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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다섯 번째 키워드

by 황서영


예쁜 단풍으로 물들고 싶다


야들야들 보기에도 너무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는 연두색의 새싹이 돋아나는 걸 보면 우리는 벌써 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혹독한 추위를 어찌 견뎌내고 이렇게 아기 새싹이 돋아났을까? 아직 밤에는 쌀쌀하고 때로는 서리도 내리는데... 이 새싹이 얼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걱정 반, 신기한 마음 반으로 나무 한가득 돋아난 새싹을 바라본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나의 관심은 딱 새싹이 돋는 그때뿐, 세 아이들 양육에 바쁜 나의 일상을 살아가느라 더 이상 새싹에게 관심을 주지 못한다. 어느 순간 해가 너무 뜨거워졌을 때쯤 다시 한번 그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아기 새싹은 어디론가 가고 어느덧 어른 손바닥 만한 잎으로 가득하다. 그것도 아주 씩씩하고 튼튼해 보이는 싱그러운 초록빛 건강한 잎이다. 그래서일까? 나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 보이기만 하다. 우와! 내가 열심히 살아왔듯 이 나무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지만 그 그늘의 시원함을 느끼기도 전에 난 또 바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점점 많아지는 아이들 학교 행사와 각종 스포츠 행사로 방과 후 세 아이들 라이드를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가끔 이렇게 저녁 인사를 나눈다. "오늘 택시 영업은 잘 마치셨습니까!!" 택시 운전사 노릇 하느라 싱그런 나뭇잎이 주는 그늘은 그저 그림의 떡이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더니 이젠 아이들이 제법 많이 컸다.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거나 엄마 없이도 자신의 식사는 물론 동생들 식사까지 챙겨줄 만큼 아이들이 내손을 조금씩 떠나고 있다. 그리고 보니 늘 보아왔던 나무의 나뭇잎도 예전 내가 기억하던 싱그럽고 튼튼하고 씩씩하게만 보였던 초록색 잎이 더 이상 아니다. 어떤 잎은 햇빛에 반사되어 살짝 노란색을 띠기도 하고, 어떤 잎은 갈색으로, 또 어떤 잎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약간 뒤틀리기도 또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의 일상을 살아가느라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 조금은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잎 하나하나를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더 이상 새싹 때의 여리고 소박한 연두색이나 한창 여름 때 늠름하고 튼튼한 짙은 초록색은 볼 수 없지만 잎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특유의 색깔을 띠려고 슬글슬금 잎 끝에서부터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변화다. 이 나무가 멋진 색깔로 예쁜 옷을 입고 자기의 최고의 자태를 뽐낼 때쯤이면 난 아주 오랜 시간 이 나무 밑에서 생각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나의 일상으로 바쁘게 돌아갈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 단풍들이 하나둘 다 떨어지고 나면 그래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면 나도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새싹 때부터 보아왔던 이 나무들을 기억하며...


난 지금 나의 최고의 자태를 뽐내기 위해 어떤 색으로 변신할지 고민 중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떤 색으로 물들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햇빛이 쏟아지면 온몸으로 받아들였고, 바람이 불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매달려 있었다. 더 이상 약해 보이는 어린 새싹도 아니고, 무엇이든 다 이겨낼 것 같은 튼튼한 초록색 잎도 아니다. 내 안에 어떤 색소가 있어 어떤 색으로 변할지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분명 난 나만의 단풍색을 가질 거란 것이다. 물론 어린 새싹 때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시간으로 인해 약간은 뒤틀리기도 하고, 또 여기저기 벌래 먹은 자국으로 구멍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흉해 보일지도 모르는 이 모습도 나만의 단풍색으로 물들 때쯤이면 그 자태 만으로도 아름다울 거라 생각한다. 예쁜 단풍으로 물들기. 예쁜 단풍으로 물들고 싶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예쁜 단풍을 주어 책 속에 끼워두고 오래오래 간직하며, 조심스럽게 옛 시간을 다루듯, 나도 누군가에게 예쁜 단풍으로 남아 오래오래 기억되고 싶다. 예쁜 단풍으로 물들고 싶다.



