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감정 글쓰기 2주 차

by 황서영

'감정 글쓰기' 코칭 수업 수강생들의 글을 모아 편집한 글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의/코칭/편집

황서영 no.more.thinking.and@gmail.com



"수자야 난 정말 더 이상 못해 먹겠다 이렇게 사는 거 , 창문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어. 그만 살고 싶다. 이 지랄 맞은 도깨비장난에서 멈추고 싶어.”

난 그녀의 이야기에 뭐라고 한마디도 열지 못했다.

“ 결혼 후 이날 이때까지 한시도 맘 편할 날 없이 늘 그 사람 눈치나 보고 시어머니 비위 맞추어야 하고 그런데도 그놈은 밖에서 교수랍시고 위엄을 부리고 있지만, 하고 다니는 건 너도 알잖아 난봉꾼에 치사 유치 저질이라는 거. 어떻게 인간이 그다지도 뻔뻔한지 모르겠어 , 정말 죽여버리고 싶다. 아이 때문에 여기까지 겨우겨우 버텼지만 이제 더는 안 할 거야.”

난 유경이의 어깨를 안으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너라도 그럴 것 같아 참고 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 나도. 하지만 죽고 싶다라느니, 끝내버린다느니 같은 극단적인 말은 좀 뒤로 빼두자.”

안 그래도 비쩍 마른 친구의 얼굴은 주름살이 더 늘은 듯했다. 명색이 교수 사모님이라는 친구의 초라한 행색은 가까이 다가가면 죽음의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결혼 잘했다는 말을 들으며 우리들의 수다무대에서 사라졌던 유경이는 2년 전 어느 여름날 우연히 동네 마트에서 만나게 되었고 학창 시절처럼 다시 만남의 시간을 이어갔다. 10여 년 만에 만난 그녀의 얼굴에서 난 석연찮은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연민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행복하고 편안하게 잘살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러면서 풀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어디다 말도 못 풀어놓고 가슴만 치고 살다가 너를 만나 이렇게라도 말을 할 수 있어 시원하다고 하던 친구. 워낙 밖에서 번듯하게 행동을 하고 다니니 남편이 그런 위인이라 말해도 아무도 곧이듣지를 않고 복에 겨운 너무 행복해 투정이라며 눈을 흘긴다는 것이었다. 결혼 15년 동안 별의별 짓을 다 해보며 남편이 바뀌길 기대했고 교회 아버지 학교라던가 여러 프로그램에도 보냈지만 아무 효과도 없고 이젠 완전 절망뿐이라고 했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이나 유경아. 유난히 동그란 눈에 생기가 철철 흘러넘치고 ‘선풍기’라 불릴 정도로 주위를 늘 웃음으로 물들게 하던 아이, 유경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가슴 한편에는 마치 수인 번호처럼 stop싸인을 붙인 채 속으로 피를 흘려가며 찌그러진 깡통처럼 삶을 끌어가고 있었다.


어제저녁, 전화벨이 유난히 수선을 떨며 울렸다. 유경이 딸이었다. “ 아줌마 얼른 좀 와주세요. 엄마가 이상해요.” 무엇인가 등줄기로 내리 흐르는 것을 기분을 느끼며 전화기를 던지다시피 내려놓으며 차 열쇠를 집어 들었다. 내려놓자마자 후다닥 달려갔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해서 갔는지 모르겠다. 집안에 들어서니 온통 난장판이었다. 안방에 들어가니 친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온 방안에 널려 있는 하얀 알약들, 덜덜 손을 떨며 응급차를 부르고 바닥을 치웠다. 친구 남편에겐 도무지 연락이 안 되었다. 병원에 가자마자 위 세척이다 뭐다 하여 부산스레 소동이 일어났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태위태하게 밤을 넘기고 다음날 오후 3시경에나 눈을 뜬 친구와는 아무 말없이 꼭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 xx 같은 자식. 이런 인간을 안 데려가고 뭐 하나?”

퇴원을 할 때까지도 유경이 남편은 코빼기도 안 비추었다. “ 아마 또 여자 하나 끼고 어디로 날아갔겠지.”

