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감정 글쓰기 2주 차

by 황서영


'감정 글쓰기' 코칭 수업 수강생들의 글을 모아 편집한 글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의/코칭/편집

황서영 no.more.thinking.and@gmail.com



민정아,

세령이가 코비드 때문에 대학 입학을 하고도 바로 집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너는 두 가지의 마음이었지. 그토록 기다려왔던 그리고 가장 신나게 보내야 할 신입생의 시절을 집에서 컴퓨터로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에 함께 안타까워하면서도, 세령이가 떠나고 나면 집에 혼자 남을 생각에 속으로는 사실 남몰래 좋아하기도 했지. 하지만 세령이가 학교로 돌아가고, 너에게 엄청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 너는 상상도 못 했지. 하지만 세령이가 학교로 돌아간 것이 너에게 한편으로는 선물일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지. 언제나 변화는 두려움이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오는 선물인 것 같아. 아이들이 어릴 적엔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항상 시간에 쫓겼는데, 이제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너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니.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게 가성비가 가장 큰 거라는 것을 드디어 증명할 때가 온 거야.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가 본 적 없는 길을 가보라고 아이들에게는 늘 부추기면서도 정작 너 자신은 어떤 길을,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시도해 보았니?


민정아,

너는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늘 이렇게 말하곤 했지.

“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너무 커서 어떻게 첫 발을 떼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실 그건 너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고,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미리 겁먹고 방어벽을 치는 변명일 뿐이야. 그냥 한 번에 한 가지씩, 종이 위에 적어 놓고 실천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지워가면 되는 거야.

돌아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던 시절에 엄마가 되어 좌충우돌 실수 연발 투성이었지. 공중으로 공 서너 개를 동시에 돌려가며 어느 한 개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무지 애를 쓰며 살았지. 여러 개의 공을 한 번에 던져내고 또 받아내며, 그렇게 곡예 같은 위태로운 삶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며 살았었네. 커리어 우먼으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늘 부족한 잠과 사투를 벌이며 삼십 대 초반에는 대학원 공부까지 했다는 게 꿈만 같아 인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특별히 학문에 뜻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새로운 문이 열렸고, 새로운 경험으로 너를 이끌어 주었지.


캐나다에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정말 이게 끝인가 앞이 캄캄하고 답이 없는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것 밖에 없던 적도 있었어. 하지만 난 좀 달라졌어. 이제는 문제가 닥친다면 그때처럼 깊은 절망에 빠져 나약하게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그때는 답이 없을 거라고 지레 겁먹고 혼자 생각과 고민만 하며 시간을 지체했었지. 이제는 나의 생각이 나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멋진 표어를 붙잡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 감정에 충실하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묻고, 남의 시선보다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려고 해.

감사하게도 부모님께 성실함을 물려받아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실하게 내 일을 해왔지만 이제는 성실함에 담대함과 도전정신, 실천력을 추가하려고 해. 이제는 그리고 얌전함과 겸손함 같은 것은 집어치우자. 겸손하게 누가 나를 알아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나의 목소리를 내고 기회라고 생각되면 손 번쩍 들어서 내가 한번 해보겠다고,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게 야무지게 거머쥐자.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새로운 문을 열려면 새로운 열쇠를 준비해야 해.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영어로 발표를 하고 싶다고 했지. 무대 위에서 청중들과 눈을 맞추며, 그들이 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는 모습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니. 너의 두 딸이 세계를 누비며 그들의 꿈을 펼쳐 나가길 기대하는 만큼 너에게도 인생의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딸들을 통해 대리만족 할 생각은 버리고, 그 자리에 네 꿈으로 채우고 행동하고 실천해. 너는 언젠가 사람들의 문제와 고민을 들어주며 함께 생각하고,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돕는데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지. 너는 직원들이 사람들이 그들이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보이고 신나게 일할 때, 그들의 모습에서 너도 보람을 느끼고 네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열정을 느낀다고 했지.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낸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제 알았으니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만 남았네, 그렇지?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좋은 질문으로 타인의 성장을 돕고 너도 함께 성장하는 그런 너의 모습 기대할게.