패미로얄@canada_famiroyale



인생의 담금질


단풍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니 내 머릿속의 알고리듬이 자동으로 노인회가 주관하는 가을철 단풍 관광을 연상시킨다. 왜 그럴까?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취하는 건 어떤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닐 테지만 단풍 나들이는 왠지 은퇴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으신 분들에게 그동안 힘든 세월 수고했으니 이제 누릴 자격이 된다고 주는 보상 같기도 하다.


어디선가 듣기로, 울긋불긋 유난히 붉게 물든 단풍은 급격한 기온 변화와 단풍이 질 무렵에 비가 얼마나 자주 내렸는지에 달렸다고 한다. 총 천연색의 단풍으로 거듭나기 위해, 늦여름과 초가을 비에 온 몸을 흠뻑 적시고, 또 밤사이 기온이 뚝 떨어졌다가 낮에는 따가운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이런 변덕스러운 기온 변화를 겪어 내야 한다니, 하물며 잎사귀 색깔의 작은 변화를 위해서라도 외부 환경의 변화는 피해서는 안 되는,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 같다.


비와 급격한 기온 변화가 왠지 우리 인생의 담금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바람과 늦여름 햇살의 담금질을 잘 견뎌내고 나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단풍이 대장관을 이루어 낸다. 그러고 보면 어느 것 하나도 거저 되는 게 없고, 공짜로 얻는 게 없는 것 같다. 공짜인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만 누릴 수 있고, 얻을 수 있다는 소박한 진실을 대자연의 변화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정금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풀무불에 일곱 번 씩이나 연단하여 얻어진다니, 어찌 인생에서 만나는 변화의 시간, 훈련의 시간을 마다하겠는가.


철없던 시절에 나의 기도 제목은 내 삶에서 아무런 걱정, 고난, 염려와 고통이 없게 해 달라는 순진무구한 것이었다. 물론 이제는 안다. 그런 기도의 응답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는 것을.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살아 호흡하는 동안,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시련과 고난들은 나를 정금같이 다듬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말이다. 낮에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남동생이 직장 생활에 너무 치여서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고 귀띔을 해주셨다. 엄마도 뭐라 어떻게 조언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이들 클 때까지는 꼼짝 말고 회사에 잘 다니라고 하셨단다. 나라면 이렇게 얘기했을 거라며 나의 지론을 펼쳤다.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후회가 시도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이라는데, 인생에서 아무런 변화도 없이 무탈한 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니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이다. 초록잎이 변화를 거부하고 그대로 초록이기만을 고집했다면, 단풍 구경은 책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살아 호흡하는 모든 유기물은 변화를 통해서 성장하고,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이 고통은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함께 따라온다.


해마다 9월이 되면, 기차 타고 알공퀸 국립공원에 단풍 구경을 한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해본다. 올해는 이 꿈을 이루려나 모르겠다.


소냐민정@mjk_immigration



단풍 일기


수개월을 열심히 달렸다. 올해는 땅에서 공기에서 자양분들을 끌어올리기 힘이 무지 들었다. 아기새들이 먹이를 기다리듯 이른 봄에 내어 놓은 새 잎사귀는 영양분 달라 아우성인데 도무지 뭔 일이 있는지 해가 갈수록 받아내는 햇빛도 다름을 느낀다. 더 많이 얻겠다고 욕심도 탐욕도 부린 적 없는데 팍팍한 인생은 예상 밖의 일이라 곤혹스럽다.


여름의 끝자락 인사가 엊그제인데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하다. 위쪽 지방 나무들이 이미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니 곧 내 차례인데 슬슬 준비도 해야 할 참이다. 모두들 조금은 힘든 시간이 다가 올 즈음이라 그런지 작년 이맘때 이야기로 다들 이야기가 분분하다.


