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글쓰기 4주 차
'감정 글쓰기' 코칭 수업 수강생들의 글을 모아 편집한 글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의/코칭/편집
황서영 no.more.thinking.and@gmail.com
내가 그분을 만난 날은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로 찬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콧속 코털에 얼음이 생길 만큼 추운 그런 겨울날이었다. 그는 영어 독서모임 팟캐스트의 진행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70번째 생일 기념으로 세 번째 에세이집을 출간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분의 세 번째 에세이집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출간되기 한참 전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워낙 언론의 노출을 꺼리는 분이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 지인의 언니가 그분의 영어 독서모임의 오랜 멤버라 그분의 부탁으로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셨다. 그분의 집은 언덕 위에 햇살이 잘 드는 큰 창이 있는 집이었다. 골든 레트리버와 둘이 살기에는 다소 컸지만 듣던 대로 심플하고 미니멀리즘의 극치였다. 미니멀리즘의 표본 같은 집이었다. 집이 워낙 커서 그런지 실내도 살짝 냉기가 돌았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커피보다는 와인 한잔이 낫겠다고, 추운 언 몸을 데우기에는 레드와인이 제격이라며 와인 잔을 건네주셨다.
대표님이 들고 나온 녹색 올리브, 적색 포도, 크래커, 치즈 플래터는 레드와인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살짝 얼었던 분위기를 금세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그분의 에세이집의 제목처럼 인생여정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대표님께서는 얼마 전에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하셨는데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신다면 무엇일까요?”
들고 있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입을 떼셨다. “인생의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살고 있는 내가 깨달은 것은 것이 있어요. '나중은 없다'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순간에 깊게 빠져서 사는 게 그게 삶이 주는 기쁨이라는 거지요.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내게 가장 큰 행복이었지요. 이런저런 대회에 나가서 받아오는 상장들, 공부도 곧잘 해서 선생님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받는 칭찬과 부러움이 마치 나의 업적이라도 되는 양, 많이 기뻤지요. 내가 아이들을 통해서 대리 만족을 느끼며, 나름 엄마로서의 삶이 보람되고 기쁨이 충만했지만 오래되지 않아서 깨달았어요. 그것이 나의 기쁨이 아니라는 것을요. 아이들이 대학에 간다고 하나 둘씩 집을 떠나고, 혼자 빈 둥지에 남았을 때 꿈에서 깨어난 기분이었어요. 내 인생의 전반전은 내가 나로 살았던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달으니, 어떻게 하면 인생 후반전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되었어요. 시간이 많아진 것도 한몫을 했지만, 독서를 통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게 되었지요. 책이 주는 기쁨이 이 세상 그 어떤 기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길거리에서 돈을 주은 것 보다도 기뻤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기뻤습니다. 어릴 적 단 한 번도 재미나게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고, 즐겁게 읽지 않았으니, 책 읽고 글을 쓴다는 건 거의 고문이었지요. 내가 이렇게 책을 사랑하게 되고 에세이집으로 나의 글들이 빛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표님이 거의 20년 넘게 영어 독서 모임을 리드하고 계신 걸로 들었는데요. 대표님에게 있어서 영어 독서 모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처음 시작 할 때는 별로 큰 뜻이 없었습니다. 그저 영어책 끝까지 함께 읽어보자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었는데, 이렇게 20년 넘게 지속될 줄 몰랐지요. 그저 함께하는 회원님들 덕분입니다. 그분 들이 아니었으면 20년을 한결 같이 매주 모인다는 건 불가능하지요. 해마다 육체는 나이 들어 약해지고 있지만, 우리 모임이 서로의 정신 줄을 꽉 붙잡아 주고 있습니다. 생각이 굳지 않도록 질문으로, 또 서로 다른 견해로 자극을 주는 게 큰 몫을 하지요.”
“독서모임 이외에 또 대표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있을까요?”
“하하하.. 그야 당연히 저와 함께 사는 이 골든이죠. 제가 동물을 무서워해서 어릴 적 외에는 애완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었어요.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되니, 외국에 사는 딸들이 혼자 있는 엄마를 위해 갓 태어난 새끼 골든 이를 이 아이를 우리 집으로 보내줬어요.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은 골든이와 아침, 저녁으로 함께 산책하며 주변 꽃구경도 하고 책도 함께 읽고 그렇게 지내는 것입니다. 큰 일을 이루겠다기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기쁨을 찾는 일이지요. 책에도 살짝 소개했는데, 제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악보 보고 피아노는 좀 칩니다. 하루는 집 근처 양로원 옆을 산책하는데, 큰 창문으로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피아노가 보이더라고요. 몇 날 며칠 고민만 하다가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망설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양로원에 찾아갔지요. 매주 한 번씩 양로원에 계신 어른들을 위해 피아노를 좀 치고 싶다고 했더니, 의외로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일이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찬송가를 치며 그들과 함께 웃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일입니다. 요즘 내가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70세의 나에게 인터뷰> <2060년 1월 호 수록 인터뷰, '로또보다 큰 행복'> 소냐민정
(지난 10월 말, 신 재생 에너지 연구비로 750억을 쾌척하신 안 순옥 박사님과 전진일보 이 진희 기자의 인터뷰입니다)
이 진희기자: 안녕하세요? 날이 추운데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는지요?
안 순옥 박사: 보내주신 차편으로 편안하게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자 : 아무도 선뜻 손 내밀지 못했던 분야에 많은 장학금을 기부해 주셔서 전국이 박사님 이야기로 난리가 난 것 아시지요? 어떤 기분이신지요?