내가 나에게 보내는 희망 편지- 소냐민정



나의 오랜 친구 캐롤라인,

내가 그 동네를 떠난 지 벌써 11년이 넘었지? 어떻게 지내는지…? 가끔 네 생각이 떠오를 때면, 아직도 많이 아픈지 새로운 치료 방법이 너를 위해 개발되었는지 궁금해. 네에게 몇 번 보낸 편지에 답이 없어서 네가 더 아파진 아픈 건 아닌지 염려가 되곤 한단다.


내가 캐나다로 옮겨간 후, 아무것도 몰라 두렵고 어리둥절할 때, 네가 옆집에 사는 친구였다는 건 행운이었어. 몸에 갑자기 이상 증상이 생겨 너무나 놀랍고 무서운데 아직 영주권이 없어 의료보험이 되지 않던 그 시절, 네가 내게 주었던 그 힘 있는 위로는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지. 그리고 그 꽃다발… 네가 아침에 벨을 누르고 전해주던 그 주황색 꽃다발을 잊을 수가 없어.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어.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최근에 깨닫고는 시간도 이젠 많이 나겠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한 번 무조건 해보기로 했어. 참! 내 딸과 아들들은 모두 장성해서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일자리를 얻었고 딸은 올해 결혼을 한단다. 그래서 나에게는 좀 더 시간이 생겼지. 이제는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을 돌보는 일이 대신 주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기르던 그 시절보다는 내 시간이 난단다.


그래서 글 쓰는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이번 주 숙제가 절망과 희망에 대해 쓰는 거야. ‘절망’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왜 네가 떠올랐는지… 네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그 이유는 아니야. 나에게 위로를 주는 너였지만 너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분노로 힘들어했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 너의 병은 약을 통해 증상만 조금 완화될 뿐, 완치의 길이 아직 보이지 않았었는데 몸이 굳어져가고 통증이 온다는 사실도 너에게 고통을 주었겠지만 네가 힘들어하던 것은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과 첫 남편의 배신에서 오는 분노 때문이었던 것 같아. 어린 시절에 부모님들이 너를 아들과 차별하고 너에게만 집안일을 거들게 했던 일, 부모님의 이혼, 그래서 네가 가출을 하여 노숙자들 수용 시설에서 지내다가 첫 아이를 임신했던 어려움….. 너는 화가 난 목소리로 내게 분을 쏟아 놓고 나서는 늘 미안해했어. 하지만 난 괜찮았어 캐롤라인, 정말 괜찮았어. 너의 고통을 들어주는 일이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단다. 너를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너는 그래도 학업을 중단하지는 않았다고 했지. 너는 공부를 계속했고 결국엔 간호학을 공부해서 간호사가 되었어. 그게 다른 사람과 네가 다른 점이야. 너는 용기 있고 성실한 사람이거든. 내가 너를 얼마나 존경했는지 너는 아니?

하지만 너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지. 같은 병원에 근무하던 동료와 네 남편이 너를 배신했잖아. 너와 그의 사이엔 아이까지 생겨서 이젠 두 아이를 기르고 있던 상황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황이었는데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그 이상의 절망이 또 있을까? 자기 아이가 죽은 것이 가장 큰 절망이라면 배우자의 배신으로 인한 절망은 두 번째의 크기라고 하던데.... 너는 그래도 그 절망적 상황을 용감하게 이겨내고 너의 두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자 열심히 일했지. 그것 또한 네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생각해.


너에게 지금의 남편 댄이 나타난 건 하늘의 도우심이었다고 생각해. 그는 너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나 하지. 이따금 퇴근할 때 너를 위해 꽃을 사들고 오는 것을 목격하면서 나는 그날이 네 생일이나 무슨 기념일인 줄 알았단다. 세상에 그냥 평소에 단지 아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꽃을 사 오는 남자…? 또 있을까?