죽음의 순간을 디디고 문턱을 밟고 돌아왔을 친구는 제정신이 드는지 더 이상 남편 욕도 하지 않고 멍한 모습으로 어린애처럼 누워있다. 퇴원하여 유경에게 옅은 미음을 해서 먹이고, 나도 한 숨 돌릴 겸 생각 많은 얼굴로 차 한잔을 마시는데 누군가 벨을 쉬지 않고 마구 눌러댄다. 나가보니 웬 순경이 서 있다.

“여기가 김 아무개 집 맞습니까?”

“네 친구 남편이에요.”

“ 아내 되는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아 , 지금 아파서 누워 있어요 왜 그러시죠?”

“ 죄송합니다 이런 말씀드리게 되어서. 요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이 집 남편인 것 같아서요. 얼른 oo 병원 응급실로 가 보십시오.”

“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난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일단 내가 가볼 테니 넌 좀 더 자' 했다. 부랴부랴 병원에 가 보니 유경이 남편은 워낙 상황이 급해서 바로 수술 실에 들어가 있다고 했고 동행한 여자는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누워 있었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란 말인가.'

전화로 대충 상황을 친구에게 전하고 위험한 상태라고 하니 일단 시어머니께도 전화하고 아이들에게도 마음 준비 시켜야 하겠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유경이 남편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애 먹이며 살던 날들을 스스로 끝장내 주었다. 아들밖에 모르는 시어머니가 친구에게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욕다구리를 해 대었으나 유경이는 장례식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그런 자식에게는 눈물도 아깝다 ) 그 후론 오히려 자기만의 삶을 일구느라 정신이 없다.

“ 유경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쩌면 많은 세월 참고 살았던 시간에 대한 보상 같다.”

“그래 수자아,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었는데 … 읽어버린 시간들을 누려보라고 이런 상황을 주신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해. 이리 살다 보니 시궁창에도 빛이 드는 날이 다 있구나. 혹을 떼 내주신 것에 감사하며 내 인생을 그늘지게 했고 마음을 병들게 했던 원인제공자를 불러가신 것이 이렇게 홀 가분 하다니.”

유경이는 그 후 날로 새롭게 변화를 해 나갔다. 극단적인 선택에서 살아남은 유경이에게 지나간 15년을 두 배로 살도록 기회를 주시고,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빛으로 채워지며 생기 도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친구에게 그 보다 2배나 더 긴 기회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새로운 빛으로 채워지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봄날의 꽃이 내려앉는다.


남편의 죽음에 손뼉을 쳐라 최성은 Sue



무엇이 그토록 그 아이를 잡고 있는 걸까? 아이는 마치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사실 아이라기보다 그녀는 세련된 도시적인 외모에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 우먼을 연상시킨다. 웃으며 발랄하게 대화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며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과거에 본인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조차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지고, 그때의 우울했던 기억이 떠올라 울음을 참기 힘들어한다. 어릴 적엔 부모의 자랑일만큼 영재소리를 들으며 우수한 학업 성적을 자랑했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서 한때 음대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부모의 이기적인 욕심에 부흥하기 위해 연주가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새가 되기보다는 어려서부터 늘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다가 흥미로운 곳을 찾으면 그곳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탐색하기 좋아하는 호기심 많고 두려움을 모르는 그런 새였다. 때가 되면 모이를 주고,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그런 새장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지하게 발현되었다. 작은 새의 멀리 나아가고픈 꿈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사립 고등학교 학비 걱정을 하는 부모의 바람대로 다행히 꺾였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딱히 본인이 원했던 곳은 아니었지만, 부모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조건이 아주 좋은 그런 학교였다. 부모에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품 안의 새가 태평양을 건너 낮과 밤을 달리하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 작은 새는 그렇게 새장을 떠나갔고, 두 번 다시 정든 새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니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어린 새였을 때 혼자 아파했던 기억이 그곳에 가면 다시 떠오르기에 애써 거부하며 밖으로 더 멀리멀리 날아다녔다.