안: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데 감사하고 그리 할 수 있었음에 기쁠 뿐이지요.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약학대학을 세우시고 <성진 제약>을 만들어 학생들의 좋은 실험대가 되게 하신 일화는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게다가 수많은 약품을 출시하여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회사 대표로 바쁘신 남편 고 이 수병 박사의 뒷바라지하기만도 힘드셨을 텐데요. 거기에 박사님 본인의 연구로 평생을 보내시고 이제 편하게 여생을 즐기셔야 하는데 (최소한의 생활비를 뺀) 모든 금액을 여기에 쏟아부으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안: 저 역시 학창 시절, 미국정부의 돈을 받아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고마운 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시카고 대학 연구실에서 10년을 보냈지요. 그때 그런 장학금이 없었더라면 시골 무지렁인 제가 어떻게 저의 꿈을 이루고 여기까지 왔을지 상상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늘 기회가 되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주고 싶었어요. 다행히 남편의 제약회사가 계속 고속 성장을 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요. 남편의 마지막 병상에서의 당부도 장학금 이야기였어요. ( 젊어서 우리가 소망했고 약속을 했던 거였거든요. ) 당신이 떠나고 나면 사업체를 정리하고 필요한 정도만 남기고 다 기부하라고요. 그래서 장례 후에 바로 남편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재단을 설립하고 일을 추진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저나 남편이 부상으로 받은 돈도 한몫을 했고요)
기자: 아무리 두 분 생각이 그렇다 해도 자녀분이 있지 않습니까? 자제분의 생각은 어땠는지요?
안: 아-, 저희 두 아들 역시 여기에 기꺼이 동의했답니다. 두 분이 모은 재산은 두 분 것이니 두 분 원하는 대로 하라고요.
기자: 그래도 이런 마음 쓰기가 쉽지 않을 텐데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두 분이 여전히 존경을 받고 계신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네요. 평소 유전자 연구 말고 어떤 취미가 있으신가요?
안: 바느질을 해요. 그전에 첼로를 좀 배우긴 했는데 그것보다는 시간 날 때 조용히 한 땀 한 땀 꿰매는 일이 맘을 편안하게 해 주고 바느질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그리고 만든 작품을 주위에 나눠 주는 기쁨도 있지요.
기자: 안 박사님은 마치 한 송이 수선화 같으셔요. 말이 없어도 넉넉한 포용감이 넘치시고 무언으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랄까요? 도무지 과학자 같지 않거든요 호호. 혹시 또 다른 취미가 있으실까요?
안: 원래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좀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편이잖아요. 그래서 그 말 듣는 게 싫어서 밴드 동아리에서 드럼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가네요. 아주 오래된 모임인데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모여 연습도 하고 때론 여행도 함께 다니고 있지요. 늘 만나면 웃음이 꽃피는 시간이에요.
기자: 어 이거 완전 반전인데요? 조용한 모습에 도무지 드럼 치실 것 같지 않은데… 왠지 한방 맞은 느낌입니다. 몇 년이나 되신 거예요?
안: 아마 제가 외국 생활 마치고 와서부터니까 25년은 된 것 같네요. 대학 동창으로 이루어졌고 마침 다 이웃해 살아서 서로 만나는데 어려움도 없어요. 종종 연주회도 열고 초청받아 무대에 서기도 하는걸요 하하.
기자 : 그러고 보니 언젠가 잡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시니어 밴드 동아리 ‘럭키 세븐’ 맞죠?
안: 네… 럭키 세븐, 맞아요.
기자: 그분들은 어떤 직업군에서 일하셨는지요?
안: 교수, 작가, 의사, 전업주부, 세일즈맨이었지요.
이제 모두 은퇴하여 더없이 즐거운 날을 누리고 있답니다.
기자: 참 부럽습니다, 박사님. 마지막으로 기부하신 장학금의 수혜자가 될 젊은 학생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안: “꿈을 크고 넓게 펼치라”는 거지요.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두려워 말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며 혹 길이 없다면 스스로 길을 내서 걸어가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기자: 참 12월에 연주회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어디서 하는지 저도 꼭 가보고 싶네요.
안: 이 기자님이 와 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일산 아트 홀에서 해요. 초대권 보내 드릴게요.
기자: 감사합니다. 언제나 기쁨과 감사로 사시는 안 박사님의 환한 얼굴에 저도 덩달아 즐거움에 취했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파랑새의 귀환>최 성은 Sue
2023년 12시 19분 미라에게서 첫 카톡
"언니~ 행복한 새해 되세요~~^^ 2023은 언니가 주인공"
그녀는 나의 첫 직장 입사동기다.
재작년에 20년 만에 다시 만나 점심식사, 커피, 저녁까지 8시간 이상 그동안 살아온 20년 이야기를 나눴다~^^
첫 직장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1년도 채 안된 기간였지만 너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며
"미선언니랑 언니랑은 너무 대조적이었어요".
(미선이는 나의 고등학교동창생)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직장에 입사했다.
그녀는 애교가 많고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난 미선이가 몸을 비비 꼬고,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싫어했다.
연체동물 같아서 똑바로 스라고 한 적도 있었다.
미라, "미선언니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잘 입었고 다리가 이뻤어" "언니는 늘 무릎 밑까지 오는
플레이어 스커트를 입었고", 미선언니는 남자들에게 애교를 많이 아~~~~ 앙 그랬으면
언니는 "흥" 하면서 남자들을 다 아래로 보았다고 하하
30년이 훌쩍 넘어서도 나의 20대의 모습을 간직해 주는 그녀.