너는 내게 말했어, 댄을 만나 행복하다고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고.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인가?”라고 내게 묻는 너의 절망에 짓눌린 듯한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 그리고 너는 또 내게 미안하다고 했어.


캐롤라인,

그런 고통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내가 무슨 말을 너에게 한들 그게 진정성 있게 느껴질까? 하지만 네가 “나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한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런 말이 힘차게 떠올랐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너에게 말해버렸지. “희망은 언제나 있어.” 그 순간 네 눈에 번쩍이던 희망을 나는 보았단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않은 말이 이따금 나를 통해 나오는 경험을 하곤 한단다. 그건 마음속에서 강한 울림을 가지고 떠오르는 확신과도 같은 건데 나도 모르게 한 선언과도 같은 말들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가끔 보곤 한단다. 그런 말이 내 입을 통해 나오고 난 후에 나는 상대방을 위해 계속 기도를 하곤 해. 미리 선언하는 것의 힘일까? 아니면 선언 후 계속 기도한 덕분일까?


캐롤라인,

네 병의 치유가 나의 간절한 소망이지만 나는 먼저 네 마음속의 분노와 절망이 사라지기를 기도해. 뜨겁게 타오르던 미움과 분노가 타고 남은 재처럼 훨훨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네 마음속 편안해진 빈 공간에 햇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왔으면 좋겠어. 네가 그토록 원하는 그 따뜻하고 밝은 햇살 말이야. 병 때문에 햇빛을 많이 쪼이면 안 되기에 마음 놓고 즐길 수 없었기에 너의 정원은 숲처럼 나무가 가득했지. 댄이 사랑으로 가득 심어준 그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흘러드는 햇살들처럼 나의 기도하는 마음이 너에게까지 닿아 네 마음을 희망으로 채워 주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를 힘들게 하는 그 병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을 붙들고 바람을 타고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어.


<희망은 언제나 있어> 빵 굽는 엄마



식은땀으로

온몸을 다 적시는

절망에서도


나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걸

다시

웃으며 걸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희망이

희망이


나에게

너에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절망보다


나를

더 슬프게 하여

나는 또 쓰러진다.


<희망> GM김수정



사랑하는 세라에게,

먼저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너의 결혼식은 꼭 참석하고 싶었는데 이 망할 놈의 코비드 때문에 한국 가는 길이 막혀 멀리서 안타까워만 했어. 세라가 우리 모든 친구들의 딸이란 건 잘 알지? ㅎㅎ

귀가 따갑게 들었을 너의 엄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구나. 지금 네 나이에 너의 엄마는 혼자가 되어 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기쁨으로 너를 키웠어. 주위 모든 사람들이 늘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이의 몫까지 살아내야 하는 법”이라 말하며 너의 엄마는 우직스럽게 믿음 안에서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왔단다. 자신의 인생무게도 만만치 않은데 늘 사랑의 씨앗을 뿌리며 비관적인 상황을 기도로 이겨낼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멋진 사람이지. 너도 기억할 거야. 유진이 이야기 말이야. 난소암으로 시작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각종 암으로 지지리도 고생을 했잖아. 그런 유진이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음식을 해다 먹이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늘 옆에서 힘을 주었던 거 말이야. 담당의사도 놀라면서 이렇게 오래 암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환자는 처음이라고 했다잖아. 유진이 때문에 자기 이름값이 올라간다고 해서 얼마나 감사하며 기뻐했는지 그 당시 기억이 새삼스럽구나. 유진이 덕분에 자기 어깨가 덩달아 올라간다며 기뻐했던 그날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구나.


과부가 과부 사정을 아는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눈물을 많이 흘려 보았기에 힘든 이의 형편에 맘이 쓰였던 것일까? 아무튼 너의 엄마는 오지랖이 넓어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정을 퍼 주는 사람이지. 그런 엄마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거라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파심에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다. 아무리 오래 연애를 해서 오랜 연애를 통해 상대를 아주 유리문 안이 들여다보이듯 상대방을 잘 알 것 같아도 잘 아는 것 같아도 결혼은 또 다른 세계더라. 그러니 함께 걷기를 지혜롭게 해야 한단다. 그러니 지혜롭게 함께 걷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일단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가야겠지? 웨딩드레스를 입고 금빛 나래를 펼친 그 순간은 영원한 게 아니라는 것 알지? 이제부터 시작인 거야.

