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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우주

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26화

by 황서영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더 된 과거의 어느 날 유튜브를 떠돌다 우연히 노래를 하나 듣게 된다. 멜로디에 나의 5초를 붙잡혔고 분위기에 다음 10초도...... 그 이후로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건 가사였다.


한 사람이 오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 세계는 칠판처럼 진하고 분필처럼 깊어서 다시 만난 적 없던 때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 내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우주 하나씩을 떨궈놓고 사라졌다. 다행인 점은 그들이 밀어 넣고 간 우주가 원래 있던 나의 세계를 잠식하거나 해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실제 우주도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는 것처럼(믿기지 않지만 과학이 그렇다고 하니까 믿는 수밖에) 내가 가진 세계도 내가 만난 사람들이 심어놓고 간 우주로 인해 매번 팽창하는 것 같았다.


공통점은 한 사람이 지나고 나서야, 그러니까 하나의 인연이 끝을 맞이하고 나서야 그 우주가 내게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건 분명 내가 그 사람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생겨나고 있던 우주였을 테지만 끝이 난 이후에서야 그 존재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나고 나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는 말처럼 한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맺고 나서야 그 사람이 나에게 가져온 세계가 나에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한 번도 사랑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던 흐리멍덩한 연두색이 에매랄드 그린이라는 매력적인 색깔이 되고, 이후부터 흐리멍덩한 연두색의 물건을 보면 무조건 장바구니에 넣는 사람이 됐다. 노래에 눈곱만큼도 관심 없던 내가 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얼터네이티브 락 2인조 패닉에 심취하게 되면서 음악이라는 세계를 내 안으로 들이게 됐다. 재즈도 그렇다. 콧대 높게 들리는 발음도 '째애-즈으-' 한 번도 좋아해 본 적 없는 발음의 혼란스럽기만 했던 음악. 그 음악의 세계도 누군가 내게 떨궈놓고 간 신세계가 됐다. 시, 시도 그랬다.


'Love is fire. It burns everyone.

It disfigures everyone.

It is the worlds's excuse for being ugly.'


사랑은 불꽃이다. 모든 이를 태우고,

모든 이를 일그러뜨린다.

그것은 세상이 추하다는 사실에 대한 변명이다


'Poetry is just the evidence of life.

If your life is burning well, poetry is just the ash.'


시는 삶의 증거일 뿐.

네 삶이 잘 타오른다면, 시는 그저 남은 재일뿐이다.


직설이면서도 아름다운 영미 문학의 묘미를,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레드 와인이 최고인 줄 만 알았던 내가 백포도주의 미네랄리티(미네랄 맛이나 향이 느껴지는 풍미)의 매력을 알게 된 것도 지난 인연이 넓혀준 세상이다. 남겨진 줄 몰랐던 이런 세계의 발견은 계절이 돌아와 오랜만에 꺼내 입은 외투나 바지 주머니 속에 무심코 손을 넣다 발견한 영수증처럼 시간이 지난 후 예고 없이 나를 찾아왔고, 인연과는 다르게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이 나의 확장된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좋아한 사람보다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이 남기고 간 세계가 훨씬 크고 뚜렷한 우주로 남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좋아했을 땐 내 마음만 너무 대단하고 별스러워 상대방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고 또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발짝 떨어진 채 관찰할 수 있었던 상태의 나는 비록 지나고 나서야 인식할 수 있었을지언정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배경을 지배하던 주인공이 사라진 후 더욱 선명해진 그 세계는 그 이후로의 내 삶에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며 나와 공존한다. 사람이라는 다이내믹으로부터 한 발작 떨어질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생긴 반추의 여유가, 내게 남겨진 우주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렌즈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대의 우주, 그대의 별

외로운 그 안의 나


그대의 단어, 그대의 말

흐릿해져 가는

그 속의 나


내가 좋아 떠난 여행도 막상 그 안에 들어가고 나면 너무나 새로운 세계였고 그래서 외로웠다. 내가 좋아 시작한 마음도 좋아하는 그 마음이 클수록 내 존재는 흐려지는 것 같았다. 외로움이 끝나고 내 존재를 다시 찾기 시작하면 떠난 그들이 남기고 간 우주가 내 세계를 넓혔다. 아무리 외롭고 흐려져도 여행도 사람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확장된 우주의 한 귀퉁이가 될 수 있었을까.


십 년 전 그 노래의 제목은 '그대의 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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