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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Apr 04. 2020

나 자신을 견디는 시간

견딤의 시간, 그리고 견딤을 잊기까지의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나 자신을 견딥니다.”

   -  에밀 시오랑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필가, “언어를 바꾸면서 나는 내 인생의 한 시절과 결별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이 년 간 내가 나 자신을 견디지 못해서 힘들었던 날이 꽤 많았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던 건 상대방을 향한 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안에 묵혀뒀던 분(忿)이기도 했다. 애써 분풀이를 하듯 짜증을 다다닥 내고 돌아서자마자 후회했다. ‘아, 그 말까지는 하지 말걸’, 생각하며 종잇장 구기듯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말다툼을 했던 게 시간이 지나도 진정되지 않고 마음에 걸린다. 순간을 견디지 못해서, 통제할 수 없이 화를 내는 나를 견디지 못해서 자책했던 밤과 새벽이 수두룩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참아낼 수 없는 자신을 견뎌내기 위한 방법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디저트 맛집에 가서 달콤한 케이크를 먹거나,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을 하거나 등등등. 내게 있어서 나를 견디기 위해 하는 일은 혼자 있을 수 있는 환경을 찾거나 만드는 거다. 그곳에서 일정 시간을 무언가 작은 성취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자기 효능감 높이기랄까. 이를테면, 주말 오전 가족들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게으름 피며 한가하고 느릿한 오전 시간을 보낼 때, 그러다 청소기도 돌리고 빨래도 널며 집안일로 분주함을 떨 때, 그 모든 일상의 풍경들을 집에 두고 동네의 한적한 카페로 짐을 챙겨 나오는 것이다. 배터리를 충전한 노트북과 책 한 권, 커피 혹은 차를 담을 텀블러와 펜과 메모지면 충분하다. 읽고 쓰고, 또 읽고 쓰면서 오전 3~4시간을 카페에서 혼자 묵묵하게 있다 보면 나 자신을 견딘다는 기분 자체를 잊게 된다. 견딤을 잊는 것, 휴식이다.     



책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일러스트 / 출처 : 채널예스


책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일러스트 / 출처 : 채널예스



똑같은 활동 혹은 작업을 집 안의 방에서 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할 수 없게 될 확률도 크다. 무언가 하려고 하면 들리는 생활 소음, 곳곳에 쌓여있는 집안일이 나를 계속 멈춰 세운다. 카페로 몸과 짐을 옮겨 오면 좀 더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고, 내가 하려는 휴식에 몰두할 수 있다. 휴식도 몰두해야 한다. 짧게라도 휴식 역시 밀도 있게 보내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주변에서 ‘일을 많이 한 것도, 쉬지 않은 것도 아닌데 뭔가 피곤하고 무기력하다’며 짜증을 쉽게 내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난다는 사연을 본다. 참으로 공감된다. 나 역시 때때로 그렇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일도, 휴식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중간한 환경 속에 나와 내 시간을 견디게 했던 것. 견딤이 지속되는 것. 나 자신을 잘 견딜 수 있게 휴식을 제대로 취하라는 신호다. 나에게 충분한 휴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만들지 못하면 최소한 그러한 환경 설정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고되는 요즘, 비상시 사람들과 거리두기를 하듯, 나 자신이 비상시일 때도 나와 나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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