‘집은 일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더구나. 너의 인생을 담을 예쁜 집이 되도록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풍성한 삶을 위해 책을 많이 읽고, 읽은 것을 잘 소화해서 너만의 지도를 그려라. 그리고 그 지도 위를 종횡무진 다니는 거지. 10가지 색보다 32가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게 좀 더 다양한 색깔을 나타낼 수 있어 좋을 것 같지 않니? 이렇게 너의 인생 화폭을 채울 재료들을 많이 섭렵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네가 세운 꿈이 언제 어디서나 반짝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성경에도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고 했지. 내가 좋아하는 시 가운데 이런 글이 있어. '가슴에 별을 간직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마음속에 꿈과 희망의 씨앗을 가득 품은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말이야.

결혼이란 책은 온통 달콤한 걸로 채워져 있지 않지. 때론 폭풍이 불어대고 천둥 번개가 희 번뜩이는가 싶으면 또 어느 때는 잔잔한 물가로 편안을 선물하기도 하는 다양한 코스란다. 어쩌면 종종 미칠 것 같고 울고 싶으며 다 내 팽개치고 싶기도 할 거야. 그래서 전부 내팽겨 치고는 그저 하루종일 울고만 싶은 날이 올 거야. (결혼 42주년을 맞이하는 나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그렇더구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란다 ) 하지만 그럴 땐 ‘괜. 찬호. 다.’라고 자신에게 말해주면서 등을 토닥거려 주렴. 길이 끝난 지점이 끝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또 새로운 길의 시작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두렴. 눈물을 흘린 만큼 오히려 인생의 깊이를 알아 가는 것이니 말이다.


남들은 남들이 4월이 되면 꽃 비를 맞으러 남산이나 여의도, 또 달맞이 길로 우르르 달려가 봄의 전령과 즐거운 입맞춤을 할 때 너의 엄마는 부지런히 희망의 꽃씨를 배달했단다.


끝으로 늘 나를 움직이는 말씀 한 구절을 선물하려고 해.

신약성경 빌립보서 3장 14절에 나오는 “푯대를 향하여”인데, 너 역시 믿음 가운데 부지런히 한 길을 가기 바란다. 목표를 가지고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며 열매를 위해 애쓰고 달리렴. 그렇다고 해도 소소한 일상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여유는 꼭 가지기 바란다.

창문 틈새로 겨울비 냄새가 스며드는 이 밤에 사랑하는 세라를 생각하며 이 편지를 보낸다.

다시 한번 너의 결혼을 축하하고, 새로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연 너를 두 팔 벌려 축복한다.

올여름, 아마 7월 중순에 한국 갈 계획으로 있으니 아마 7월쯤 되려나. 그때 우리 얼굴 보며 마음껏 이야기보따리를 풀자꾸나.

사랑한다 세라야! 그럼 이만 총총.


<가슴에 별을 품고 희망을 노래하라> 최 성은 Sue



1년에 두어 번 정도 내 마음이 최고로 유해지는 날이 있다.

달이 유난히도 크게 하늘을 채우는 날, 달빛이 주는 풍성함과 더불어 오래전 아이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이다. 그때 그랬지 하며 온화한 웃음을 짓다가 사교육에 열을 올렸던 나의 극성도 소환한다.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받아쓰기를 반강제로 시킨 적이 있다. 커서 한국 드라마와 유튜브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글을 깨칠 거라고 상상을 못 했던 시절이었다.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수학에 더 열을 올렸을지도 모르겠다.