세상적인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눈에는, 그 작은 새는 이제 화려하고 매끄러운 깃털에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아름다운 새가 되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 새를 계속 짓누르며 괴롭히는 비관적이고 허무한 감정이 날아 보려 날개를 펼칠 때마다 할 때마다 푸다닥거리기만 할 뿐 그 무게에 새를 자꾸 주저앉게 만든다. 다른 새들과의 관계도 너무 어렵고, 어렵다. 다른 새들이 그저 본인의 화려한 깃털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본인의 깃털을 탐내며 빼앗으려 접근하는 건 아닌지 세상의 모든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가 않아서 이제는 스스로 만든 새장 안에 자기를 가두기로 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삶에서 희망을 찾을 수가 없을 때는 조용히 스스로 만든 새장 안으로 들어가 그동안에 모아둔 모이를 쉬지 않고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는다. 하지만 그 작은 몸이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그대로 나자빠져서 깊은 자기혐오에 빠지고 왜 나는 다른 새들처럼 떼를 지어 함께 날아다닐 수 없는 건지 왜 날고 싶은 욕구조차 없는 건지 괴로워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왜 이렇게 불행하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기분에 자주 사로 잡히는 건지 이 작은 새는 뇌 사진이라도 찍어 속 시원하게 알고 싶다. 어릴 때부터 참기를 강요받아서 충동통제력은 제법 있지만, 자율적으로 선택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은 통제력을 잃은 지 오래고, 한번 폭발하면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주변 새들도 모두 날아가 버리게 만든다.

세상에 대한 도피로 공부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사실 이것도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지 의심이 들 때마다 다시 새장으로 들어가 눈을 감아 버리고 싶다. 어린 시절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새장이었는데…


스스로를 가둔 새-소냐민정



오늘도

보이지 않는

무거운 돌덩어리를

다리에 묶고 걸어가네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자리에서 깨었다


누구에게

내 속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하나님,

정말 질투의

하나님 이시다 이름



결국

나를 끌어내려

절망의 맛을 보게 하시고


돌아

돌아서

결국


자신에게

오라고 하시네


또다시 또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는 날이

또 올 것이다


그러나

절망에 쓰러졌어도


다음날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걸

웃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분에게 당신에게 묻고 싶다

'언제쯤 끝이 날까요'


<절망> GM김수정




절망에서 허우적거린 그때에

당신은 내 옆에 있었습니까

울다가 지쳐 쓰러진 그날에

당신은 나를 지키고 있었습니까


손목에 흉터를 남기는 그때에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알약을 두통이나 삼킨 그날에

당신은 나를 왜 살리셨습니까


너는 피 투성이라도 살아라

살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너는 피 투성이라도 살아라

그렇게라도 삶을 이어나가야 합니까


절망에서 허우적거린 그때에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이 절망이라는 구렁텅이에서

편히 놔주시고 떠날 수 있도록

희망이라는 고문을 그만 거두소서


절망이라는 이 구렁텅이에서

이제 그만 떠나게 하소서

희망이라는 이 고문을

이제 부디 거두소서


절망에 관하여 JAcKY


우리 딸 안녕.

네가 이 글을 내 컴퓨터에서 우연히 보게 될지 아닐지 확신 없이 쓰는 글이야. 그래도 읽어보게 되는 그날이 온다면 멋진 사람으로 살고 있을 너를 감사함으로 인사부터 할게. 분명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너에게 미리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놀라지 않았니?

나는 지금 숙제를 하는 중이야. 오늘은 2023년 1월이고, 선생님이 “절망”에 대해 글을 써오라 하셔.

이거 어떡하지? 머리를 굴려보는데 아~~ 창작의 고통이구나. 내가 겪은 절망적 일들 이겨내고 희망의 파이팅 외치자 뭐 이런 이야기는 쓰기 싫더라. 또 욕심은 있어 멋있게 쓰려했는데 멋있게 쓰기는 아직 이르고 그냥 너에게 한마디 해주고픈 날이네. 내가 은근 한 욕심하잖니. 욕심과 욕망의 아줌마~~^^*

내 절망의 경험 보다 너희들의 세상 살면서 겪을 절망이 왜 이리 밟히는지, 아마도 내가 없을 동안 너희가 겪을 절망이라 마음이 쓰인 데니께로. 또 정기적으로 해줄 잔소리를 알람 설정처럼 어딘가 저장하고 싶더라고.