나보다 어리지만 너무 똑소리 나는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작년 가을에 아침 산책하다 미라를 닮은 작은 꽃을 보고 시가 떠올라서 써서 보냈더니 답시가 왔다.
제목 :김수정
야무진 입담이라 생각했다.
유쾌한 센스라 생각했다.
쿨한 긍정이라 생각했다.
명쾌한 웃음소리에 시원함이 존재한다.
따뜻한 맘속에 당당함이 서있다.
잔잔하지 않아서 좋은 건 처음이다.
간결하면서도 선 굵은 그녀
크리스털 킴
나의 언니당 ㅋㅋ 나의 답시야~~ 굿밤
또 한 친구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고등학교 때 친구 루미가 2023년 새해 안부를 전하면서
"울 이쁜 수정이 새해에도 행운과 행복, 건강과 평안이 소복소복 쌓이는 한 해가 될 거야~
얼마 전에 너의 학창 시절, 만찢녀 같던 너의 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히
떠올라서 너무 생각났어. 눈처럼 하얀 피부에 까만 생머리에 빨간 코트를 입고 늘 생기 있게
웃던 너의 모습이... 이건 연애편지인가?? ㅋㅋ 수정아, 잘 지내지? 사는 게 바빠 연락도 못하고
지내지만, 늘 맘 한구석에 소중이 숨겨둔 추억 상자 안에, 울 수정이가 곱디곱게 자리하고 있어.
내 맘 속엔 영원한 18살 꽃띠인 모습 그대로"
잊어버린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니, 근데 어디 가서 "만찍녀" 그런 얘기하지 마라,
지금은 몸무게가 두배로 늘어난 눈사람이다.
아직도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해 주는 친구가 있다니 너무 놀랍고 감사하다.
그녀들이 생각나 시를 써 보았다.
<겨울 수정>
[겨울을 닮은
그녀들이
내 곁에 있습니다.
하얀 눈처럼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그녀들
오늘도
그녀들로 인해
행복을 담아 돌아왔습니다
사각사각
내 마음에
어느새 들어와
길을 만든 예쁜 그녀들
겨울이 오면
따뜻한 그녀들이 생각나
하얀 미소를 짓습니다.]
*나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보석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시고 내 곁에 오래도록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은 기쁨 그 이상으로 그녀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겨울수정> GM김수정
10살 때부터 나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는 마크. 비록 중간에 공백기가 있기는 했지만 15살이 된 지금까지 레슨을 받고 있는 오래된 충성 고객님이다. 솔직히 이 아이의 레슨은 나에게 쉽지만은 않았다. 집중력은 물론 참을성도 없어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법이 없었다. 분명 악보도 읽을 줄 아는데 악보를 읽는 것보다 듣고 외우는 게 더 빠르다는 걸 파악한 마크는 늘 나에게 먼저 피아노를 쳐 줄 것을 부탁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곡을 다 외워버렸다. 치고 싶은 곡들은 모두 엄청난 스피드와 테크닉을 자랑하는 곡들 뿐인데, 무엇이든 차근히 배우려는 생각도 마음도 없어 이 아이와의 레슨시간은 영 진도가 나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뿐인가, 피아노 교재의 곡을 치기가 싫어서 일부러 교재 없이 아주 가벼운 빈손으로 수업에 들어올 때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피아노 콘서트날이 되면 모두 이 아이의 연주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테크닉으로 자신의 곡을 완벽하게 소화시켜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었다. 첫 몇 년 동안 마크는 피아노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레슨시간을 너무 싫어했다. 기초이론을 배우는 그 시간이 아이에게는 지루하게 짝이 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나의 잔소리도 한몫 한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이론과 기본 연습 없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아들 같은 그 아이에게 엄마처럼 잔소리를 해댔었다.
“나는 원래 피아노 안 좋아해요. 엄마가 배우라고 해서 배우기 시작한 거고, 엄마가 한번 배우면 1년은 배워야 한다고 해서 배우는 거예요.”
라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반항했던 그 아이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1년만, 1년만 하면서 5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콘서트 때문이었다. 150명이 넘는 관객들이 자기의 곡을 들어주고, 환호하며, 격려해 주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 마크는 레슨을 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매년 새 학기가 시작하면 난 속으로 기도를 했다.
“제발, 마크가 이번에는 등록하지 않게 해 주세요. 마크가 좋은 선생님 만나서 즐겁게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런데 언제나 마크의 선택은 나였고, 이렇게 오늘까지 하루하루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들을 채워가고 있다.
고되게 사춘기를 겪고 있는 마크는 요즘 생각이 많다. 자신이 치고 싶은 곡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직접 곡을 쓰고 싶은 욕심도 생긴 것 같다. 어느 날 마크가 물었다.
“이제 피아노 말고 어떻게 곡을 만들 수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저 진짜 배우고 싶어요.”