초록이 양보하고 내어준 자리에 드디어 나온 노란 잎 하나는 기쁨의 함성을 지르던 차에 이쁜 소녀의 손바닥으로 살포시 앉았단다. 보드라운 살결이 닿으니 기분이 참 좋다고 난리 치더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단다. 알고 보니 소녀가 오래 간직하려고 두꺼운 백과사전 안으로 들어가 압사당했다는 괴소문이었다. 그래도 소녀의 끝없는 사랑에 부럽다는 녀석의 말에 나도 살짝 동의했다. 벤치 위에 드리워졌던 어느 놈은 쑥스러운 두 청춘의 뽀뽀를 훔쳐보기도 하며 바람에 흔들려 소리 나려는 자기 몸을 한층 더 낮추었단다. 바스락 소리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뭐라나. 그 덕에 그들의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단다.


우리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 속에는 이런 모습에 기운이 더 쳐지는 사람도 많더라. “나는 이리 변변치 못한데 너는 참 우아하게 단장을 하고 또 나타났구나” 했던 처진 어깨를 하고 터덜 터덜 걸어가는 아저씨의 등에 대고 말해줬다. 살아내려 애쓰는 당신 괜찮은 사람입니다, 제발 조금만 더 힘내시길 했다. 나를 보고 어깨가 더 처질 일이 아니면 더더욱 좋겠다고 말이다.


초록이 부서져 나온 빨간 잎들은 감사함에 눈물을 흘렸단다. 어쩜 그리 아름답기만 하냐고 부러워함의 일색인데 자기들을 알아봐 주는 노부부의 동병상련의 진심 어린 눈길과 고마워함 때문이었단다. 변화를 위한 우리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는 저들의 단풍놀이 향연에 흥겨운 술 한잔도, 향긋한 커피 한잔도 감사 해야겠다는 말을 들었단다. 그런 걸 들으면 이 세상에 주려고만 했다는 나의 오만함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지만 이런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시간 여행을 할 차례임을 보게 되고 나를 향한 그들의 감사함을 퇴색시키지 말아야 하겠다 싶다.


내일은 물길을 막고 그나마 남은 양분을 고이 잘 보관할 때이다. 인고의 시간 끝에 투두둑 땅에 떨어지는 내 소리에 그들이 너무 좋아하지도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이 모든 게 끝이 아니라 또다시 돌아 올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치 없는 저 놈의 밤송이는 유난히 큰 소리로 떨어지며 입을 헤벌레 웃고 있다. 분위기란 걸 모르는 저 녀석 그래도 미워할 수가 없다. 오늘 일기 끝.


pinkpen@mindmap.anna




시간 속에 묻혀 버린 그 해 가을


캐나다 이민 36년

한국에 살 땐 그저 설악산이나 내장산 단풍이 멋진 걸로만 알고 있다가 이곳 캐나다에서 보는 단풍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광화문 거리를 수놓은 노란 은행나무잎들과 낙엽 태우는 냄새를 가슴으로 진하게 느끼며 묵직한 첼로 소리에 기대어 앉아 즐기던 가을 커피.

그리고 흐르는듯한 바람의 움직임까지 아직도 내 귀와 가슴에 살아있는 이것은 한국의 가을 감성이다.

이곳에서는 가까운 듯 멀리 그리고 또 한 곳에 뭉쳐 있는 것 같으면서 따로, 서로서로 이웃이 되어

멋들어지게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수많은 나무의 모습들에 눈이 확 커지고 가슴까지 뻥하니 뚫린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가을을 기다리며 가을을 즐기고 누리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내게 가을이면 생각나는 특별한 장소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아라시야마’라고 말할 것이다.


내 기억 속의 그곳은

온통 붉게 타는 단풍 사이로 그림 같은 기차가 지나가는 곳이고

화려한 가을 산을 배경으로, 긴 다리 끝에서 빨간 나무 양산을 받쳐 든 여인이 마치 연인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기대어 있던 곳이며

일본 여행에서 만났던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 그 시간을 몽땅 묻어둔 곳이기 때문이리라.


아라시야마

이곳은 봄 , 여름 진한 녹음의 싱그러움을 느끼기에 그만이기도 하나 무엇보다 가을 풍경은 할 말을 다 잃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고, 액자 속으로 걸어 들어온 느낌을 준다.