절망(絶望)이라는 건 영어로 desperate이야. 한국 드라마 많이 봐서 이 정도 단어는 알 거 같기도 하다만, 옆에 써놓은 한자를 보면絶 요게 “끊어진다”라는 뜻 이래. 거기에 붙은 맨 앞 글자가 실(yarn)인데, 실낱같은 기대가 끊어지는 걸 절망이라고 하거든. 마지막 엄마의 얼굴을 본 그때쯤 너희가 느꼈을 법한 그런 거야. 내 인생의 절망도 너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제일 큰 절망이었지. 또 네가 10학년 때 연습생 오디션에서 떨어져서 네가 엄청 실망했을 때 엄청 울면서 “절망이야”라고 했잖아. 그때 그런 감정도 절망 비슷한 거고. 근데 말이야, 누가 그러던데 진짜 절망은 너무 슬픈데 눈물도 안 나오면서 오히려 태연해진다네? 그게 더 슬퍼.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슬픔이란 게. 너도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절망 비스름한 비스무리한 일들을 겪을 때가 있었으리라 싶다 있을 거야. 혹시 지금도 팍팍한 인생살이에 힘겨운 나날이진 않은지.. 혹시 그렇다면 무조건 힘내라 라는 말부터 하지 않을게. 딱 일주일만 마음 고생할 거지만 그때마다 어깨 쳐지고 땅만 보고 걷지 말고, 하늘을 쳐다보라고 한 거 잊지 않았지? 왜냐면 땅만 보고 살면 생각 없이 그냥 허겁지겁 살게 돼. 세차게 너를 몰아붙이는 여러 가지 일들이 진짜 한계까지 간 것이 진정 아닐 때가 많지 않디? 한 발자국 더 내디뎌야 한다는 것쯤은 너도 알 거야. 이쯤에서 엄마의 본격적 잔소리 나온다 하겠구나. 그렇지만 도저히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불가 항적인 상태라면, 이렇게 생각해 보렴. 물이랑 기름이 서로 분자 구조가 틀려서 달라서 서로 엉킬 수 섞일 수 없는 것처럼, 네가 사력을 다해 달려와보니, 이제 물과 기름이 맞닿은 경계구역 같은 곳에 다다르도록 노력한 것이라고 말이야. 원래 사람이든 뭐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있는 것(being)이나 이렇게 되려고 가는데 무언가 방해를 받는다면 그때가 절망인 거지. 물과 기름이 서로 접경 지역에서 얼마나 절망이겠니. 자기들의 존재가 위협받으니 서로 밀어내는 중인데. 너도 분명 넘기 힘든 큰 벽이 막고 있는 막다른 골목이라 느낄게 분명해서 해두는 말이야. 방향을 틀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현명하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이야. 쉬운 포기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란 건 똑똑한 내 딸이니 잘 알 거야.

내가 이런 말 한 게 오늘 처음만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당부해 둔다.

우리 딸~ 참 감사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그 자리에 있어줘서.

내가 없는 빈자리 때문에 네가 우울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글 읽고 하늘 한번 본다면 너는 웃게 될 거야.

내가 웃고 있을 테니.

2023년 1월 어느 날 글짓기 숙제를 하던 엄마는 잔소리로 끝냈네.

우리 딸 사랑해.

엄마가


<절망> Pinkpen




모두가 잠든 저녁. 다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에도 하나님의 귀에는 흐느끼는 울음소리들이 들린다. 분명 낮에도 들었던 울음소리다. 단지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맘속 깊이 무너지는 마음을 겨우 떠받쳐 들고 흐느끼고 있었다. 힘겹게 삶에 집중하려고, 아니 오히려 현실에 정신줄이라도 놓아야 슬픔을 잊을 수 있을 것 기에 모든 걸 놓아버린 아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이들의 가냘픈 한숨과 울음소리를 기억한다. 밤이 되고 모두가 조용해진 시간. 그 울음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한다. 무슨 사연으로 이들은 이리도 밤낮없이 눈물을 흘리는지 말이다.




4살이 아직 안 돼 보이는 아들을 꼭 껴안고 혹여나 아기가 깰까 봐 베개 끝자락을 입에 물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 엄마에게 다가갔다.




하나님 : 왜 잠 못 이루고 울고 있니?




