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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Mar 01. 2019

모두가 나다움을 질문할 필요는 없지만,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북토크



“모두가 나다운 게 어떤 건지 질문하며 살 필요는 없어요. 다만, 묻는 자신이 ‘나 다운 게 무엇인가?’, ‘나를 찾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지금의 현실과 자신 사이에 어떤 이물감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요?”



2월 28일, 혜화역 공공그라운드에서 리베카 솔닛의 신작 『길 잃기 안내서』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북토크 연사는 옐로우독의 제현주 대표였다. 그는 ‘솔닛의 말은 진리’라며 솔닛 덕후(?)의 면모를 보였고, 장내 분위기를 금세 편안하게 이끌었다. 그는 책(솔닛의 전작 포함)에서 발췌한 잠언들을 낭독했고, 북토크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아래에 그 책 속 문장들과 강연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우리에게는 미래의 기억이 없고, 미래는 정말로 어두운데 그것이야말로 미래로서는 최선의 형태이고, 우리는 결국에는 늘 어둠 속에서 행동하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우리 행동의 효과는 우리가 예견하지 못한, 심지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中



“벽의 존재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태를 정당화할 수 있고 문의 존재는 통과할 것을 요구한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미지의 것과 가능한 것, 심지어는 불연속성에 대한 믿음으로서, 어떻든 믿음의 한 형태이므로 위험을 내포한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다른 역할, 실망과 배신을 겪을 위험이 있는 역할을 떠맡는 것인데 (...)“

『어둠 속의 희망』 中



“진실을 말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어떤 사실들과 권위 있고 객관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털어놓는 것이다. 진실은 사건에 있지 않고 희망과 욕구에 있는 것이므로.”

『길 잃기 안내서』 中



나는 솔닛을 책 『멀고도 가까운』을 통해 솔닛을 처음 알게 되었다. 북토크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번 신작 『길 잃기 안내서』는 솔닛이 가장 젊었을 때인 초창기에 썼던 글이고, 『멀고도 가까운』은 현재 솔닛의 가장 농익은 글이다. 그래서일까, 책 『길 잃기 안내서』는 비교적 솔닛의 뜨겁고, 젊고, 싱싱한 언어라는 의견도 있었다.


북토크는 ‘전환’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는 ‘길을 잃는’것을 하나의 전환으로 삼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변화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 해보자!’라는 신념을 가진 제현주 대표에게도 직장을 퇴사하고 길을 잃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때 얻은 앎과 지식을 배움으로 흡수했는데, 이때 솔닛의 책들이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고 했다. “솔닛의 문장들은 대개 논리(도 분명 있지만) 이전에 ‘인식의 문장’ 스타일이라, (저처럼) 섬세하고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는 퇴사하고 받은 질문 중에 명확하게 답변하기 물음들이 곤란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대표적으로) ‘왜 그 좋은 회사를 관뒀나요?’라는 질문에 수십 가지는 되는 퇴사 이유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다. 사람들은 깔끔한 인과가 있길 기대하는데, 정작 언제 질문을 받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대답으로 충분한 것들도 있지 않을까.



‘길을 잃어도 괜찮아’, 라는 위로를 주는 책 『길 잃기 안내서』는 결국 질문과 위로는 돌고 돌아 자신에게 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인 듯했다.

“모두가 나다운 게 어떤 건지 질문하며 살 필요는 없어요. 다만, 묻는 자신이 ‘나 다운 게 무엇인가’, ‘나를 찾고 싶다’라는 생각이나 물음이 든다면, 그건 지금의 현실과 자신 사이에 어떤 이물감이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요?”

허울뿐인 위로보다 각자에게 적절한 물음을 가슴에 던지는 것, 그의 말이 내게 남았다. ‘그렇게 (자문) 하지 않으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은’ 삶,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이후에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30분 정도 더 하다가 북토크는 마무리되었다. 길을 잃는다는 건 뭘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lose yourself’는 ‘자신을 잃다’라는 뜻도 되지만, 잃을 만큼 ‘푹 빠지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방황하며 나의 기질이나 기제를 정립해가려는 노력, 그 와중에 길을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 불안할 수 있다. 불안한 감정이 싫을 수 있다. 다만 책은 말한다. 그런 싫은 감정조차 괜찮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해서 중요한 줄 알았던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길을 잃어보는 것. 책 『길 잃기 안내서』가 길잃기 동반자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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