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브라더스가 아닌 '결'이라는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올해 11월에 종각역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합니다.
빈브라더스의 기존 매장들은 주로 사람들이 '쉬는', 즉 주말이나 일과가 끝난 저녁에 오기 좋은 상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합정, 하남 스타필드, 신세계 강남, 현대 신도림. Work와 Life(여가)로 이원화하는 구분은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더 여가를 즐기는 생활권에 있었다고 볼 수 있죠.
1-2년전부터 '근로자'들의 '근로생활권'에도 들어가보자! 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어요. 그것도 아주 massive하게 모여있는 - 여의도, 을지로/시청/광화문/종각, 테헤란로 등등. '근로생활권'의 커피 문화는 질적으로 다양하기보다는 주로 양극화되어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다수의 스타벅스와, 다수의 T/O 중심의 저가형 매장.
T/O 중심의 매장이나 스타벅스를 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여가생활권에서는 점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컨텐츠들이 정말 다채로워지는 반면,
근로생활권에서는 그만큼 컨테츠가 다양화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주말은 주중보다 짧고 -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태원이나 을지로의 힙한 골목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길잖아요.
근로생활권이 조금 더 '가고 싶은 공간'이 될 수는 없을까?의 문제 인식을 갖고 서울의 지역들을 탐색하게 되었고 - 열심히 여기 저기 만나고 다니는 동안 - 올해 초에 한통의 전화로 현재의 매장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각역에 국내에서 가장 큰 300평짜리 스타벅스가 오픈한 바로 다음주, 한참 공사 중인 바로 옆 건물의 자리를 보러갔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Go의 의사결정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이 매장은 저희가 처음으로 오픈하는 '근로생활권(오피스)' 매장일 뿐만 아니라
여러 의미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인데요. 가장 큰 배경은 바로 지역의 특수성에서 비롯했습니다.
길 건너에는 보신각 종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고, 우리 매장 앞 길로 들어서면 한국인과 외국인, 꿀 실타래 호객이 넘쳐나는 인사동으로 걸어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위치한 곳은 4대문 안쪽 천년 수도 서울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곳입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반에 팀은 모여서 조금은 개념적인 이야기들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스럽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아가 현재 종각스러움은 무엇일까?"
몇 개월 전, 팀이랑 킥오프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끄집어서 보니, 결국 한국 - 서울 - 종각 모두 일관된 특징을 갖고 있네요.
# Excelsior (더욱 더 높이)
이건 루크가 이야기해준 키워드인데, 가장 강렬하게 공감하는 키워드입니다.
상승에의 욕구.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개인이건 기업이건 사회이건 성장 - 특히나 그것이 지위적으로 드러나는 '상승'에의 욕구가 정말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Excelsior는 뉴욕주의 표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표어로도 정말 손색이 없네요.ㅋㅋㅋ)
인사동이나 종각 인근은 문화지구로 묶여있어서 개발에의 제한이 걸려있으면서도 광화문, 시청에서부터 넘어오고 있는 대규모 빌딩등에 둘러쌓여 더더더 성장, 개발하지 못한 반대급부 압박을 많이 받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Transformity (20년, 30년 전의 나를 지워내는 것)
여러 도시를 돌아다녀도 서울만큼 변화가 빠른 도시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최근 수년간 발전한 도시들을 보면 인구 밀도도 높아지고 못보던 상권도 형성되고, 새로운 지구가 조성이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서울에서의 변화는 무언가 없던 것이 '생기는' 변화라기보다는, '과거의 A가 새로운 B로 대체되는'의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20년동안 같은 모습이면 무언가 창피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끊임없이 외형을 바꾸는 느낌입니다. 부수고 새롭게 재개발하기도 하고, 부수지 않고 리노베이션을 하기도 하죠.
서울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던 시점 청계천을 걷다가 한화건물을 보았습니다.
30년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의 외벽이 새로운 유리 외벽으로 대체되는 모습. 허물을 벗는 것인지 허물을 새로 입는 것인지 잘 구별이 안되는 이 순간. 이 와중에 멀쩡히 건물 내부는 운영중인 모습. 아 -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참 서울스럽다, 라는 느낌이 들었죠.
# 골목길, 끝에 다다르면 만나게 되는
메이가 짚어준 서울 그리고 종각의 특징. 계획형으로 개발된 곳이 아니면 곳곳에 골목들이 많고, 어디가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알 수 없게 끝에 다다르는 재미. 구도심은 여전히 길따라 몸을 맡기면 새로운 곳으로 빠져나오게 되는 (?) 우연의 재미가 남아있는 곳 같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설계는 'Z-Lab'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건축 베이스의 설계팀으로, 한옥 베이스의 재생 건축을 많이 하시고 브랜딩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팀입니다. 예전에 저희 로스터리 건축 설계로 작업을 하고 두번째 합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위 키워드들은 주로 초반부에 이야기를 나누고,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록은 주로 잠재 고객들을 인터뷰한 실제 고객들의 공간 요구사항들을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요. 지금 거의 공사 직전의 도면을 다시 보니 은근히 위의 키워드들이 잘 반영된 느낌이 듭니다.
건물 자체는 굉장히 현대적이고 세련되고 묵직합니다. 어두운 회색 톤의 통유리로 마감되어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부는 전통적인 느낌이 듭니다. BAR 뒷편에 병풍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바닥에는 경복궁 뜰에서 본 것 같은 작은 돌들이 알알이 박혀있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재들은 대부분 나무이거나 돌이여서 자연스럽기도 하고, 1900년대 조선의 일상적인 가옥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구조 자체는 굉장히 직선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바(BAR)가 삼각형입니다. 또한 바의 맞은편에는 대응되는 작은 삼각형의 평상형 공간이 있습니다. 이 대칭형 구분이 가장 큰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밖을 바라보는 벤치 테이블들도 대각선이나 사선 구조를 많이 띄고 있습니다. 안정적이기보다는 역동적이고, 나아가려는 느낌을 줍니다.
입구에서 들어서면 돌 바닥으로 구분된 선을 따라 주문을 하게 되고, 또 그 길을 따라 다른 출구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출구는 명시적이진 않죠.)
전통적이면서도 선형적이고, 자연스러우듯 하면서도 템포가 빠른 곳.
골목 곳곳에는 숨거나 나갈 수 있는 공간들이 있는.
자연돌 같은 소재들이 역설적이게 굉장히 매끈하게 폴리싱되고 또 스텐으로 마감될 이 곳.
우리가 해석한 서울이 부디 좋은 합으로 종각의 Worklife를 밝혀줄 수 있기를,
남은 50여일간 더더 열심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것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