어린 엄마 : 오늘 아기가 또 넘어져서 입술이 다 터졌어요.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발작이에요. 발작 횟수가 점점 많아져서 이제는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요. 아기도 정신을 차리고 나면 엄청 무서워하는 눈치예요. 이제는 스스로 아는 것 같아요. 자기가 정신을 잃는다는 걸... 남편이 직장을 그만뒀어요. 저 혼자서 아이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요. 발작이 심해지거나 길어질 때면 응급실로 가야 하는데 저 혼자 감당이 안 돼서 남편이 직장을 그만뒀어요. 우리 아이 괜찮을까요? 우리 가족 괜찮을까요? 아침이 되면 평범한 다른 엄마들처럼 굿모닝을 외치며 아이와 마주하며 웃어보지만 이런 나의 웃음 뒤에 감춰진 두려움과 슬픔과 절망이 아이에게 전해질까 봐 두려워요.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게 될까 봐 너무 두려워요.




하나님 : ...







한창 희망과 열정으로 삶을 가득 채워야 할 30대 젊은 청춘이 잠 못 이루고 알코올의 힘을 빌어 억지로 눈을 감으며 참을 청하고 있다. 비몽사몽 자신이 잠이 들었는지 깨어있는지, 울고 있는 건지 웃고 있는 건지 초자 의식하지 못한 채 이대로 내일아침 눈이 떠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나님 : 내가 너에게 준 이 삶을 포기하려는 이유가 뭔지 이야기해 주겠니?




청춘 : 저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제게 남은 거라고는 빚만 가득 지고 있는 팔리지도 않는 작은 카페와 스트레스로 인해 여기저기 이미 망가져 버린 이 몸뚱이. 그리고 내가 부양해야 할 부모님만 계실 뿐입니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건강하셨을 때는 제 가게일도 봐주시고, 힘들지, 애쓴다, 널 위해 항상 기도한다라고 말씀하시며 '힘들지, 애쓴다, 널 위해 항상 기도한다' 하는 위로의 말씀과 함께 제 마음도 살펴봐 주셨는데... 이제는 두 분 다 치매가 오셨는지 도통 대화가 통하지도 않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급기야 오늘은 아무래도 우리 집이, 제 가게가 차압에 들어갈 것 같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갑자기 두 분이 드라마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며 박장대소를 터뜨리시더군요...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는 처음이라면서 박수까지 치시면서 말이죠... 그분들의 세상에는 제가 없었습니다. 의지할 곳도, 부탁할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젠 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 : ...







아무도 깨어있지 않는 새벽시간. 침대밑바닥에 무릎 꿇고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바닥에 대고 웅크리고 있는 중년 여인이 있다. 기도를 하는 듯한데 기도초자 나오지 않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신음소리만 내고 있다.




하나님 : 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구나. 말해보렴. 괜찮아. 말해보렴.




중년여인 : 하나님... 제가 삶을 잘못 살았을까요? 아니면 부모님께서 아니, 조부모님께서, 아니 제 조상님께서 천벌을 받을만한 몹쓸 짓을 하셔서 우리가 이렇게 대대로 벌을 받는 건가요? 정말 너무 가난합니다. 이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저와 저희 남편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밤낮으로 50 평생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점점 가난해져야 합니까? 돈 없고 늙으신 양가부모님, 빚에 허덕이는 동생들 가족, 다시 시작할 희망이 있을 때마다 큰 사건 사고들이 터져 저희는 다시 은행빚으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제 아이들에게는 이런 절망을 대물림하지 않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했건만 그 기도마저 외면하셨더군요. 의사를 꿈꾸던 딸은 고등학교 졸업 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비행기 조정사를 꿈꿨던 아들은 군대를 자원해 남의 나라, 남의 땅에서 거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래 없는 우리 삶에 열심히 일한들 무슨 소용이냐며 작년부터 남편은 복권에 올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기도하는 제모습이 가증스럽고 꼴 보기 싫다며 기도할 시간이 있다면, 이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이나 생각해 보라고 소리를 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몰래 기도를 합니다. 아니 제가 이것밖에 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엎드려 있습니다.




하나님 : ...






<Story One : 절망 > 패미로얄


인생의 고비들을

절망이라 이름 붙이고


구구절절 곱씹고 또 곱씹고…


그러다 마주친 그네들의 사연들


절망보다 더한 이름도 마땅할

아픔, 아픔…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어지는 거라는데


도무지 넘어서게 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고통 앞에


나의 절망 목록이 부끄러운 이 아침



<나의 절망 목록> 빵굽는엄마



종희야,

오랜만에 불러보네. 네 이름을 가만히 부르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 참 많이도 힘들었던 그 시간들의 슬픔들이 심장에 켜켜이 눈물로 고여 있나 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었잖아. 헤어 나올 방법이라곤 없는 것 같은 절망 속에서 더 이상은 살아갈 힘도 남아있지 않았었지. 죽을힘을 다해 희망을 붙들고 살아왔던 오랜 시간만큼 더 이상은 희망을 갖는다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이 들고, 그 모든 노력들이 헛되고 어리석게만 느껴졌지.


