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많이 쳐보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치는게 중요한 테니스
작년 4월경부터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수영을 1달 정도 하다가 매너 좋은 (=불필요한 스킨십을 하지 않고 반말을 하지 않는) 수영강사를 찾는데 피로감이 쌓여갔고, 새로운 스포츠를 물색해보다가 탁구, 축구 그리고 테니스 중에 여차저차하여 테니스를 선택했다. 그 당시에는 테니스가 진입장벽이 제일 낮을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세개 중 가장 높은 종목일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기에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삶의 큰 활력이기에 (앞으로는 더 커졌으면 하는.. ㅜ) 한번 다루어보고 싶다.
테니스는 레슨환경과 플레이(play) 환경이 무척 다른 스포츠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테니스 초심자들은 풀코트가 아닌 반 코트만을 갖춘 실내 테니스장에서 레슨을 받는다. (이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쭉 강습을 이어가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그런 초심자들이 처음 야외 코트에 나가게 되어 실내에서 하듯이 치게 되면 하염없이 폭죽처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라가는 공들을 쫓느라 뜀박질만 하고 오기 쉽상이다. 물론 이때 바람이라는 변수도 새롭게 등장하여 공의 방향과 종착지점을 더욱 예측불가하게 한다. 실내의 반코트에서는 낮은 천장과 벽들로 둘러쌓여있어서 내가 얼마만큼 정확하게 치지 못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데, 야외에서는 실력이 마치 벌거숭이처럼 다 드러나는 것이다.
야외 환경에서는 서브할 때 내가 친 공이 인(In)이 되려면 내가 맞추어야 하는 영역은 적어도 3.5m x 6m이상의 굉장히 넓은 공간인데도 (거의 카페쇼 부스 2칸이네...) 나의 서브 미스 확률은 50%를 넘어간다. 한번 미스하기 시작하면 주르륵 계속 미스하기 쉽상이고 그 때 재빠르게 멘탈을 부여잡고 넣어야 하는데 초보자들이 자신을 남모르게 쳐다보고 있는 3명의 시선들을 느끼며 에너지를 내기는 쉽지 않다. 어디 그 뿐이랴. 서브의 리시브를 받으면 그 공을 다시 인(in) 시키기는 왜 이리 어렵고, 내가 치는 공들은 왜 그렇게 배드민턴처럼 하늘 높이 떠다니는지.
사실 레슨을 할 때마다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시는 피드백은 내용은 거의 같다. 동작이 너무 뚝뚝 끊기니까 부드럽게 이어서 해라. 서브할 때 포워드 스윙처럼 옆으로 하지 말고 위에서 처라. 서브할 때 토스는 좀 더 높이 치라. 스윙을 끝까지 마무리 잘해라. 최대한 자세는 낮춰서 공을 받아라. 자리는 일찍 잡되 공을 치는 순간은 더 빠르게.
선생님의 피드백 중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들은 내 자세에 대한 것들이다. 아직도 서브를 부드러운 연결동작으로 하지 못하며 (스윙 자체도 그렇지만) 자세가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공들은 정말 천정을 향해 날아간다. 매주마다 50개 정도씩 서브 연습을 하고 있는데도 정확하게 들어가는 숫자는 20개 남짓일까.
농구에서도 물론 슈팅을 할 때 자세가 흐트러지면 들어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사실 나는 슈터는 아니었고 주로 리바운드 하거나 패스하는, 수비하는 포지션이었기에 슛 폼을 갈고 닦는 것에 엄청난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농구의 초심자의 스킬셋들은 드리블을 잘하게 되는 것, 패스를 잘하게 되는 것, 공을 다루면서 뛸 줄 알게 되는 것, 레이업 슛을 넣게 되는 것 등 크게 정합도를 요하지 않더라도 인풋을 많이 넣으면 그 때 그때 성취해갈 수 있는 기쁨들이 있었다.
내가 그래도 오랫동안 즐겼던 다른 스포츠인 실내암벽등반 또한 자세의 정확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밸런스를 잘 잡아서 다녔다기 보다는 근력으로 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쿵쾅 쿵쾅 재빠르게 문제 풀이 코스들을 깨곤 했고,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코스에서는 몸의 무게 중심을 어떻게 움직이는게 좋을지 몇번 반복하게 되다보면 쉽게 다음코스로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농구와 실내 암벽등반 모두 수준급은 아니고 초급 정도의 수준으로 오래 즐겼던 것이지만)
사실 이 문제 - 정확한 자세,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문제 - 는 꼭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내 삶 전체를 통틀어 한번도 중요하게 작용했던 적이 없다. 나는 몸을 잘 다룰 줄을 모르고, 생각하는대로 몸을 이끌어 움직이지 못한다. 그 이전에 더 중요한 문제는 생각하면서 몸을 움직이려고 했던 적도 많지 않았다. 몸으로 무언가를 아주 좁은 범위로 정확하게 해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게 중요했던 과업을 해본 적이 많지 않다.
그러기에 테니스는 나에게 새로운 배움을 주는 스포츠이다. 가끔 서브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왜이렇게 빠르게 많이 넣냐며, 기계냐고 놀릴 때가 있다. 수십년동안 정확도 보다는 빠르게 많이 하는 것, 투입량으로 성과를 만들어내려던 나의 습성이 단번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 서브를 넣더라도 좋은 템포로 정확하게 구현해내는 것이 중요한데 왜 나는 30분이라는 시간 내에서 '최대한 많은 공을 뻥뻥 쳐보자'가 KPI인 것 처럼 테니스를 치고 있는지.
16개월차.
아직도 제대로 코트에서 플레이해본 즐거움을 경험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걸 보면 이제 나도 정확한 움직임을 반복하는 연습을 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나보다. 이는 비단 스포츠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많은 것들에도 해당이 되는 걸 느낀다. 그저 많은 것들을 빠르게 80% 정도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더 천천히 가더라도 정확한 패턴을 반복해내는 것. 그걸 더 멋있게 해가는 30대 중반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