난 피아노 전공자가 아니다. 난 작곡을 공부한 적도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 곡을 구성하는 코드진행에 관한 책과, 작곡에 관한 책을 구해서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열심히 공부해 봐”
요즘 내가 이아이 때문에 공부를 한다. 세상에…
그리고 지금 요즘 마크는 자신의 곡을 만드는 중이다. 우리의 레슨시간은 전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은 진작에 집어치웠다. 우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30분 동안 태블릿과 핸드폰을 켜놓고 곡을 찾는다. 물론 하나도 관심 없고 무슨 음악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전자음으로 가득한 게임음악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이 악보들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거지?'라고 고민할 틈도 없이 마크는 번개 같은 속도로 무료 피아노 악보까지 찾아놓는다.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내가 레슨을 받아야 할 판이다. 악보를 프린트하고 우리는 천천히 악보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물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10분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 아이는 아마 5분도 안 돼서 다른 곳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이 아이는 ADHD판정을 받았고 우울증 약까지 복용 중이다. 평균 10 페이지가 넘는 악보를 잔뜩 프린트해 놓고 집중해서 칠 수 있는 악보는 겨우 한 페이지, 많아야 두 페이지가 전부이다. 하지만 내가 이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건 이 두 페이지로 곡을 마감할 때 늘 자기의 느낌대로, 자기의 색깔대로 편곡해서 곡을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10장이 훌쩍 넘는 곡을 처음 2장만 쳤다면, 누가 봐도 완성되지 못한 곡이다. 하지만 괜찮다. 곡을 찾는 동안, 곡을 연습하는 동안, 그리고 제 멋대로 자유롭게 곡을 완성하는 동안 이 곡은 마크에게 완성된 곡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점점 음악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를 보면서 나의 부담감과 고민이 점점 깊어졌다. '나와의 레슨시간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을까?' '이렇게 재능 있는 아이가 좋은 선생님, 능력 있는 선생님을 만난다면 얼마나 놀랍도록 발전할까?' 내가 아이를 붙잡고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마크의 레슨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우리 아이들과 떠드는 마크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월요일 학교 끝나고 레슨 받으러 가는 이 시간이 일주일 중에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야”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마음에 그동안 쌓여있던 이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스러운 마음들이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졌다. 입안에 달콤한 향내만 남겨둔 채. 내 미운오리새끼.
<나의 미운오리 새끼> 패미로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웃음꽃을 피웠다. 국제결혼한 지나가 먼저 나에게 물었다.
"넌 남편이랑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어?"
"나도 이 사람을 만난 게 신기해."라며 연애담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소개팅을 많이 해도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더니 캐나다에 있었네."
지나도 나의 연애담이 흥미로운 듯 미소를 띠며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남편을 데이트 사이트로 만났어. 내 주변에 여기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친구들이 있었거든. 처음에는 6개월을 결제하고 심심할 때나 생각나면 접속해서 몇 명을 하루 데이트만 하고 끝내면서 소극적으로 만남을 가졌어. 다시 3개월을 신청하고 이번엔 꼭 배우자를 만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명에게 적극적으로 쪽지를 보냈어."
지나는 궁금해서 더 궁금해진 지나는 "남편에게 연락 왔어?"라고 물었다. "응. 근데 쪽지 보낸 것도 잊을 때쯤 연락 왔어. 중국 출장 다녀와서 쪽지를 늦게 확인했다고 하더라고. 남편은 쪽지를 늦게 확인해서 미안하다며 바로 주말 데이트를 신청했어."
나는 첫 만남부터 이 남자가 맘에 들었다. 만나기 전부터 데이트 장소 선택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배려심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 따뜻한 사람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만남 장소로 나갔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몇 분 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는 턱수염 있는 사람을 싫어했는데 첫 만남의 느낌은 정말 "산타"였다. 인상은 누가 봐도 호감형에 후덕한 덩치와 턱수염까지…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음식들을 시키면서
영어 못하는 나에게 쉽고 자세한 설명까지 해주면서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들을 권했다. 음식은 정말 맛나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재미나고 즐거웠다. 색다른 데이트였다.
지나는 또 궁금해졌다. "어떤 데이트를 했길래 색다른 데이트였어?" 남편은 무슨 데이트 코스를 준비한 듯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분위기 좋은 바에서 추천해 준 술 한 잔을 하고, 재즈 라이브 바로 자리를 옮겨 칵테일 도 한 잔씩 마셨다. 음식을 듣고 먹고 살짝 춤도 췄다. 나이가 들 수록 남자들을 만났을 때 데이트 당일 무계획으로 나와서 밥만 먹고 헤어지는 경험들을 했었는데 남편이 나의 목마름을 건드렸다. 남편의 이런 준비성은 내가 그에게 홀 딱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첫 만남의 설렘과 행복했던 시간을 이어가고 싶은 나는 긴 연휴 기간을 남편과 함께 했다. 남편과 가는 레스토랑마다 사장님, 웨이터, 웨이트리스와도 친하고 친절한 모습에 '이 정도의 인성이면 됐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남편이 멋져 보였고 센스 있고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스타일이었다.
짧은 기간의 만남인데 만남이었지만 나에게 남편과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만의 인연은 있었다. 내가 3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 우리 부모님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우리 딸이 결혼을 못 하면 어떡하나! 늦게 결혼하면 아이는 어떻게 낳나!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로 우리 부모님도 자식의 늦어지는 결혼이 큰 걱정거리였다. 나다로 유학 간 딸이 어느 날 덜컥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생겼다. 그것도 캐네디언 남자. 나도 외국인 남편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딱히 거부감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외국인 남편을 맞이하게 되다니 당황스럽긴 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번째 외국인 사위라 놀랍지도 않았고 30대 후반은 내가 결혼하겠다는 남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셨다. 반면에 주변에서는 캐나다에서 짧은 연애와 결혼이 흔하지 않다며 나를 걱정했다. 하물며 친동생과 제부도 남편이 대단한 결정을 했다고 말하면서도 축하하는 한 편으로 나를 걱정했다.
지나는 나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결혼을 빨리 결정하게 됐어?"
"다들 결혼할 사람은 확신이 생기고 느낌이 온다고 하잖아. 나도 이 사람이면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돈이 많지 않으면 내가 벌면서 재미나게 살 수 있겠다 싶었어."