“ㅎ” 자를 쓰는 단원이었다. “ 희망”의 획을 잘못 적어 “허망”을 써 놓은 아이에게 희망과 허망의 차이를 설명해 준 적이 있다. 획 하나가 위로 올라가고 내려온 거뿐인데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거라며 한글의 위대함과 과학적인 조합을 한국인의 자랑, 세종대왕님을 모셔다 두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아마 세종대왕님이 보셨다면 박수라도 치셨으리라). 아이가 희망과 허망에 대한 뜻을 대충 알아들을 때 어느 정도 알아듣는 듯할 때쯤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장면을 빗대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고는 우리 둘은 삼천포로 빠졌다. 세상 큰 진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아이는 환호성을 지었다. 왜 보름달이 그리 포동포동 한지를 알아내었다고 했다. 하늘의 보름달이 질 때 “영차영차” 하며 들어갈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비는 소원으로 가득 찬 희망이 달을 더 동그랗게 만들고 그게 가득 차서 너무 무거울 테니까 그럴 거 같단다. 참 아이다운 동화 같은 상상력인데, 그 당시 나는 지구과학의 원리로 그게 아님을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산타클로스와 이빨 요정의 실체가 엄마와 아빠였다는 걸 알 나이쯤에는 보름달의 원리도 자연스레 알아가겠지 했다. 정확하게 왜 보름달이 그리 동그란지 나의 상식이 너무 얄팍했다. 과학 전공한 사람 맞니라 하며 자책도 잠시, '나름 과학도였는데' 하는 자책을 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의 소원이 하나씩 이뤄져서 달님도 또 초승달이 되었다가 반달이 되었다가 가벼워졌겠다며 거들었다. 인간이 바라는 바람들이 달이 소원을 들어주어 본인의 짐을 내어놓는 것처럼 모두 이뤄진다면, 달의 모습은 점 하나 정도로 줄어드는 걸까라며 둘이 킥킥대었다. 한꺼번에 모두 이뤄지게 해 줄 수 없어 달이 매일 자리를 지키나 보다 하며 우리 둘만의 결론을 낸 일화가 생각나는 보름달 뜬 밤에는 마음이 참 보들 보들하게 아기의 피부 결이 된다.

이 달을 보고 비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과, 소원을 잘 비춰주기를, 가능하다면 다 이뤄 주시보 사하고 말이다.

새벽의 이슬을 받은 우물에서 길은 정화수 한 그릇에 온 맘을 다해 두 손을 모으고 보름달과 마주했던 오롯한 마음은 동화책의 한 장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벽 이슬이 내려앉은 우물에서 길은 정화수 한 그릇에 온 마음을 다해 두 손을 모은다. 보름달은 그저 동화책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람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니까.

모두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으니까.


<보름달 단상> Pinkpen




안쓰러운 마음으로 어린 엄마를 바라보던 하나님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하나님 : 가장 선하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아름다운 아이를 너에게 보냈는데, 이 아이로 인해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거니?


어린 엄마 : 아이를 데리고 클래식 음악회를 다녀왔었어요. 물론 최연소 관객이었죠. 혹여나 연주에 방해될까 봐 맨 끝줄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공연이 진행되는 40분 동안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일어서서 지휘자처럼 양손을 휘저으며 지휘를 하더라고요. 그냥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었어요. 제법 자기의 감정을 담아 음악 속에 푹 빠져있는 아이를 보았어요. 그 순간 우리 아이가 멋진 뮤지션이 되어있는 꿈을 꾸었죠.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했어요. 꿈이 이루어질까요?


하나님 : 그 아이는 아주 멋진 뮤지션이 될 거란다. 그 험한 과정을 잘 견딜 만큼 아이는 아주 강한 정신력과 그에 못지않은 착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거야.


어린 엄마 : 아이가 발작을 일으켜서 크게 다친 날 밤, 아이를 재우는데 저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엄마, 아파서 미안해요..." 우리 아기는 벌써 상대방의 아픈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아이인걸요. 우리 아이는 벌써 그런 사람이에요.


어린 엄마는 편안한 얼굴로 아이와 함께 깊이 잠이 든다.


