았다. 선욱이 나보다 젊었을 때 어쩌면 대학생 때부터 사모으기 시작했다면 거의 반백 년이 된 물건이었다. 겉에 씌워진 보호 비닐은 삭아서 부서져 내렸으나 먼지를 닦은 음반은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꽤 값진 보물이었다. 남순이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결코 나에게 오지 못했을 내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기도 했다.
혜순은 남순이 안방 자개 화장대 위에 항상 올려두었던 금두꺼비를 소중한 물건인 듯 챙겼다. 내 머리통보다 큰 두꺼비는 딱히 아기자기한 장식품도 아니고 진짜 금도 아니라 혜순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겠다면서 딱히 쓸모도 없어 보이는 그것을 챙기는 혜순이 의아했다.
“이거 원래 할머니가 엄마 주신 거야. 처음 시집왔을 때 방 안에 금두꺼비 두면 돈도 부르고 액운도 막아준다면서. 그래서 엄마가 화장대 위에 놓고 애정을 많이 줬단 말이야. 근데 엄마가 따로 나가 살겠다고 하니 금두꺼비는 두고 가거라, 하셨거든.”
“헐.”
과연 남순 다웠다. 따로 살겠다고 나가는 며느리가 아무리 섭섭했다 한들 줬다가 뺏는 건 너무 치사했다. 남편도 잃은 마당에 애정했던 금두꺼비까지 뺏긴 과거 혜순의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다 짐짓 과장된 목소리로 얘기했다.
“두꺼비가 이제 원래 주인한테 돌아가는 거네.”
혜순이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 매일 애정을 쏟은 물건이라고 하니 못생겼다고 생각했던 금두꺼비가 아까보다 조금 귀여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선욱의 죽음으로 어긋나기 시작한 하나의 가족은 남순의 죽음을 겪으며 원래의 주인을 찾은 금두꺼비처럼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것이 착각이든 환상이든, 말을 잃어버린 남순의 눈에서 혜순은 인정을, 나는 용서를 느꼈다. 죽음 이전에 세 여자가 자신의 아픔보다 상대의 슬픔을 조금씩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면 우리는 불편하지 않은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있었을까. 미움과 증오가 애정과 배려로 바뀔 수 있었을까.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그리고 앞으로도 끼칠 두 여자, 남순과 혜순. ‘세 여자’는 이제 ‘두 여자’가 되었지만 남순은 여전히 우리에게 자주 회자되며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종종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사과와 잡아주지 못한 손을 떠올리며 남순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고, 나 또한 조건 없는 사랑으로 손녀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던 나의 할머니 남순을 조금씩 더 용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