사실 남편은 결혼할 생각은 없고 나와 사실혼으로 동거하면서 아기 낳고 살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아기가 넘 빨리 찾아왔고 찾아온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내가 그 당시 유학생이었는데 마지막 학기가 남았거든. 이때 동생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어서 결혼이 더 빨라졌지."
영주권자 이상인 사람과 결혼하고 결혼증명서를 제출하면 국제학생 학비에서 영주권자 이상인 학비로 적용된다는 꿀팁, 2배의 학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9월 결혼 예정일을 5월로 앞당겨서 학비 내기 전까지 서류 준비할 수 있게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남은 인생을 혼자 살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찾아온 남편과 아이가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우리는 5월에 결혼을 하고 했고, 그해 여름 신혼여행으로 그 해 여름 핼리팩스를 다녀왔다. 12월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들을 만났다.
<친구와 연애담> 캐나다 아하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꽃향기가 바람 한 자락에 묻어 바람 부는 대로 동네에 타고 다닌다. 동네를 날아다닌다. 두 아이의 탄생 소식을 이곳저곳에 알리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같은 해에 같은 날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태어났다. 오래전부터 집안끼리 친분을 갖고 지내온 터라 나는 자연스럽게 정범이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형이네, 네가 아우네 하며 말다툼도 하기도 했다. 정범이가 9살 때 열병을 심하게 앓은 후 그 아이는 시력을 잃었다. 앞을 못 보는 불편함에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갔어도 정범은 참으로 밝은 아이로 자랐다. 나는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의 어깨너머에서 배운 글을 정범에게 가르쳐주고 나뭇가지를 같이 잡고 흙바닥에 그려대며 그리며 글자를 익혔다. 봄볕이 좋은 날에는 아카시아꽃꿀을 빨아먹고 진달래 한 송이씩 귀에 꽂고는 동네 아이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산으로 들로 뛰었다. 항상 앞장서서 손을 잡아주고 벗겨진 고무신을 찾아 정범이에게 고쳐 신겨주는 일도 내 몫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리 좋은 하늘과 진달래를 보지 못하는 정범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불행한 친구라 여겨 나는 조곤조곤 지금이 어떤 시절인지 말해주었다. 나의 말 내용과 어우러지게 정범이가 불러주던 콧노래를 즐기며 우리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갔다. 내 말로 정범이에게 보여주는 시절과 어울리는 정범이의 콧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갔다.
바야흐로 남녀가 유별을 두어야 하는 법 때문에 점차 우리의 왕래는 줄어들었고 서로 내외를 하는 사이로 데면데면해진 채 청년이 되었다. 매년 아카시아꽃이 필 즈음이면 서로의 생시가 같음을 기억하고 나는 마음으로 정범의 안부를 물었다. 정범이도 그래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게 흠모하는 건가 생각을 하며 그를 잊지 않았다.
시장터 주막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던 나는 관가에서 뽑는 기녀가 되었고, 궁궐에 있는 각종 내연회에서 춤을 추는 일로 녹을 받았다. 오늘은 왕세자비의 생일 축하연에 아녀자들만 모이는 날이라 남성 악대 대신 관현맹인 악사단이 온다고 한다. 맹인이라 하니 퍼뜩 정범이가 생각났다. 기녀가 된 후로 그를 보지 못했다. 몸이 온전치 못한데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소식 한 장 없는 그가 애석하고 헛헛하다.
붉은 진홍색 휘장 위에 놓은 금박 장식이 햇빛 때문에 더더욱 휘황찬란했고 산해 진미 가득한 잔칫상 주변에는 고을에 내놓으라 내로라하는 미인들이 앉아있다. 연회장 오른편에는 악사들이 가부좌를 하고 방석 위에 정렬해 있다. 시작을 알리는 박이 세 번 울린 뒤 태평소의 울림에 나는 눈을 내리깔고 옷고름을 조신하게 잡은 채로 연회장을 들어섰다. 본격적인 춤이 시작될 무렵 고개를 들어 슬쩍 악단에 곁눈질을 했다. 갓 아래로 드리운 그늘에 이목구비가 수려한이가 가야금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있었다. 워낙 출중한 인물에 악단 중 군계일학이라 다시 보니 어딘가 익숙해 뵈는 얼굴이다.
정범이다. 세월이 그리 흘렀는데도 단박에 그를 알아본 것이 신기했다. 그날의 춤사위는 머릿속에 온데간데없었다.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는 우리의 만남은 각종 연회를 통해 계속 이어졌다. 음악과 춤이 합을 이루는 그 시간이 정범과 함께였기에 나의 춤은 나비보다 가볍고 부드러웠다.
정범은 나의 존재를 알 리가 없기에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슬쩍 아카시아 한 송이를 그의 방석 밑이나 가야금 위에 놓고 지나갔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 말을 함부로 섞을 수는 없어 그것만이 나의 존재를 알리는 가장 최선이었다.
서너 번 아카시아꽃을 두고 아카시아 꽃을 가야금 위에 놓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떻게든 인사할 기회를 엿보던 차에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정범이가 사람을 시켜 나에게 보낸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화선지를 펼쳐 읽었다.
“가슬님 보시오. 소자 정범이오.
두서없이 씁니다.
그대가 정녕 가슬인 게요? 건네준 아카시아꽃향기가 아직도 짓 하오. 진하게 남아있소
어릴 적 동네 친구가 어엿한 처자가 되어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할 정도로 세월이 이리 흘렀구려.
간절히 원하니 이렇게 또 만나지는구려.
나를 알아봐 줘서 참으로 고맙고 기뻤소
이렇게 다시 만날 때 혹여나를 못 알아볼까, 알아봐도 그냥 지나칠까 우려했더이다.
