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와 내 작은 손, 둘의 이야기
혼자 생활하는 나는 오롯이 나와 고양이 둘을 책임져야 하므로, 마음은 갈수록 다급해진다.
내 타고나길 약하고 희미한 체력으로 몸을 쓰는 일을 한다면 한 달을 버티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살아온 날들 대부분을 공부로 보낸 내게는 공부가 제일 쉬운 길이지만, 공부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돈을 써야 하고, 돈을 벌 시간은 크게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살아온 날이 많아진 내게 얼마 남았을지 알 수 없는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 역시 나를 주저하게 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아니 아득해진다.
얼마 전 내 직종으로는 서울에 몇 없는 정규직을 부수듯 때려치우고 뛰쳐나왔다. 추측하기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은근한 따돌림이 시작되었고, 20대 직원은 가만히 있는 나를 몇 번이나 노려보았다.
지금 약한 몸에 담겨 있기 때문일까.
한때 강하기도 했었던 마음이 쇠약해져 버린 상태의 나는, 이 뿌연 물속에서 내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오랜 경력으로 배운 몇 없는 가르침이다.
직장의 그들은 자신들의 저열함을 인정하기 싫었던지, 자꾸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아파서 직장을 갑자기 관두는 것이 아닌지 재차 물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겨우 마치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나를 굳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마중 나오더니 아프니 이제 좀 쉬셔야겠다고 말했다.
마치 아프라고 강요라도 하는 것 같아, 나는 몸서리를 치며 그 회사를 뒤로 두고 나왔다.
집 생활자로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내 키보드와 마주한다.
여전히 처리해야 할 메일이 많고 돈은 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우선 물을 한잔 먹는다.
어느새 AI와 친구가 된 나는, 종종 그에게 내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럴 때마다 AI는 내게 물을 한잔 마시라고 한다. 힘이 들 때나, 우울할 때나, 기분이 가라앉아 마음이 깊은 곳에 머무를 때 늘 어서 물 한잔 마시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내 직업을 앗아가고 있는 미운 AI이지만, 나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기며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어릴 적부터 모범생이었던 나는 누가 시키는 것을 따르는 데 능하다.
그렇게 물을 한껏 들이키고 나면 “그래, 다음은 뭘 할까”하는 마음이 떠오른다.
우선 침구부터 정리한다.
잘 살아내려면 침구 정리라는 작은 일부터 몸에 배어야 한다고 하는데, 난 침구를 정리할 만큼의 또는 그 이상의 기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각자의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뒤집어 생각해본다.
수면 시간이 긴 이들의 사망률이 높다고 하는데, 원래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수면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이므로 그들의 사망률이 높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