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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수의사 야화 Mar 21. 2021

수상한 노랑 불빛의 가게

저녁 먹고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수상한 노랑 불빛의 가게를 발견했다. 간판이 없고 간판 자리엔 풍경화 그림이 걸려있다. 어느 날은 노랑 불빛이 약하고 어느 날은 찐하게 환하다. 아마도 조도를 조절하는 샹들리에를 장식한 것 같다. 늦은 저녁 수상한 노랑 불빛의 가게를 관찰하는 건 셜록 홈스가 사건을 해결하 듯 나의 일상에 재미가 되었다. 사람이 한둘은 앉아 있는데 뭐하는 곳일까? 발 돋음을 해서 본 창 안으로는 붉은 술병들이 보였고 이상하게도 입구 창엔 커피 머신 같은 큰 기계가 턱 하니 놓여있었다. 노랑 불빛은 진한 따뜻함이 있었고 섹시한 느낌도 있었다.

한참 궁금할 즈음 지인에게서 그 집은 커피가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프랑스산 설탕을 넣은 카페라테를 추천해줬다. 뭐? 커피집이라고 술과 커피를 같이 파는 집인가? 그럼 원두 콩을 사러 가보자. 휴무인 어느 멋진 날, 햇살 좋은 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용기 내어 가게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콩 사러 왔어요.” “ 네에? 아하 원두요?” 에티오피아 콩을 골라주면서 가게 사장님은 오늘따라 잘 볶였다고 자랑하셨다. 눈매가 선하고 동글동글한 모습의 사장님 목소리가 일단 착하게 들렸고 물어보는 것에 대해 한마디 한마디 정성을 곁들인 대답이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을 하면서 나는 그가 사진작가란 사실을 알아냈다. 더 반전은 전공은 철학이었다. 10년 전 커피 사진을 찍으면서 커피랑 인연이 되었고 술을 많이 안다고 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사진전을 연다고 했다. 한때 사진을 배우고 싶었던 난 궁금증이 많았고 어떤 사진을 찍는지 물어봤더니 일상 사진이라고 했다. 눈이 1초 라도 더 머무는 건 그만큼 맘이 가는 곳이라 파인더로 구도를 맞추지 않아도 뭐가 찍힐지 알기에 그냥 들고서 셔터를 누른다는 명언을 하셨다. 생각의 틀을 깨는 말이었다. 눈을 대고 뭐가 보이는지 그걸로 한참을 맞추는 걸 기본으로 알았던 나에게 본인의 사진 철학을 들려주셨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날의 피로를 씻을 만큼 감동이 되었다. 그날 이후 주변 지인들께 커피 원두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원두커피를 먹는지 일일이 물어보면서 커피 향을 전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향이 남다르다는 별 다섯 개 평가를 해주었고 난 더 신이 나서 매번 커피 원두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좋은 향을 줄 수 있어 좋았고 콩을 잔뜩 사러 가는 1월은 항상 눈이 많이 내려서 노랑으로 시작한 인연이 하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휴일 아침을 집에서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러 내려갔다. 비엔나커피를 정성껏 진짜 비엔나에서 배워온 향을 전해 주셨다. 빨강은 어떤 느낌인지 물어봤다. 빨강 하면 검은색이 떠오른다고 첫 답을 주셨다. 카메라는 검정이고 항상 끈은 빨강으로 산다고 했다. 빨강은 술 색깔이다. 위스키 코냑 등 오크 통에서 숙성되어 자연스러운 붉음이 짙어진 술들 빨강 이미지이다. 빨강은 불 같은 열정으로 느끼지만 맘이 풀어지는 진실함을 만날 수 있는 코냑으로 표현하고 싶다. 지금 나는 술과 커피를 같이 파는 이 수상한 노랑 빛의 가게에서 검정 카메라가 있는 검정콩으로 만들어진 커피에 빠져있다. 커피의 원두 또한 녹색에서 검정으로 색을 바꾸니 사물의 변화, 색의 변화는 아름답다. 

나는 어떤 색의 사람인가? 나는 내가 만족할 좋아할 색으로 바뀌고 있는 걸까? 최근 여러 색을 두고 나에게 자꾸 질문하는 내용이다. 커피 원두를 갈고 물의 온도를 맞춘다. 붉은 동색의 스푼으로 정확한 양의 콩을 넣고 졸 졸졸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맘을 담아본다. 그 위를 뽀글뽀글 올라오는 커피 빵떡과 숙성의 시간.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내려지는 검은 물줄기를 따뜻한 잔에 담는다. 커피 한잔을 만드는 수고스러움에 하나하나 존재의 이유가 빛이 난다. 나에게 노랑 빛으로 시작한 수상한 이 가게는 흰 눈 내리던 하얀색이 덮였고, 붉은 코냑으로 도전할 공간이 남아있다. 검은색 카메라가 있고 검은콩의 향기가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노랑 불빛의 수상한 집은 아무 에게도 알려주기 싫은 나의 비밀 아지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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