내 곁에 없어도 내 안에 있는 가슬이가 참으로 복된 존재였다오.
그 어릴 적 진달래도, 청명한 하늘도, 고쳐 신겨 주던 고무신도 모두 내 안에 있었다오.
비록 눈은 멀었어도 나는 그것들을 마음으로 선명하게 보면서 살았다오.
참으로 좋은 날들이었지요.
기녀가 되어 궁궐에서 일하리라 했던 어릴 적 가슬이의 꿈을 처음 들은 날 궁중 악사가 되리라고 하고 내 꿈도 바뀌었소. 되리라 마음먹었소. 그렇게 고대했나이다. 흩날리는 꽃잎처럼 춤추는 그대를 마음에 매일 그렸더이다.
혹시 결례가 안된다면 단옷날 오시에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의중을 묻습니다."
편지를 접어 가슴에 품자니 눈물이 툭 떨어진다. 연분홍 치마에 떨어지니 눈물도 연분홍이 된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어릴 적 내게 나의 행복이었던 정범이 드디어 내게 기쁨으로 온 것임을 말이다. 그 기쁨은 서로를 향하며 동행한 길에 염원했던 시간이 만들어준 선물임에 가슴이 벅찼다. 그 기쁨은 손을 맞잡고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동행한 길에서 염원했던 시간이 만들어준 선물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 서 있기를 바라며 단옷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카시아> pinkpen
사랑하는 딸 가비에게,
요즘 날씨가 춥지? 그곳은 영하 20도라고 하던데 아직도 직장에 걸어서 가니? 운전할 때 도로가 언 곳은 없는지 모르겠구나. 속도 내지 말고 늘 조심하고….
오늘도 잔소리로 시작을 했구나. 엄마가 걱정도 많고 잔소리도 많다는 걸 알면서도 서른이 다 된 너에게 아직도 감 놔라, 대추 놔라 한다.
이제 한 달 조금 더 지나면 내 보물 같은 고명딸이 결혼을 하는구나. 마지막 준비를 하느라 얼마나 정신없고 힘드니? 먼 곳에 사는 바람에 도와주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이다.
너를 보내면서 엄마는 마음이 복잡하다. 엄마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해 키운 딸인데 사위라는 이름의 낯선 녀석이 홀랑 들고 가버리는 것만 같아서 남 좋은 일 한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내 딸이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편안하고 행복해야 할 텐데…. 아이를 낳으면 직장에 간 동안 누가 돌보아줘야 하나…”와 같은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마음이 산란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 다 맡기겠다는 기도를 올리곤 하지. 너도 알지? 맡기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더 멋지게 도와주신다는 걸 말이야. 문제는 맡긴 보따리를 자꾸 도로 찾아오게 된다는 거지.
너를 낳았을 때가 가끔 생각나. 오빠를 낳고 둘째가 안 생겨 고민하던 중 너를 갖게 되어서 엄마와 아빠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임신만 하면 유산의 위험으로 고생하던 엄마는 너를 잃기 싫어서 직장도 그만두었단다. 또다시 아기를 잃게 되는 일은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았어. 오빠나 남동생과는 달리 너는 단 20분의 진통 끝에 세상에 나왔지. 나올 때도 딱 한 번 힘주니 나왔잖니? 태어난 뒤 한 달 간은 밤낮이 바뀌어 낮에 종일 자고 밤에 깨어 놀았지만 너는 곧 밤에 안 깨고 내쳐 자기 시작했지. 너는 예쁘게도 밤에 잘 자주어 내가 훨씬 수월했단다.
자라는 동안 먹기도 참 골고루 잘 먹었어. 아기가 나물을 좋아하는 건 처음 봤단다. 손의 협응력이 좋아서 만 두 살쯤 되었을 때는 포도 속의 씨를 젓가락으로 일일이 빼서 먹기도 했는데 아빠는 그때의 놀라움을 지금도 이따금 말씀하신 단다. 미국에서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닐 때는 동생과 같이 다녔는데, 몬테소리 교육의 특성이었는지 선생님들은 너희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활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지. 너는 너의 놀이나 활동을 하지 않고 아직 많이 어렸던 동생을 돌보느라 시간을 보내곤 했어. 누구보다 놀이를 좋아하고 온갖 활동을 즐기는 아이였는데 말이지. 선생님들 대신 네가 동생 돌봄이 역할을 하며 너 자신을 위한 도움은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 후로는 다른 유치원으로 옮겼단다. 너는 어딜 가나 동생을 그렇게도 잘 챙겨서 보는 이들이 놀라며 칭찬을 하곤 했어.
꼬마가 어쩜 그렇게 엄마를 잘 도와주었을까. 엄마가 오빠 공부 봐주고 동생 거두는 일로 바쁠 때면 너는 방안에 흩어진 장난감들을 척척 치워주곤 했지. 유치원에서 어머니들 참관 수업이 있을 때는 수업을 보러 온 엄마를 위해 요구르트며 물, 간식을 들고 와 대접하고 다 먹은 빈 껍질과 통을 쓰레기통에 바지런히 버려 주기도 했어. 그런 때 엄마 마음은 흐뭇함과 고마움으로 가득해졌단다.
