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14화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이주하기 전 가지고 있던 차를 헐값에 팔았다. 내 인생 첫 차였다. 2007년 식 지프 리버티. 이름 하나 믿고 나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리라 믿었던 그 아이는 나이에 비해 믿음직하다는 전주인의 말과는 다르게 한 달이 멀다 하고 말썽을 일으켰다. 나와 만난 지 백일이 되기도 전에 수리비가 찻값을 뛰어넘는 바람에 백일 선물로 준비(뭐든 처음은 애틋한 법 아닌가)한 향수(차량용 방향제)를 환불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엄동설한에 스타터가 고장 나 두 시간 동안 차 속에서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견인차를 기다렸고, 비폭풍이 몰아치던 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창문을 받쳐주는 선이 끊어져 차 속으로 들이치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냈고, 공용 주차장 커브길을 올라가던 중 바퀴와 몸체를 지지하던 타이로드가 부러져 주차장에 진입 가능한 높이의 견인차를 찾느라 갖은 고생을 하기도 했다. 견인차를 앞세워 자동차 수리점을 찾아갈 때마다 매번 웬만해선 별 탈 없고 수리비도 착한 ‘조신한 일본 차’를 샀어야지 왜 고장이 밥 먹듯이 나고 났다 하면 큰돈이 깨지는 이런 ‘우악스러운 미국차’를 샀느냐고 수리점 사장님께 한 소리씩 들었다. 지겹도록 싸우고도 정 때문에 못 버리는 연인처럼 그렇게 내 속을 썩였음에도 불구하고 밴쿠버로 이사하기 위해 차를 꼭 처분해야 하는지 혹시나 가져갈 수는 없는지 진지하게 알아봤다. 하지만 역시나 운전을 해서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고, 그렇다고 차를 배달시키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이미 수리비로 배꼽의 위상은 거대해져 있었기에 더 이상 큰 지출을 할 수는 없었다. 페이스북 마켓에 올린 판매글을 보고 누군가 연락이 왔다. 만나기로 한 공터에서 20분쯤 기다리자 얼굴부터 목까지 문신이 있는 아저씨가 본인과 비슷한 스타일의 문신을 한 사람들을 몇 명 데리고서 차를 보러 왔다. 좀 깎자고 했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터라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한 시간이 넘는 그들의 인스펙션(검사)에 나는 지쳤고,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 문신과 쇠를 집어삼킨 것 같은 목소리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 혼자 나간 나로선 흔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인터넷에 올렸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차 열쇠를 아저씨에게 넘기며 다짐했다. 밴쿠버에 가서 자리를 잡으면 수리점 사장님 말씀처럼 조신하고 참한 차를 사야지 했다.
그렇게 밴쿠버에 온 지 수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뚜벅이 신세다. 캐나다에 살면서 자차가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면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야속하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의 질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구석구석 연결된 지하철이나 야간버스도 (거의) 없고, 한국이었음 그날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골라갈 만큼 쉽게 눈에 띄는 그 흔한 편의점들도 여기서는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도시 중심부는 상황이 그나마 좀 덜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편의시설 하나를 찾기 위해 걷고 또 걸어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지경이었다. 누군 뭐 인간다움과 존엄성을 포기하고 싶어 포기했겠나. 어렸을 때 막연히 어른이 되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애인도 있고 멋진 명함도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던 것처럼 캐나다에 처음 올 때만 해도 한 5년쯤 버티기만 하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백 퍼센트 자리 잡은 세련된 정착자가 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10년이 다 되어가는 판국에 영어는 여전히 장벽처럼 느껴지고 세련은커녕 궁색한 뚜벅이 신세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오래된 중고차라도 (그러니까 똥차라도) 싸게 구입해 (그러니까 똥값에 넘기겠으니) 하나 굴려 보라며 중고차 판매를 종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똥값이 아니라 공짜로 준다고 해도 현재로선 고사할 수밖에 없다. 손발이 고생한 (한겨울 견인차를 기다리며 손발에 동상이 걸리고, 수백만 원이 나온 수리비를 조금이라도 깎아보려고 단골 수리점 사장님께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던) 경험을 통해 10년 이상된 차는 섣불리 입양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을 쌓여가고 정부에서 나오는 약간의 책값과 일주일에 이틀 나가는 아르바이트 수입으로는 높은 밴쿠버의 물가를 감당하기도 벅찬 마당에 돈 먹는 하마 같은 중고차를 덜컥 데려올 순 없었다.