살아갈 일이 무섭고 막막하더라. 죽고 싶은데 아픈 네 아이들을 두고 죽을 수도 없는 내 상황이 참 잔인하더라.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 땡큐라고 할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지. 순간순간 심장이 멈추는 느낌도 들고,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다 덜컥 겁이 났어.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 수도 있고, 큰 일 나겠다 싶더라. 거울에 비친 근심과 시름이 가득한, 기미가 잔뜩 낀 어두운 얼굴의 내가 어느 날 문득 낯설었어.


삶에 대해 참 많이 열정적이었던, 빛나던 나를 다시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지. 그 결심을 하고서 넌 잔뜩 한 너는 살이 쪄서 무겁던 몸을 건강하고 가볍게 만들어 냈고, 시커멌던 얼굴색도 다시 환하게 돌려놓았지. 더 이상은 피해자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멋진 삶을 살기로 했지. 죽은 줄 알았던 내 마음이,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얼마나 신이 나고 행복하던지.


이젠 알잖아. 그렇게 애써서 살아내고 견뎌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애씀들이 나에게 너에게 힘으로 남았다는 걸. 어떤 힘이 되어 네 속에 쌓여있어. 눌려있던 그 힘들이 종희 네가 스프링처럼 도약할 수 있게 해 줄 거야.


흐린 날엔 그림자도 희미하지만 해가 쨍한 날은 그림자도 선명하다는 걸 아는 현명한 나이가 되었다. 되었구나. 밝음 만큼 어두움도 짙다는 거, 그 어두움까지 다 안을 수 있어야 진정한 밝음도 누릴 수 있다는 것. 네 안의 어두움, 다른 이의 어두움을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기에 밝음 또한 찾아 줄 수 있는 인생길 안내자, 코치가 될 너를 믿어.


절망에서 당당히 걸어 나온 종희야

잘했어

넌 앞으로도 더 잘 해낼 거야.

사랑한다. 고마워.


<절망을 딛고 일어선 종희에게> 루비쥬


초승달 뜬 저녁,

을씨년스러운 까마귀울음소리

까~악 까~~~악


전방에 암초더미 경고에도

콧대 높은 경력 40년 차 선장 들은 척도 않네.


부우웅...

쾅!


옴짝달싹 못하게 둥글게 둥글게 휘휘 감은 여덟 개의 발.

촘촘히 붙은 빨판은 더욱 힘을 주어 조여 온다.

악! 소리도 치기 전

문어는 징그러운 몸을 오므렸다 늘렸다 하며

중력이 이끄는 방향으로

슈우~ 슈욱~ 점점 깊이 점점 낮게

어둠을 향해 심해로 헤엄쳐내려갔다.


희미하게나마 굴절되어 들어오던 달빛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살려달란 비명소리는 물과 함께 삼켜질 뿐.


크레셴도... 크레셴도....


아.. 제발...

아직은 안됩니다.

아이들을 위해 조금만 더 고생하자며 고생만 하는 남편..

퇴근길에 우유 사 오라는 첫째 딸내미,

엄마 없인 못 잔다는 둘째 딸내미,

기저귀도 떼지 못한 막내 아들내미,


살아야 한다...

나가야 한다....

나는 집으로 가야 한다...


몸부림칠수록 더욱 조여 오는 그 녀석의 빨판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짠 발차기는

먹물주머니만 터뜨릴 뿐,

짙어가는 어둠에 흑이 진해질수록 백은 사라지고


흑이 나인지

내가 흑인지


숨을 쉴 수가 없다.

바둥바둥 움직일수록 더욱 세게 잡아채는 녀석의 발이


디크레센도... 디크레센도...


반항할 기운도 의미도 흐려지게 한다.


의미 없다.. 의미 없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

온몸을 조여오던 여덟 개의 발도

한번 붙으면 쉬이 놓아줄 거 같지 않던 빨판도

먹물을 뿜어대던 오목한 입도 사라졌다.