절망밖에 남아있지 않아 술로 밤을 버티고 있는 청춘에게 하나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나님 : 아들아... 힘들었구나... 의지할 곳이 없어 막막했겠구나. 네 어려움을 몰라주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겠구나. 또 부모님을 원망하는 너 자신이 참 미웠겠구나.


청춘 : 친구들은 저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하더군요! 제길! 희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처음부터 제겐 그런 것 따윈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뻔한 결말이었는데 저만은 다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하나님 : 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구나. 그도 너처럼 실패를 했었지. 밤새 울더구나. 소리도 지르더구나. 그런데 아침이면 꿋꿋하게 같은 시간에 일어나 눈물을 닦고 주어진 하루를 견디는 모습을 보았다. 말 그대로 하루를 버티고 견디며 그 시간을 이겨내더구나.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스스로에게 '내가 절망의 시간을 잘 이겨냈구나...'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네 아버지는 그 시간을 견디며 내가 보낸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들, 그를 위로하는 작은 선물들에 눈을 맞추더구나.


청춘 : 제게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하나님 : 네가 생각하는 희망이 무엇이니? 너를 파산에서 구해줄 돈다발이 너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난 오래전 그때와 똑같이 너에게도 같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냈고, 혹여나 네가 너무 지쳐 나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을까 봐 네 일상 곳곳에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작은 선물들도 만들어 놓았었다. 아들아. 난 너에게 희망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바로 절망 가운데서만 비로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피어날 수 있는 꽃이라는 것을 네 스스로 느꼈으면 했단다.


청춘 :... 그럼 그 메시지 다시 보내주시겠어요?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습니다. 저도 아버지처럼 견뎌서 이겨내겠습니다.


하나님 : 보물찾기 하듯 하루를 살아보렴. 난 늘 널 위한 하루를 준비한단다.


어린아이 같이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청춘은 이네 잠이 든다. 오랜만에 꿀잠이다.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중년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고 따뜻한 목소리로 여인을 위로한다.


하나님 : 수고가 많았구나... 고생이 많았구나... 난 네가 참 자랑스럽다. 너의 이 작은 손으로, 이 연약한 몸으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왔구나. 네 덕분에 가족들이 오늘도 편안하게 잠에 들었으니 넌 참 큰일을 했구나.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에 여인의 눈이 둥그랗게 커진다. 그리고 그 커진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내가 지내온 그 시간이 마냥 헛된 시간이 아니었기를 바랐기에 나를 인정해 준 이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다. 마음에 쌓여있던 원망, 미움, 고통, 후회, 절망들이 눈물의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 가기 시작했다.


중년 여인 : 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어요. 남편이 없었다면 전 절망 속에 제 삶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남편도 이런 말을 듣는다면 저처럼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힘이 날까요? 지금까지 남편에게 이런 감사의 말, 위로의 말을 한 번도 해주지 못했네요. 나의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 그래서 나를 가장 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우린 서로 그걸 몰랐네요.


하나님 : 너희의 마음의 그릇은 다름 사람들의 것과 다르다는 거 알고 있니? 보다 단단하고, 크고, 아주 견고하게 다듬어졌어.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사람이야. 너희 둘이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대가 되는구나.


중년여인 : 이제 나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어요. 물론 여전히 경제적 압박에 죽을 만큼 힘이 들겠죠. 물론 이 지긋지긋한 가난이 결심 하나로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남편이 옆에 있으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둘이 작은 숲 속 통나무집에 살 수 있는 그날이 올까요? 결혼 전 우리의 소박한 꿈이었던 숲 속 작은 통나무집 말이에요... 너무 늦은 건 아니겠죠? 희망이 없는 건 아니겠죠?




하나님: 내가 너희의 그 작은 보금자리에 매일아침 사랑을 가득 담아 따뜻한 햇살과 지저귀는 작은 새들을 보내주마.