2년 전 풀타임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하다 얼마 전 새로 시작한 공부를 하며 이제는 풀타임 학생이 되었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 학교를 가기 위해선 광역버스를 타고 스카이트레인을 타야 하는데 왕복 교통 비용이 9달러(한화 9천 원 정도) 든다. 대중교통 비용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를 굴리는 비용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이건 사실 내가 혼자 사는 1인 가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그래서 식료품 장을 볼 일이 잦거나 혹은 생활비 전반을 같이 부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다른 국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외출을 즐기지도, 식료품 장을 자주 보는 편도, 그리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졸업을 할 때까지는 차가 없는 생활을 일단은 유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운 그레이드의 삶은 매 순간 인고와 감내가 동반된다. 인간은 참 간사해서 좋아진 것에는 금세 무뎌지지만 나빠진 것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편하고 안락한 상태는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디폴트로 쉽게 갱신되지만 불편하고 힘든 상태는 디폴트로 다시 세팅되는 법 없이 그보다 나았던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트리거가 될 뿐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던 삶, 에어컨이 있던 삶, 자동차가 있던 삶 같은 거 말이다.
한 달 치의 식료품 장바구니를 양 어깨에 둘러메고 버스를 타러 갈 때, 늦은 시각 일을 끝내고 퉁퉁 부은 두 다리를 끌며 집으로 걸어올 때, 나도 미련 곰탱이 같은 내가 싫어진다. 특히 식당에서 같이 일한 18살짜리 아이가 차 열쇠를 흔들며 ‘집까지 태워줄까'하고 해맑게 물어올 때는 정말이지 오장육부 심연에서 현타가 올라온다. 나는 미래에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현재의 나를 이런 고난과 역경에 밀어 넣고 있단 말인가.
여긴 땅이 너무 넓어. 넓어도 너무 넓어. 입 속에 불평을 가득 머금은 채 걸을 때마다 내가 처량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가보는 길을 찾아갈 일이 생기면 1분 1초라도 걷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최적의 대중교통 조합을 찾으려 애썼고, 웬만하면 외출을 자제했으나 부득이하게 나갈 일이 생기면 움직인 김에 최대한 많은 볼일을 보고 말겠다는 강박으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다음 주, 다음다음 주의 일까지 굳이 찾아내 미리 해치웠다. 나에게 걷는다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동이고, 예정된 피로의 원흉이었으며 지난날 섬광 같은 영광과 대비되는 오늘날 궁색함의 대변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걷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났다. 가장 가까운 정류장보다 더 일찍 내려 집까지 걸어간다는 그 사람에게 왜 굳이 걸어가느냐고 물었고 돌아오는 그 사람의 대답은 좀 충격적이었다.
“나는 걸을 때 무한한 자유를 느껴.”
사실 물어놓고도 대답은 뻔할 거라 짐작했다. 운동삼아 걷는다든지, 날씨가 좋아 걷는다든지 뭐 대충 그런 말일 거라고 생각하고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귀에 꽂히는 단어는 놀랍게도 ‘자유'였다. 자유라니. 그것도 무한한 자유라니. 순간 항상 반대로 생각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 없어 걸어야 하는 상황은 자유가 박탈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 자유를 느낀다는 말은 행복을 느낀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다. 그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이후로 걸을 때마다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상상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연습이 반복되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무겁게만 느껴졌던 두 다리가 훨훨 날아갈 것 같진……. 않았지만 오백 그램 정도는 가벼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내가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제법 고마워지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차 안에 있는 것보다 확실히 자유롭긴 했다. 주행 방향을 바꾸는 것도 유턴을 하는 것도 걸을 때는 깃털을 옮기 듯 가볍게 몸을 틀면 그만이었다. 깜빡이를 켤 필요도, 신호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걷거나 뛰거나 멈추거나 혹은 길가에 그냥 주저앉는다 해도, 빵빵거리는 뒤차도 과속을 했다며 쫓아오는 경찰도 없었다. 전후좌우 꽉 막힌 도로에서 찔끔찔끔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답답한 출퇴근 시간 도로 위에서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차를 버리고 그냥 걸어가고 싶다고. 차가 짐처럼 느껴지던 그 당시 차를 두고 떠날 수 있으면 세상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챙겨야 하는 것이 내 몸 하나뿐인 상태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제야 깨달았지만 나는 그런 자유를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운전을 할 때는 내비게이션과 도로 상황에 신경 쓰느라 볼 수 없었던 캐나다의 파란 하늘과 길가의 꽃과 산책하는 강아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주 걸어오는 행인의 다정한 눈웃음도 종종 만났다. 무한한 자유는 어쩌면 새로운 획득이 아니라 발견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있었지만 있는 줄 모르고 있던 어떤 것 말이다.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짓누르거나 갑자기 예고 없이 비가 쏟아질 때면 여전히 길바닥에 주저앉고 싶다. 그럴 때면 당연히 버스나 스카이트레인을 기다리는 대신 내 차(가 있다면)를 운전해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요즘은 쉬고 싶으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실제로 길가에 주저앉아 쉬기도 한다. 걷는 사람의 특권이란 그런 거니까. 언젠가 자동차라는 편의를 누리기 전까지 그리고 동시에 그 책임을 져야 하기 전까지 내게 주어진 궁색한 자유를 충분히 만끽할 작정이다. 무한한 자유란 발견하는 순간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