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작은 집, 흰색 삼색 그리고 나

사려 깊은 고양이 흰색, 밝은 고양이 삼색과 함께 나아가다

by 서유미

나는 천천히 물 한잔을 더 마신다.


설거지를 할 여력이 오래전에 증발한 나에게는 고맙게도 500미리 일회용 종이컵이 가득 있다. 물을 오래 담아두면 요상한 맛이 나지만, 물을 담아 바로 마시면 될 일이니 편하기만 하다.


얼마 전 날카로운 텃세에 지쳐 순식간에 회사를 관둬버린 나의 시간은 갑자기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처리해야 했던 여러 문서들이 화르륵 불에 타 사라진 후,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은 아쉽게도 더디게만 들어온다.


밝은 백열등을 눈부셔하는 나는 주방의 불을 켜놓고 나머지는 노란색 간접 조명을 켠다.


세 개의 간접 등을 모두 다 켜 놓으면 어둡고 작은 이 집도 마치 크리스마스 요정들이 선물을 준비하는 나무 오두막인 양 그러한 온도로 변화한다.


이곳에서 삼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의 발을 자신의 코로 콕콕 찔러보곤 한다. 그럴 때면 흰색은 타원형 종이 스크래쳐 위에서 흰 털의 보송보송한 배를 보이고 발라당 드러누워 잠을 청한다.


삼색은 어느 때이면 캣타워 위에 누워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배가 폭 들어가도록 한숨을 쉬기도 하는데, 마치 “너는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냥” 하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삼색은 고양이답지 않게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데, 따라 해 보자면 웅 우웅 이히힝 같은 소리들이다. 그럴 때면 나는 야생이라면 너는 적에게 쉽게 포착되었을 거라며, 고양이답지 않다고 훈수를 두곤 한다.


그리고 나는 세탁기 겸 건조기에서 건조된 빨래들을 꺼내 침대에 늘어놓는다.


이 집의 장점은 세탁기에 건조 기능이 같이 있다는 것인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 작은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 빨래까지 말려야 하는 혼란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고양이들이 뛰어다닐 공간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또한 건조기에서 갓 꺼낸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빨래들을 한가득 안아 들 때면 왜인지 안심을 하게 된다.


집주인에게 많이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따듯하게 잘 마른 여러 개의 티셔츠와 속옷과 부드러운 타월을 접으며, 이러니 집에서 입을 옷이 없었지라고 생각한다.


매일 8시에 밖으로 나가는 출근자의 생활을 마무리하자, 집에서 입는 티셔츠와 고무줄 바지 등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예전 같으면 흰 티셔츠 몇 개 정도는 생각 않고 주문했겠지만, 이제는 빨래를 더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메일 보내기 등의 업무를 시작할 때면 흰색과 삼색은 마치 나를 대신해 밖으로 출근이라도 한 듯이 조용해진다.


아침밥 먹기라는 큰 일을 마무리한 이 순간, 이제는 모두 휴식에 돌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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