여인의 두 볼이 발그레해진다. 그리고 거칠어진 남편의 손을 오랜만에 꼭 잡아본다



절망과 희망을 분리해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희망은 희망 혼자서 있을 때 절대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반짝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절망 때문이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아름답게 빛난다. 밝은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듯 절망 없이는 희망도 반짝일 수 없다. 절망에 빠진 나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희망은 누군가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를 포함한 절망 속에 허우적 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감히 짐작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절망이지만 세상에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무거운 절망들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시길... 그리고 우리가 지혜롭게 그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Story Two : 희망> 패미로얄


질문 : 한국인으로서 세계적인 라이프 코치가 되셨는데요. 아직 라이프 코치가 조금 생소하신 분들 위해서 조금 설명 부탁드려요.


나 : 라이프 코치는 인생을 보다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코칭해 주는 사람입니다. 해결하고 싶은 문제, 이루고 싶은 목표 등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손 잡고 함께 가며 손 잡아 이끌어 주지요.


질문 : 상담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나: 코칭의 기본철학은 모든 해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믿음이거든요.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과 강점을 최대한 발견해서 스스로를 믿고 그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고 성장을 이끌어 주는 것이 상담과는 조금 다르지요.


질문 : 이종희 코치님은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의 멘토가 되셨는데요. 이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나 : 네. 저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어려움들을 오랜 기간 겪으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때 코칭을 받으면서 저 자신을 믿고 다시 꿈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특히 아이들과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꿈은 내려놓고 자신을 잃어버린 엄마들이 다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생생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 코치가 되겠다는 것이 삶의 소명이 되었습니다.


질문 : 지금처럼 많은 분들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라이프 코치가 되시기까지 어려움도 있으셨을 텐데요.


나 : 물론이죠. 다른 이들을 성장시키려면 제가 먼저 성장해야 하는데 스스로에 대해 의심이 들 때도 있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그에 대한 두려움도 컸어요.


질문 : 그 의심과 두려움들을 극복하신 비결이 있으시면 나눠주세요.


나 : 의심과 두려움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우선 받아들이는 거죠. 그것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좀 짓궂은 오랜 친구가 또 찾아왔구나 하고요. 무심하게 대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차근차근하다 보면 그 의심과 두려움들은 슬며시 사라집니다.


질문 :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면 남겨 주세요.


나 : 자신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랍니다. 내가 뭘 잘했을 때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서툴고 때론 찌질한 지질한 자신도 예뻐하고 사랑해 주세요. 아이가 실수하는걸 미소 지으며 귀엽게 봐주는 것처럼요.


<10년 뒤의 나의 인터뷰> 루비쥬



안녕? 정말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때의 나는 매일 너에게 편지를 쓰곤 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 흉내를 내느라 너에게 편지 쓰는 일을 32년간 잊고 있었어. 그동안 잘 지냈니? 그때를 떠올리며 희망이 항상 곁에 있었던 몇 가지의 그때의 추억 그리고 기억을 너와 시간여행을 통해 편지로 남겨 보려 해.


중학생의 너는 참으로 힘든 대단한 중2병을 앓고 있었어. 누군가에게 어떻게 표출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하루하루 잠들기 전에 편지를 보냈지. 기억나니? 그때 네가 좋아하던 '십 대들의 쪽지'라는 작은 간행물을? 얼마나 네가 좋아했으면 아직도 발행인을 기억하고 있겠니? 김형모. 이 분이었어. 문득 궁금해지네. 아직도 '십 대들의 쪽지' 간행물이 학교마다 배달되고 있을까? 너와 같은 나이, 고민들을 사연으로 고민 사연을 상담해 주던 작지만 희망을 주어 큰 힘이 되었던 기억이 나. 그때 네 또래의 아이들의 고민 사연을 받아 상담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던 그 간행물은 작지만 나에게는 큰 희망이었어.


