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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Feb 15. 2020

공간이 갖는 의미

그리고 공간과 이별하는 방법

지난 4년동안 정말 작은 8평 남짓의 공간에서 하루에 수백명의 고객을 만나왔던 신세계 강남점이 어제부로 영업을 종료하였다. 백화점의 MD 리뉴얼로 패션 MD가 이제 새로이 공간의 주인이 될 예정이다. 

머신 해체 중인 어스


공간을 떠나보내는 것은 남다른 감상적인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우리 삶의 순간들은 모두 공간적인 배경을 지닌다. 누군가를 만나고 활력을 얻거나, 채워짐을 경험하는 많은 순간들은 공간의 이동과 환기, 그 공간에서 얻는 감각적인 자극으로 인한 경우들이 많다. 그 시간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공간적 배경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감상의 기록 또한 '특정 장소'에서 일어났던 특정 사건의 기억으로 강하게 종속될 수 밖에 없다. 즉 우리의 기억은 장소 종속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장을 정리하는 것은 단순히 장부상의 손익의 문제, 행정상의 폐점 신고의 수준을 떠나 그 공간에서의 누적된 시간들의 총합을 정리해가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대부분의 카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을 맞이하기에 그 시간들을 제대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몇 달의 시간이 주어져도 고객들과 잘 이별하는 법, 다음을 기약하는 법, 팀원들이 매장에 대한 과거의 배움과 기억들을 정리하는 일은 참 어렵기만 하다.  

어제 백화점 마감 시간 이후에 올라갔을 때 다시금 매장이 참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2그룹짜리 머신, 부족한 냉장공간과 수납공간, 식기 세척기도 없었던 참으로 작았던 바. 거기서 어떻게 팀은 하루에 수백잔씩 커피를 잘 만들었을가. 커피만 만드는게 아니라 베이스도 만들고 시그니처 커피도 만들고, 밀려오는 설거지도 빠르게 하고.매번 신세계 강남점을 가면 앉을 자리가 부족하여 항상 서서 바 주위를 배회하며 팀과 짧게 이야기 나누었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영업시간이 끝나고 전체 팀이 옹기 종기 모여서 팀 회의를 하다가 백화점 소등시간이 되어 다시금 불을 켜달라고 한 기억이 떠오른다. 센트럴 시티 메가박스 테이블들을 떠돌며, 아이코닉한 매장이 되어가는 것, 프리미엄 커피를 소개하는 것,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하여 공부해간 내용들을 공유하던 기억들도 생각난다. 좀 더 멋진, 개인화된 유니폼을 만들기 위하여 팀원 한 명 한명 맞춤으로 유니폼 컨설팅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2013년 가을로 기억하는 신세계 강남점 G-Cut 팝업. 빈브라더스 최초의 팝업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오픈하는 과정에서 정말 짧았던 공사기간과 그에 비견할 정도로 길었던 디자인 컨펌 과정도 생각난다. 백화점은 해도 해도 매번 내가 누구를 만나서 어떤 어떤 컨펌을 받아야 하는지 빠트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 과정에서 혹시나 놓치는게 생겨서 오픈 일정이 미루어지지 않을지 조마조마 긴장하며 준비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더 거슬러 올라가 매장이 없던 시절인 '13년도에 했던 팝업이라는 더 희미하지만 강하게 각인된 기억으로까지 간다. 더 작은 공간에서 G-Cut의 신상 의류를 배후(?)에 두고 당당하게 커피를 내리던 젊고 패기넘쳤던 우리. 2년 반 뒤에 바로 그 공간에 매장을 오픈할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그 공간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 또한 예측할 수 없었다. 


접객이 이루어지는 모든 오프라인 공간들은 저마다의 온도를 지닌다. 따뜻한 체온의 느낌이 넘치는 매장, 깔끔하고 잘 정리되어있지만 그 어떠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매장. 잘 정리되어있지 않고 방치되어있는, 차가움이 느껴져서 빨리 나가고 싶은 매장.

복작복작하기 그지 없었던 신강 매장은 4년동안 항상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분간은,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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