너는 항상 적극적이었어. 선생님에게 질문을 받으면 일단 손부터 들고 지목이 된 뒤에서야 답을 생각하는 그런 아이였어. 엄마는 오빠에게 공부 부담을 너무 주었던 경험이 있어서 너에게는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고 어지간하면 최대한 칭찬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단다. 영어 학원에서 글쓰기를 하고 상을 받아왔을 때, 너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어. 시험을 잘 못 보아서 걱정했는데 엄마가 최선을 다했냐고 묻더라고….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됐다고 했대. 맞아, 오빠에게 한 실수를 너와 동생에게까지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는 어지간하면 칭찬을 했고 네가 최선을 다했다면 된 것이라 생각했지. 그래도 너는 언제나 욕심이 많아서 많은 걸 배우고 도전하고 싶어 했어. 악기도 피아노와 플루트를 둘 다 배우고 싶어 했지만 엄마가 말렸지, 하나만 고르라고. 너는 아쉬워하며 플루트를 골랐지만 지금 너의 피아노 실력은 놀랍기만 하단다. 바이엘 100번까지만 배운 네가 혼자 연습해서 너 자신의 노래에 반주를 하는 걸 보면 엄마 아빠는 황홀하기만 하지.
고등학교 때는 수학에 뛰어나서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발견해서 같은 12학년 남학생의 수학 과외를 하기도 했던 것 기억하니? 수학 선생님께서 그 아이 엄마에게 너를 소개하셔서 우리 집에 일주일에 두 번씩인가 차로 그 친구를 데리고 왔었지. 결국 그 아이는 수학 성적이 엄청나게 향상되어서 그 아이 엄마가 정해진 액수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너에게 지불했던 걸 엄마는 기억해.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네가 알 수 있을까?
너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양의 일을 하려고 애쓸 때가 많아서 이따금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모든 걸 다 해내는 걸 보면 놀랍기만 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성당 전례담당을 하며 봉사를 했고 대학에 다닐 때나 대학원에 다닐 때, 그렇게 바쁘면서도 성경공부며 신심단체 활동이며 청년부 활동을 열심히도 했지. 엄마와 아빠에게서 어떻게 너처럼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아이가 생겼는지 모르겠어. 가끔은, 나에게도 그런 면이 있는데 계발이 안 된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줄곧, 너는 네 용돈을 벌기 위한 일을 했어. 위에서 말한 과외수업부터 식당 서빙, 백화점 옷 가게 점원 등 할 수 있는 한 기회가 닿는 대로 일을 해서 용돈을 벌었지. 그런 너를 보면서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살아남을 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심이 되곤 한단다.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한 것 이상으로 너는 신앙생활도, 학업도 훌륭하게 잘 해내었고 친구 관계도 폭넓어서 때때로 네가 친구나 그들의 부모들에게서 얻는 도움을 보며 너털웃음을 웃게 되기도 한다. 네트워크의 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면서 말이야.
너는 그렇게 우리에게 기쁨이 되어 주었어. 너의 오빠나 동생도 기쁨을 주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하나뿐인 예쁜 딸이 주는 행복은 또 다른 차원을 선사하지. 복덩어리를 안고 가는 우리 사위가 너를 많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엄마를 이해해라. 나도 우아하고 지적인 엄마이고 싶어. 사랑은 서로가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것이고 행복의 열쇠가 어느 한 사람에게만 달린 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래도 그 녀석이 애지중지 키운 내 딸을 공짜로 휙 집어가는 것만 같아 지금도 입이 나온다.
가비야, 고맙다, 내 딸로 태어나고 그렇게 잘 커주어서. 네가 하늘만큼 행복하기를 엄마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너를 며느리 삼고 싶어 하던 엄마 친구와 아빠 친구에게 좀 미안하지만 어쩌겠니? 네가 선택한 그 복 많은 사람과 그 가족들 안에서 사랑을 나누며 너처럼 영리하고 신심 깊고 예쁜 아이를 낳아 너같이 잘 크도록 기르렴. 너는 아이도 잘 기를 거야.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긴 편지를 엄마에게 받아보는 건 처음이지? 좀 더 자주 이런 편지를 써줄걸. 너를 보내려고 하니 아쉬운 게 많다. 진작에 이렇게 칭찬을 줄줄이 써줄 걸 말이야. 엄마가 더 따뜻한 엄마가 아니었던 게 못내 미안해.
엄마 아빠의 보물, 우리 가비… 늘 건강하고 행복해라.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하늘이 내린 선물> 빵굽는엄마
기쁨이라는 주제를 받아 들고 그녀는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기쁨이라는 단어는 그녀와 아무 상관없는 말처럼 들려서일까? 그녀의 삶에도 기쁨의 순간들이 이곳저곳에 있었을게다. 그녀는 기쁨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최근에 기뻤던 적이 있었던가?
맞아, 생일날 친구랑 근사한 식사를 했었지.. 친구가 생일이라고 예약하면서 미리 얘기를 해 두었던 모양인지 서버가 접시에 'Happy Birthday'라고 쓰인 치즈케이크에 초를 꽂아 가지고 들고 오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었다. 그런 멋진 생일 축하는 결혼 후 20여 년 만에 처음이었던 거 같다. 이었다.
두 달도 채 안되었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기억 저편으로 잊혔구나.. 그녀는 새삼스러웠다. 힘들고 슬픈 일들이 기쁨 사이사이를 빼곡히 채우기 때문일까… 기쁨을 느낀 일들이 또 있었을 텐데.. 그녀는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맑은 햇살과 파란 하늘, 그리고 멀리 설산이 보이는 풍경을 보며 기뻤었다.