또 이 멋스러운 풍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고 긴 다리를 건너 오가며 뱃놀이를 할 수 있는’ 호즈카’ 강이 있어서 더더욱 가을 향이 묻어나는지도 모르겠다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이곳 주위엔 볼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300미터에 달하는 대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지쿠린 노미치’가 바로 옆에 있다 보니 여행객에게는 카메라를 마구 누르게 되는 장소요

쉬어가는 곳이며, 온몸으로 힐링을 누리는 멋진 곳이기도 하다.

그 대나무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수줍게 보이는 새색시 볼 같은 단풍잎들의 미소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2019년 가을

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떠난 오사카 여행길.

아버지 살아생전엔 같이 할 여유가 없어 미루고 미루었던 것이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수없이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걸었고, 물어 물어 그 복잡한 한큐선을 타고 내린 교토.

거기서 만난 아라시야마의 풍경은 나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그 몇 년 전에도 딸과 함께 다녀간 적이 있는 곳이었는데 계절에 따라 이렇게 다른 감성과 색깔을 선사해 주다니… 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서서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정원들도 생각난다.

아라시야마 근처였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어찌나 잘 가꾸어 놓았는지 그저 감탄만 연발했던 곳.

오래 걷다 보니 좀 쉬고 싶었는데 곳곳에 준비된 나무 의자들에 앉아 여유 있게 숨을 고르며 단풍에 취한 오후,

일본 정원 특유의 각양각색으로 조화를 이룬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번번이 멍 때리기가 일쑤였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라며 학창 시절을 보냈던 오사카라서 그런지 왠지 애틋함과 정을 가지고 둘러보고 살펴보며, 걷는 내내 눈에 들어오던 가을 색들의 향연이라니

마치 마법 가루를 잔뜩 뿌려 놓은 듯한 모습에 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을 그대로 가슴에 담아 다니느라 그저 설렘으로 충만했던 날.

일본에서 태어나 청년 때에 한국으로 와서 경상도 여자와 결혼을 한 아버지의 일생을 그려 보느라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난 여전히 꿈을 꿀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다시 아라시야마에 오리라 생각하고 한국을 거쳐 캐나다- 내가 사는 곳-로 왔지만 코로나라는 복병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코로나로 한국을 못 간지가 벌써 몇 년인가!

바라기는 내년 봄엔 한국을 방문할 생각인데 그때 일본을 다시 가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은퇴하여 쉬다가 운 좋게 재취업을 한 지금은 휴무 때라도 어디 멀리 갈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매년 런던 근처의 ‘엘로라’로 짧은 가을 여행을 다녀오곤 할 뿐이다.

하지만 머릿속엔 온통 그 해 가을 그 시간 속으로 나도 모르게 걸어 들어가고 있다

.

아무리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있다고 해도 2019년 그 가을,

아라시야마에 묻어두고 온 나의 시간은 아마 해마다 붉게 타오르리라.

교토 여행을 마치며 마셨던 아라비카 진한 커피 또한 추억 속의 향이 되어 이 가을을 태워주리라.


성은@life_coaching.sue




단풍은 그대를 닮았다


딱 이맘때쯤이면 직장 동료인 수잔과 어김없이 매일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언니~ 벌써 9월이야.. 곧 9월이 금방 지나가겠지..?'

'ㅋㅋ 자기랑 나는 매년 똑같은 이야기 한다. 그렇지?'

'ㅋㅋ 맞아.. 우리 매년 이맘때쯤이면 '시간 참 빨리 간다, 벌써 봄이네! ' 하다가

또 금방 여름 오면 '너무 더워 언제 여름이야 애들 곧 방학하겠다' 하고선

ㅋㅋㅋ 9월 되면 단풍 보러 다녀야 하는 계절이 왔다'라고 그러잖아 ㅋㅋ'

' 맞아 맞아. ㅋㅋ 그래 놓고 겨울 되면 벌써 겨울이네, 단풍 구경 제대로 못했네 하면서

금방 또 크리스마스 오고 1월 오면 여름이네~ 할 거라고 ㅋㅋ'

' 자기야 시간 정말 빠르지?'