10대는 역시 친구들과의 관계문제로 많이 힘들지. 물상 선생님이었을 거야, "재키야, 세명의 친구들에게 똑같이 너의 고민을 모두 공유할 필요는 없어. A에게 네가 즐겁고 좋은 일들만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고, B에게는 힘든 너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C에게서는 반대로 듣는 입장이라면 그대로도 좋고 충분한 거야. 이리도 좋은 친구들이 늘 함께 옆에 있으니 재키는 좋겠다." 그때는 선생님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도 선생님의 진심 어린 조언이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조언이 내게 희망으로 느껴져서 3명의 친구들과 졸업식 후 롯데월드까지 놀러 갔었어. 그때 마지막으로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부모님 집 앨범에 고이 간직하고 있단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 14살의 네가 힘들고 마음 아파했던 모든 일들이, 그저 어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니 공부나 하라던 말들이 여전히 틀린 답이라고 말할 수 있어. 14살의 네가 힘들어했던 모든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고, 공부나 하라던 그때 어른들의 말에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나는 여전히 소리치고 싶어.

왜냐고?

십 대만이 느끼는 아픔을 바보 같은 어른들! 지들도 모두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약 먹고 나은 것처럼 잊고 사니 그럴 수밖에. 당신들도 십 대 시절이 있지 않았냐고, 분명 우리와 같은 아픔을 통과했을 거면서 마치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난 사람처럼 우리의 십 대를 함부로 대하잖아!


하지만 14살 너에게는 고마운 선생님들이 선생님들도 많았었지. 그분들 덕분에 3년 내내 희망을 보고 느끼며 동안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이런 다짐도 했었잖아?

"저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어야겠어!"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나처럼 힘든 10대를 오래 보내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이 어렴풋한 기억. 내가 그랬던 것처럼 힘든 십 대를 겪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게. 하하하 이쯤 되니 40대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나이 든 나에게 묻고 싶겠지? "그래서 꿈은 이루었어? 빨리 말해줘 봐, 너무 궁금하잖아?" 미안하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있고 이루었다고는 말을 해 줄 수 없어. 그런데 말이야. 1년에 한 명씩은 중2병에 걸린 그 시절 나와 같은 모습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더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넌 정말 상상도 못 할 거야.


희망이라는 아주 나약한 힘없는 빛이 항상 우리 옆에 있는데, 그 빛을 잡기만 하면 내 주변을 환하게 비추어서 더 이상 나약하고 힘없지 않게 되고 강력한 에너지로 변한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고 성공의 기쁨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그때 14살의 네가 꿈꾸던 사람, 그런 사람으로 노력하며 살고 있단다.


희망이라는 건 그저 희미한 빛일 뿐이야. 하지만 누군가 그 빛을 손으로 잡는 순간, 희미했던 빛은 생기를 띄고 주위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해. 그런 걸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14살의 네가 되고 싶어 했던 바로 그런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나는 노력하고 있단다.


어때? 나 잘 살아내고 있는 거지? 여전희 너의 응원을 받고 있는 거지?

2023년 1월 희망을 꿈꾸며

<14살, 나에게 쓰는 편지 > JAcKY



온몸을 통제하며 잘난척하던 뇌도


파업을 선언하고 눈만 꿈뻑꿈뻑.




회오리와 소용돌이가 눈앞에서 무섭게 가까워지고 있다.




어둠 속에 더 짙은 그림자.


본능처럼 피하려 애쓴다.


헤어 쳐나가기엔 너무 크고 힘이 센 고래의 들숨.




슈우~~~ 욱!




오돌토돌 올록볼록한 연분홍 혀가


춤추듯 움직이더니


크고 깊은 동굴이 열린다.




안돼! 두 번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테야.


두 팔 두 손 연분홍 돌기를 꽉 쥐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Let go!!! let go...




그래 나도 할 만큼 했어.


놔 버리자...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깜깜하다..


어지럽고 무섭고 힘겹다..


울어도 울어도 아무도 들리지 않는 듯하다.


심장을 조여 오는 아픔은 무엇으로 도려낼 수 있을까?




울다가 울다가 잠이 든다.


꿈속에서 만난 나비가 나에게 말한다.




You are worthy.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다 괜찮다고...




꿈에서 깨니,


눈부신 햇살이 고래 등줄기를 타고 내리쬔다.


고래가 뿜어낸 물살에 날아올라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를 간질인다.




괜찮다 괜찮다..



<놓아주어라. 그만 보내주어라> 세라지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