아무것도 나를 붙잡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칠흑 같은 어둠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두려움, 긴장, 무기력, 허무함...

봄날 햇살에 내리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연약한 눈송이처럼

나의 자존감은 그렇게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둠은 계속 짙은 골짜기로 나를 데리고 갔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세라지니



햇살이 따스하고 선선한 6월 18일 토요일 오후 4시.

은희는 오랜만에 주어진 집에 혼자 있게 된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데크에 앉아 루이보스 티를 마시며 늦은 오후의 여유를 오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서른 중반에 둘째를 낳아 모유 수유를 하며 살도 많이 빠지고 피곤에 지쳐있던 은영은 식구들 모두 외출하고 아가도 잠이든 시간이 주는 고요함으로 조금이나마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서른 중반에 낳은 둘째에게 모유 수유를 하느라 살이 많이 빠졌다. 그것 때문인지 피로감이 배가 되는 듯했다. 식구들은 모두 외출하고 아가도 잠이 든 시간, 고요함 속에서 그나마 그간의 피로가 살짝 풀리는 느낌이었다.

한 30분 지났을까 전화가 울렸다. Unknown Caller. 패밀리 닥터였다. ‘주말에 패밀리닥터가 웬일로 전화를 하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캐나다에선 의료가 무료 혜택이지만 큰일이 아니면 패밀리닥터가 미리 먼저 전화를 준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고, 주지 않는다. 게다가 주말에 연락할 일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주말이다.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에 찬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고은희 씨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 저예요. 주말에 무슨 일이신가요?”

“다름이 아니고 지금 당장 처방전을 보낼 테니 약을 픽업해서 오늘 저녁부터 먹었으면 좋겠어요. 다니는 약국이 어디지요?”

“네? 무슨 약인데요? 왜요? 오늘부터요?”

“어제 워킹 클리닉 가셔서 받았던 피검사 결과를 받았어요. 수치가 굉장히 높아서 당장 약을 먹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어요. 지금 모유수유 중이시면 당장 끊어야 합니다.”

"대체 무슨 병인데 그러는 거예요? 제가 암이라도 걸렸나요? 둘째 낳고 모유수유하면서 좀 어지러운 것 말고는 아무 증세가 없는데요..."

"정밀 검사를 받기까지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일단 오늘 저녁에 약을 먹으세요. 절대 스탑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피검사와 정밀검사를 의뢰해 놓을 테니 종합병원에서 연락이 갈 거기예요. 그리고 000-000-0000이건 내 핸드폰 번호예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요. 내가 지금 휴가 중이라 돌아가는 대로 만나기로 해요."

은희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서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머릿속이 하얘졌고,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돌아온 후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약국에 가서 약을 픽업해 왔다. 약을 검색해 보니 백혈구 수치가 올라갔을 때 먹는 약이었다. '백혈구 수치가 올라갔다니, 백혈병이라는 건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약을 먹으라니 먹으면 되지만 우리 둘째는 무슨 날벼락인가. 유난히 모유를 너무도 좋아하는 아가인데, 오늘 밤부터 갑자기 모유를 먹지 못한다니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백혈병이면, 시한부 인생이면, 우리 둘째는 어떡하지? 큰 아이는 시간을 많이 보내주어서,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는데 우리 둘째에겐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구나. 외로우면 어떡하나. 행여 어른들이 이 아이에게 내 병의 탓을 돌리는 얘기를 들으면 어떡하나.' 별의별 생각이 1초 만에도 몇 년의 생각이 지나갔다. 약을 먹기 전에 마지막으로 둘째에게 젖을 먹이고 일주일 동안 생이별을 했다. 정확한 병명을 확진받기 까지 한 달의 시간 동안 계속되는 피검사와 골수 검사를 받았다. 은희의 집은 초상집이 되었다. 시부모님은 그녀 앞에서 울지 않으려 매일 마당에 나가서 애꿎은 민들레를 쪼그리고 앉아 뽑으시며 울다 들어오셨다. 한 달 뒤 병원에서는 만성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급성 시한부 인생이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이와 가족 옆에 더 있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더 근사한 이유는 필요 없었다. 이젠 덤으로 사는 것, 하루하루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것뿐이었다.


<절망과의 직면은 심플하다> 제이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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