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와 내 작은 손, 둘의 이야기
나는 10년 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그간 회사는 여러 곳으로 바꿔왔지만, 내가 하는 일은 거의 동일했다.
내 일은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그나마의 교류도 메일로의 소통이 전부이다.
어느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같이 업무를 하던 회사 사람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적 없이 퇴사한 적도 있다. 무려 2년이나 그 회사를 다녔음에도.
그래서 내 일은 주로 나와 키보드. 둘 만의 교류이다.
나는 컴퓨터 화면으로 남이 쓴 글과 의견들을 본다.
짧기도 길기도 한 그 글들은 설명서, 기사 등등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다.
남의 글을 유심히 보며, 나는 이걸 무엇으로 옮겨야 가장 어색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내가 배운 여러 표현을 복기해 보고, 구글에서 표현들을 찾는다.
어느 날에는 남은 왜 이런 한국어를 쓴 것인가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그 모호함에 화가 날 때도 있다. 문장에 주어가 빠져 있는 것은 부지기수이다. 목적어를 앞에서 썼으니 한번 더 쓰는 것은 큰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인 지 많은 것이 사라져 있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큰 확대경을 들고는 회색 옷을 차려입고 놓친 단서가 없는지 요리조리 찾는 탐정이 된다. 남은 뭘 말하고 싶었을까. 누구보다도 그 마음과 생각을 가장 잘 알고 싶어 안달이 난다. 마치 새로 만나게 된 남자친구의 아리송한 마음을 알고 싶은 것처럼.
그렇지만 혹여나 내가 실수했을 때, 나에게 돌아올 비난과 심지어는 손해 배상으로 인해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안감이 큰 소파에 엉덩이를 깊게 넣고 앉아있다.
받아보는 이가 내 작업물을 한 번 쓱 보고 책상 위에 던져 놓은 뒤 잊을 것일지라도 어쨌거나 나는 내 일에 열심이다.
내 전전 남자친구는 키보드를 사랑했다.
원하는 키보드를 구하려 당근 마켓을 통해 서울을 가로질러 갈 정도로 그는 키보드에 열정적이었다.
그를 만나며 내가 배운 건 두 가지뿐이었다.
키보드의 종류가 많고 의외로 섬세하다는 것, 그리고 집의 환기가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 뒤에 나도 여러 키보드를 가지게 되었다.
다만 얄팍한 내 자산 때문에 많은 수의 키보드를 집에 모셔 두기는 어려워 몇 개만 가지고 있다.
내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것은 펜타그래프 키보드이다.
키보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펜타그래프 유형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키보드는 숫자 부분이 생략되어 있음에서 오는 간결함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숫자 순서를 자주 바꿔 기억하는 나는, 이 키보드를 사용할 때면 숫자를 몇 번이고 확인하며 손가락으로 하나 둘 숫자를 눌러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작은 손과 몸집을 가진 나는, 작은 이 키보드가 익숙하고 좋다.
이 키보드는 펜타그래프 타입임에도 누를 때 나름의 소리가 난다.
작게 “타다닥”하는 소리.
펜타그래프 답게 누를 때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 손가락 힘이 없는 편인 나에게 알맞다. 또 그 소리는 내가 무언가를 쓰고 있으며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제격이다.
애플에서 만든 컴퓨터를 사용해야 할 때마다 작동법을 몰라 눈물이 나도록 패닉이 되지만, 애플을 좋아하는 나는 애플사의 키보드와 색이며 모양이 애매하게 닮아 있는 이 키보드를 좋아한다.
키보드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화면을 본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접하게 되는 텍스트의 수준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크게 느낀다.
아마도 AI가 쉬운 수준의 문서들을 모두 처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잊을 만하면 AI로 대체될 위험에 놓인 직업 순위들을 알리는 기사가 눈에 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기사를 조심스레 열어보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순위를 확인한다.
어느 때에는, “아 없구나. 내 직업이 여전히 남아 있으려나”하다가, 놓친 부분에 내 직업이 6위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는 작게 좌절한다.
나의 엄마는 처녀 시절 주산학원에서 주산을 배워 경리로 일했다. 나 역시 주산 비슷한 것을 배워 언젠가는 과거가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씁쓸함이 입 안을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