' 그러게 언니.. 한 해 한 해가 너무 달라.. 모든 게.. 이놈의 시간은 숨 헐떡거리게 왜 이렇게 빨리 가나 몰라'

이런 이야기들이 하루하루 동료인 수잔과 나 사이의 공간을 가득 메울 만큼 매번 반복이 된다는 걸

몇 년 전부터 알게 되었다. 서로 이야기하고선 멋쩍어 큭큭 거리며 웃기도 많이 했으니까.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나는 주변에서 단풍이 오는 계절이면 주변의 지인들이 바빠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9월 말즘부터 10월 말까지.

다들 여기저기 예약을 해서 단풍 구경을 가고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캠핑을 여기저기 다니며

지역마다 숨어있는 보석 같은 단풍그림 보물들을 찾아다니기 때문인걸 알고 있다.

쉽게 휴가를 내고 어딘가로 갈 수 있는 직장이 아닌 내 직장의 특성상 그 가을을 너무 사랑하지만

온전히 느끼지도 못하고 차마 보내지도 못하는 나는 7년 전부터 공원 한 곳을 정해 매해 단풍이 시작되고

상큼한 애플그린의 춤을 추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홍조가 차오른 듯 붉게 타오르는 시간을 버티다

성숙해진 모습으로 안녕을 인사하고 떠나는 연인의 모습처럼 아름답지만 쓸쓸하기도 한 그 시간의

석양빛을 닮은 그 모습의 그곳을 매년 가서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었었다.

그것도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지 3년째.

코비드를 시작으로 일상이 리셋돼 버린 후부터 다시 그곳을 찾아 그 잠깐의 여유와

산책을 하던 낭만은 사치인 것처럼 되어버려서 일까..

그 작은 행복마저 나는 나에게서 스스로 빼앗아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 행복.. 내겐 사치였을까?

'단풍이 시작되네..'

'응. 그러네 너무 이쁘다. 곧 붉게 물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해지겠지 이곳도.'

'.. 그러겠네'

' 왜? '

' 넌 단풍이 좋아? '

' 아니 난 여름이 좋아, 그런 넌 단풍이 좋냐?'

' 음.. 난 단풍이 좋은 건 맞는데 더 정확히는 그 단풍을 간직하고 매년 꺼내보여 주는 '가을'이 좋아'

' 뭔 소리야 너 시쓰냐?'

' 아니. 넌 단풍을 보면 막 좋기만 해?'

' 뭐래~ 당연히 좋지! 이쁘잖아 아름답잖아!'

' 나도 좋아. 좋은데 이상하게 끝엔 아련하고 아파. 슬퍼'

' 미친.. 장난치지 말고 빨리 산책 끝내고 가서 커피나 마시자'

' 응.'

그러면서도 난 매번 어김없이 여러 차례 뒤를 돌아보며 작별 인사를 하듯 돌아보고 또 돌아보곤 했다.

아무도 없는 그 숲 속에 나무들 사이에서 걷는 걸음만을 셀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길 위에서

또 뒤돌아 보며

한 숨을 내 쉬고 다시 한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뒤돌아 보며

떨어지는 뜨거운 방울들을 몰래 훔치면서

들리지 않을 만큼의

숨소리를 섞은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숲 속의 나무들을 닮은.

전체를 보면 그 나름의 멋이 있고

안을 들여다보며 그 하나하나 모든 나무들의 섬세한 다름과 아름다움들.

가까이 보면 별 것 아닌 듯 사랑은 있지만 감동이 적어지는.

마음을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고 뒤로 물러나서야

그 하나하나가 모여 큰 덩어리의 아름다움을. 그 웅장한 기세를.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과 신비로움을 담은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그리고 곧... 안녕하고 인사하고 뒤돌아 가버리는 인연처럼

그 모습을 감추게 될 거라는 것도..

선 자리에서 그 자리의 그 모습이 다시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릴 거라는 것도.

