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은 고양이 흰색, 밝은 고양이 삼색과 함께 나아가다
무민 인형은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을 잃고 나서 주문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손가락의 모습마저도 좋았던 그 사람.
그 사람의 온기가 내 옆에서 사라지자 나는 그 서늘함을 채울 뭔가 따듯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끝내 머물러 주지 않은 사랑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을 통해 아프게 느꼈다.
그 사람이 사는 동네엔 아직도 나의 삼 분의 일이 찢겨 남아있다. 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남아있는 나의 삼 분의 이의 찢긴 자리는 아직도 간헐적인 출혈을 보인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이리도 많은 피를 가진 이였던가 라는 생각을 한다.
매일 밤이면 나는 잠과 나를 연결해 주는 핑크색과 하늘색 두 알약을 삼키는데, 그러고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무민 인형을 더 가까이 가까이 껴안는다. 그럴 때마다 흰색과 삼색은 번갈아 가며 내 베개 옆 머리맡에 있어주곤 한다.
삼색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고양이다.
그런 모습은 삼색이 손바닥만 하던 어릴 적부터 있었던 모습으로 고양이도 개별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흰색과 더불어 삼색은 다리가 짧아 여느 고양이들처럼 책상 위로 바로 뛰어오르지 못한다. 그렇지만 삼색은 내가 책상 의자를 빼놓을 때면 어디서든 나타나 의자를 디딤돌 삼아 책상 위로 뛰어든다.
책상 위는 삼색에게 있어 신묘한 세계이다. 바닥에선 마주치지 못하는 물건들이 잔뜩 놓여있어 새로운 냄새를 맡기에 제격인 곳이다. 그렇게 삼색은 이 작은 방 안에서 모험을 한다. 그 모험은 나의 등장으로 곧장 끝나버리지만 말이다. 삼색이 사람이었다면 마음먹은 무슨 일이든 해 내는 작고 야무진 여자아이일 것이다.
흰색과 삼색은 이 작은 방을 요리조리 같이 달리곤 한다.
뛰어오르는 것을 힘겨워하는 흰색이 주로 바닥을 달린다면 삼색은 의자와 캣타워를 넘어 다니며 흰색의 추격을 피한다. 그럼에도 흰색에게 잡히는 순간 삼색은 몸을 뒤집어 하얀 배를 보이며 놀란 눈을 한다. 그러다 흰색에게 물리는 날이면 엄살인 듯 진심인 듯 꺅하고 소리를 지른다.
고양이들의 서열 싸움을 말려서는 안 된다고 배운 나는 그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다. 너무나도 진지한 두 고양이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관찰자인 나는 피식 웃음이 난다.
흰색이 삼색의 얼굴에 대고 하악 소리를 내는 날이면 삼색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을 바라본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모두 없었던 것인 양 흰색과 삼색은 아침이면 코를 맞대며 점잖게 고양이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