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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May 06. 2020

동료 J에 관하여

일상 에세이

J와의 첫 기억은 '14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으로 오픈했던 백화점 매장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주말. 윗층 식당가로부터 계속 홍수처럼 쏟아지는 고객층을 맞이한 뒤, 잠시의 짬을 내서 우리는 백화점 현금 정산기를 같이 찾아갔다. 아마도 백화점 직원에게 사용법을 전달 받은 뒤, J에게 인수인계하러 같이 갔던 모양이다.

7월 말의 더운 날이었는데, 백화점 매장이기에 J는 하루 종일 모자를 썼어야 했다. J의 얼굴은 더위의 땀인지, 노동의 땀인지 - 맨질하게 빛났다.

"힘드시죠? 오늘 갑자기 너무 바빠서 - "
"에이 뭘, 이정도 갖고요"

현금 정산기 앞에서 위로랍시고 건낸 한 마디에 J가 보여준 표정은 내가 건낸 어줍잖은 말보다 훨씬 빛나고 멋진 것이여서 기억에 무척 남는다. 그의 '이 정도고 갖고요.'는 진심이었고, 그 뒤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는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1시간 정도 뒤까지 100잔 픽업해가시는다는데, 괜찮을까요?"
"매장에 29cm 고객들을 끌어오고 싶은데, 요런 커피 클래스 진행하면 어떨까요?"
"DDP에서 팝업카페 진행하려고 하는데, 오픈 바이징 맡아주실 수 있으세요?"

그는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  가장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   명이었고, 문제해결능력 또한 탁월했다. 그와 일하는 초반 2-3 동안 J 이야기하면 '되요'라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 우리는 수많은 매장, 팝업카페, 클래스와 이벤트들을 함께 했다. 그와 있으면 어떤 현장에서든 어떠한 이슈가 터지든 든든했다. 우리는 현장에서 설치와 철수를 함께 하며 이른 아침과 늦은 , 강변북로를 달리는 높은 트럭들을 함께 탔다.

사실 J 나는 거의 반대 성향이다.

J 모든 선을 케이블 타이로 쫀쫀하게 (그리고 틈없이) 정리하는 사람이고 모든 것들이 놓일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행사를 시작할   그림으로 설치 순서를 시뮬레이션 해보고 자신의 머릿속 도면에 따라서 찬찬히 물품 하나 하나를 옮기는 사람이다. 몇일 동안 지내는 공간이더라도 수납공간을 확실히 만들어서 지저분한 것들이 안보이게 하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움직이고, 자신만의 호흡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매장 오픈하기 전에는 일주일 전에 미리 미리 물픔들을  주문해놓고 100여개에 이르는 택배박스를 받아서 정리하려고 공사 현장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사람이다. 팀원들과 회의를 할때에도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사람, J.

나는 일반인 중에서도 카오스 성향에 가까운데 J 보기에는 오죽할까.

나는 생각하기보다 몸으로 먼저 움직인다. 듣고 있어도 표정으로 모든 말을 한다. 템포는 급해서 기왕이면 모든걸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한다. 머릿  아젠다들은 항상 이리튀고 저리튀고 있어서 A 이야기를 하다가 B이야기를 하기 쉽상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를  받아준 J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지난  년간 J 나는 비슷할 수도 있는, 하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고민들로 제법 무거운 시간들도 많이 보냈었다. 하지만 J 고민을 내가 대신할 수는 없고, J 또한  고민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J 고민들은 J 나이에 비해, 경험에 비해 과중한 것들이 많았다. 책임감이 넘치는 그의 성향 , 그는 스스로 많은 짐들을 떠맡으려고 했고 언제나처럼 신실한 웃음을 보이며 문제들을     해결해가려고 했지만 - 해결되기 전에 쌓이는 과업, 고민, 팀의 무게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의 웃음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마조마했다. J 힘들어서 그만두면 어떡하지? J 무게를 덜어줄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J  자신의 고민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지 않을까? J 아프면 어떻게 하지? J 지금 행복한걸까? J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J 전쟁터에 비유했던 시간들을 지나 - 우리는  하나의 새해를 맞이했다. 내가 기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J 예전보다 여유로워보인다. J 그래도 제법 관찰했던 시간이 오래 되었으니,  관찰이 사실이기를 바란다.

언젠고 우리가 함께 고생했던 순간들을 안줏거리로 회상하며   여유롭게, 글로벌하게 떵떵(?)거릴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아니,  날들을 나는 J에게 빚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J  날까지 가급적 건강하고, 행복하게, 무럭무럭 성장하며 함께 했으면 한다. J 미래에 올지 안올지 모르는,  이상적인 나날들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의 원천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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