그렇게 아쉬움 가득 담은 미련의 미련함으로 한참을 서성거리다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연극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 또 아닌 척하면서 인사를 하고 오겠지.

' 잘 있어. 또 올게. 아빠'

그렇게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가을은 단풍을 품고 있다.

그 모든 색색의 변이 성과 모순과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하나로 뭉쳐놓은 듯한

단풍은 나의 아빠를 닮았다.

단풍이 지고 겨울, 봄, 여름 그리고 다시 가을이 오면 찾아오는 단풍처럼

다시 내게 찾아오지 못하는 것은 꼭 겨울이 오기 전 단풍의 모습을 닮은 거라

우기는 나의 마음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아빠는 매년 단풍을 볼 때면

더욱 도드라지게 내게 속삭이는지도 모르겠다. 큰소리로.

'딸! 아빠 여기 있어~! '

없는 걸 알면서도 있다고 믿는 어린아이처럼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사각.. 사작.. 사사작...


하루@mind_here_



원래 있던 그것


여름이 간다는 아쉬움 때문에, 여름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뿔난 심정에 가을을 미워하던 때가 있었다. 생동감의 대명사인 여름만이 계절의 왕이라 여겼다. 여름을 밀어내고 찾아온 가을은 쓸쓸하고 스잔했으며 정적이었다. 발에 치이는 낙엽들을 쓸어내느라 빗자루를 든 사람들은 고단해 보였고 가을바람에 긴 머릿결을 쓸어 넘기며 조신하게 책을 읽지 않으면 교양이 없는 사람이 될까 조바심이 나기까지 했다. 아니, 그건 전부 핑계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을을 미워했던 진짜 이유는 '스러지는 계절'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앞으로 위로 쭉쭉 뻗어가던 싱그러운 여름의 클라이맥스를 만끽하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그렇게 푸르던 이파리들이 시들며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모습들이 우울하고 쓸쓸해서, 그래서 가을을 사랑할 수 없었다.


The falling leaves

Drift by my window

The autumn leaves

Of red and gold


I see your lips

The summer kisses

The sunburned hands

I used to hold


그러다 어느 날 사랑에 빠진 노래가 있었다. 스탠더드 재즈곡으로 유명한 이 노래는 가을만 되면 사방팔방에서 들려오기에 도대체 어디에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랑의 빠진 그 순간만큼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그날은 처음 가본 골목길의 한적한 라이브 바였고 화려하지 않은 재즈 쿼텟의 반주에 담담한 보컬이 얹어진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굴러가는 가을 낙엽처럼 담백한 보컬이 좋았고, 건조한 듯 툭툭 걸어가는 베이스가 쓸쓸했지만 매력적이었다. 그날은 그 노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이었고, 가을이었다.


그 노래와 사랑이 빠진 그 순간 무언가 깨달은 것 같았다. 가을이 품은 쓸쓸함은 누구나 담고 있는 것이라는 것. 외면하고 미워했지만 내 안에 있던 어떤 것. 여름의 열기에 가려져 있었지만 분명 어디엔가 있었던 것. 단풍의 楓이라는 글자는 나무[木]와 바람[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어디선가 보았다. 나무에 바람이 스미면 푸르렀던 이파리가 붉게 변하는 것이 단풍이었다. 그렇게 색이 변하는 과정은 나뭇잎이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 말은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분해가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노랗고, 빨간 단풍의 색깔들은 그동안 엽록소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사실은 '변한 것'이 아닌 원래 잎 속에 '존재'했던 본연의 색이었던 것이다.


알록달록 단풍의 숨어있던 색처럼 가을은 어쩌면 우리를 더욱 '나다운' 색으로 드러내 주는 계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쓸쓸하지만 그리고 여전히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들지만, 이제는 외면하기보다 마주하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꽤나 기특한 다짐도 한다. 사색의 계절, 독서의 계절, 그리움의 계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무리 밀어내도, 그 속에 머금고 있는 단풍의 색처럼 없던 것으로 할 수 없는, 나의 '진짜 본질'이 내 안에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더 이상 가을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


황서영@https://link.inpock.co.kr/stand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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