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작은 집, 흰색 삼색 그리고 나

사려 깊은 고양이 흰색, 밝은 고양이 삼색과 함께 나아가다

by 서유미

이 집은 역시나 작은 방이므로 흰색과 삼색이 어딘 가에서 다투는 모습은 잊을만하면 보이곤 한다.


다만 말했듯 흰색과 삼색 모두 다리가 짧은 고양이어서, 각자가 진지하게 두 발로 일어나 앞발을 휘적대며 상대 고양이에게 큰 타격을 입히려 해도 솜이나 진배없는 그 발들은 소리 없이 허공 휘젓기를 반복할 뿐이다.


다시금 방 생활자가 된 내가 지하철을 타는 일은 거의 없다.

먼 거리를 가는 유일한 외출은 일주일 중 하루, 신경정신과 방문이다.


옅은 베이지 색이 가득한 병원에 들어서면 언제나 고요하게 끝이 울리는 음악이 큰 스피커에서 내 귀로 스며든다.


큰 소파 한 편에 앉아 눈을 감는다.

바쁘게 걸어가 가쁜 숨을 상담 시간을 위해 매만진다.


조용하고 선이 얇은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작은 상담실로 들어선다.


선생님 앞에 앉으면, 내 심장 근처 무언가 진득한 것이 묻어 평소에는 잘 열리지 않는 마개가 퍽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다.

열린 그 공간으로 내가 액체가 되어 흘러나온다.

힘들다고. 힘들었다고. 힘들 것 같다고.


선생님은 상담 중 이해를 돕기 위해 가끔씩 볼펜으로 그림을 그려주곤 하시는데 보통 직선과 중간 크기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그림들을 가만히 쳐다보며 나는 내가 오래 지녀온 짙은 보라색 더미도 그와 같이 일정하게 정리될 수 있다면 좀 더 숨을 쉴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지하철에 오른다.

환승역을 지나 비워진 자리에 앉아 잠깐 졸다 눈을 떠 보니 내 앞에는 반짝이는 은색 불가사리 모양의 목걸이를 한 여자가 서 있다.


불가사리… 사람들은 각자 좋아하는 생명체가 참 다르다.


내 목에는 잎사귀가 네 개 달린 초록색 클로버가 걸려있다.

목걸이 줄이 한 번 끊어져 버리려 했지만, 생각을 바꿔 목걸이 줄을 다시 구해 달았다.


오후 3시, 창 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내 속눈썹에 부딪히며 반짝거려 눈을 감게 만든다.

한 주를 보내며 햇볕이 가장 많이 내 곁에 머무는 시간이다.

어색하지만 반가워하며 그 빛을 맞는다.


내 집의 비밀번호는 내가 나쁜 남자들을 만났을 때의 내 나이다.

최근의 사랑을 끝내고 나이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그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가며 고양이들이 나를 반길까 잠시 기대해 보지만 작은 방 안의 흰색과 삼색은 어디 숨었는지 알 길이 없다.


고요하다.


오늘 저녁 식후 먹을 약은 기존에 먹던 흰색과 노란색에 반달 모양 연주황색이 추가된 세 알이다.

반달 모양의 약을 바라보며 하늘에 뜬 반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 하늘 눈에 띄는 달을 만날 때마다 소원을 비는 나는, 약을 바라보다 한 입에 털어 넣으며 소원을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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