오늘 몇 달 만에 만난 코치님과의 대화도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따뜻한 코치님은 그녀의 힘들었던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었다. 너니까 나니까 그런 사건들 속에서 뭘 해야 될지를 알고 금방 다시 일어나려는 거라고, 무너져 내린 그녀를 인정해 주었다. 우리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계획대로 잘해 보자고, 그리고 일 년 후에 남편으로부터 독립하라고 시원스러운 지지를 보내줬다. 나를 알아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의 존재가 참 힘이 되고, 힘듦 속에서도 기쁨을 주는 거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힘듦 속에서 기쁨을 주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루비쥬
"학교 다녀왔습니다." 책가방을 던지고 어린 지우가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나비가 낮잠을 자고 있는 은행나무 아래다. 언니 오빠가 있는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지우는 은행나무집에 세 들어 사는 호철부부의 외동딸이다.
하교 후 딱히 할 일이 없던 지우는 습관처럼 은행나무를 찾아간다. 볼에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는 가는 것을 느끼며 계단을 올라 빠르게 달려 그곳에 도착하면, 나비는 나무에서 내려와 냐~옹 냐옹 소리를 내며 지우 주변을 맴돈다. 은행의 꼬리꼬리한 냄새가 나비의 털에 묻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어린 지우는 반바지 밑 종아리에 스쳐가는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털의 촉감이 좋아 손을 뻗어 나비를 한껏 안아주었다. 나비의 거칠거칠한 혓바닥이 지우의 손을 핥을 때면 간지러우면서도 따가운 그 느낌이 지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들어 갈지자를 그리며 허공에 흔들면 깡충깡충 뛰며 반응하는 나비가 귀엽고 예뻤다. 나비는 옆집에 사는 누렁이 할머니네 고양이다.
건축을 전공한 호철은 잘 나가던 건설회사의 사장이었다. 호철은 태어나서 한 번도 운전을 해본 적은 없지만, 기사를 두고 회사차를 운영했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계절마다 한 번씩 친목회에서 떠나는 여행을 갈 때에는 호철의 절친인 여섯 명의 친구들이 가져온 차에 가족들을 한 명씩 나눠 태우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친한 친구들이니 그 누구의 차에 타도 불편할 일 없는 호철이었다. 호철의 아내 연이는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라 가족이 한 명씩 다른 차에 나눠 탄다고 해도 목적지에서 다시 만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개의치 않았다. 어린 지우는 엄마아빠 없이 혼자 타게 되는 낯선 차의 냄새가 늘 불편하고 힘들었다. 차멀미가 심한 편이었지만, 행여라도 실수할까 봐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조금만 마셨다. 그래도 아빠 친목회에서 가는 스키장과 눈썰매장은 즐거움과 신남의 연속이었다. 즐겁고 신나는 곳이었다. 언니와 오빠 동생들이 가득한 그곳은 지우에게 파라다이스였다.
IMF라는 말이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호철이 젊음을 바쳐 피와 땀으로 일군 회사는 너무도 허무하게 부도가 났다. 대출을 받아 어렵게 마련한 24평 빌라 안에는 모든 가구에 빨간딱지가 붙었고, 주변에 그 많던 친구들도 그를 떠났다. 호철은 하는 수 없이 연이의 친정에 빈 방으로 세 살 이를 하게 되었다.
이제 하교 후 지우를 반기는 건 아빠의 친목회모임에서 만나 즐겁게 놀던 친구들도 아니고, 하교 후 학원을 가는 친구들도 아니었다. 은행나무아래를 맴돌며 냐옹~소리를 내는 나비가 지우의 유일한 벗이었다.
누렁이네 할머니가 큰 아들집에 아이들을 봐주러 도시로 이사한다는 소문은 작은 동네에 빠르게 퍼졌다. 40년간 동네를 지키던 터줏대감 누렁이할머니의 이사는 동네에 커다란 뉴스거리였지만, 먹고살기 바쁜 호철부부의 귀에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며칠 동안 은행나무 아래 나비가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지우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였다.
호철은 친척들에게도 주변사람에게도 늘 베푸는 속이 좋은 사람이었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살았다. 어린 지우는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오는 아빠 친구들에게 선물도 가득 받으며 자라던 아이였다. 그러던 호철의 회사가 망하자, 사람들은 무섭도록 빠르게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호철의 집에는 큰 상자에 각종 과자가 가득 든 과자백화점을 들고 찾아오는 발걸음이 뚝 끊겼다.
연이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 있냐며 호철을 붙들고 신세한탄을 해보았지만, 오히려 호철의 성질만 긁어댈 뿐이었다.
친목회 모임에서 만나던 친구들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은행나무아래 나비도 온데간데 없어진 그 해 겨울 지우는 몸서리치게 외로운 추위를 혼자 견뎌내야 했다.
동네 슈퍼를 지나던 지우는 진성여고 교복을 입은 언니들로부터 학을 천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교 후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지우는 돼지저금통을 털어 1000장의 학종이를 사가지고 왔다. 꼬리꼬리한 은행냄새가 가득한 은행나무 아래서 고사리손으로 꼭꼭 눌러 학 접기를 시작했다.
996,997,998,999
1000마리를 채 접기도 전에 어린 지우의 종아리에 뜨근한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온몸에 흙과 나뭇잎이 범벅이 되어 새까매진 나비였다. 흰털은 더 이상 하얗게 빛나지 않았지만 지우는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학 천마리가 이루어진 소원에 지우는 소리치며 깡충깡충 은행나무 주변을 뛰어다녔다. 나비의 새까만 털에서 누렁이 할머니의 냄새가 난다. 연이는 돌아온 나비를 보며 고양이가 종종 예전에 살던 집을 다시 찾아 돌아오는 회귀 본능이 있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활짝 웃는 지우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오랜만에 지우의 얼굴에 커다란 웃음이 걸렸다.
<재회> 세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