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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도 Aug 14. 2019

#6, 술 취해 한 행동은 봐줘도 되나?

경찰, 현장 속으로 6회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5&art_id=20190809144107




처벌의 감경 요소가 아닌 가중의 요건이 되는 사법체계 세워야


현장실습 기간에 일찌감치 깨달은 사실. 술보다 강한 무기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변호사를 고용해도 이길까 말까 한 재판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받아가는 사람을 수도 없이 봤다. 단돈 1800원이면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입 가능한 소주를 마신다면 변호사보다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다니, 이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 아이템인가! 어떨 때는 짙은 회의감이 전신을 에워싸기도 한다. ‘이 주취자를 잡아봐야 뭐해. 어차피 재판에서 무죄로 나올 텐데’ ‘적극적으로 경찰행정을 집행해봐야 뭐하나, 그냥 풀려날 텐데’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성과 감정의 싸움. 결국 술이라는 무기 앞에서는 경찰관도 속수무책이 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근해서 하루라도 주취자를 만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찰관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또 숨을 쉬듯 바닥에 침을 뱉고, 옷을 입은 채 소변을 보거나 순찰차 안에 구토를 하기도 한다. 술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건지, 원래 이런 사람이 술이라는 추진력을 받아 더 날뛰는 건지. 가끔은 이런 주취자가 부러울 때도 있다. 저렇게 한바탕 소리지르고 나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주취상태라는 절대 훈장을 달고 있으니 형량도 높게 받을 일 없고,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한껏 풀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정말 개운하겠다. 박하사탕을 100개 먹은 것처럼 입 안이 시원하겠다. 나라가 해방을 맞은 것처럼 만세를 부르고, 구호 대신 상스러운 욕설을 목청껏 외치며 대낮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끊기 힘든 짜릿한 경험일 것이다. 혹여 누가 상처를 받았더라도 술 때문이다,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어쭙잖은 말로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죄책감 없이 모든 원인을 술에 돌려


술에 취한 채 출동 경찰관에게 욕설을 하고 몸싸움까지 시도하던 남자가 있어 공무집행방해로 현행범 체포를 했다. 다음날 파출소에 찾아와서는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니 합의서를 작성해달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닌가? 술김에 그런 건데 팍팍하게 굴지 말란다. 남자는 계속 파출소에 찾아와 협박 아닌 협박을 지속했고, 그를 내쫓으면 내쫓을수록 우리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술김에 한 일이니 봐줘야 하나? 주취상태인 사람을 현행범으로 체포까지 하다니 우리가 너무 팍팍하게 나간 것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괴감까지 드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까지 해놓고는 두들겨패는 것이 과연 술 때문인가. 1만~2만원의 대리비가 아까워 운전대를 잡는 것이 술의 유혹 때문인가. 남의 몸을 각종 장비를 이용해 스파이보다 치밀한 움직임으로 몰래 촬영하는 것이 정녕 술에 취해 이성을 잃었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 있는 힘 없는 힘 끌어모아 위력으로 상대를 제압한 뒤 성범죄를 저지르고서 술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부끄럽지도 않았을까. 노래방에서 음식을 잔뜩 시켜 먹고는 돈을 못주겠으니 배째라는 당당함은 술이 선물한 태도인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서 합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을 일말의 죄책감 없이 짓밟는 발자국은 술에 적셨다는 이유로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국민들은 이걸 보고도 법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들까.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야 하는 귀찮음을 매번 무릅쓸 준비를 할까. 피해자는 하지도 않은 용서를 법원이 해주는 현실을 보며 정의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저울의 존재에 공감할 수 있을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법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음주 가능한 나이를 하향 조정하여 술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


주취자의 행태도 내가 듣는 욕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길에서 잠든 사람, 물건을 부수거나 사람을 때리는 사람,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 옷을 벗는 사람,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대소변을 보는 사람…. 이 모든 것에 범죄나 사건의 전조증상이 숨어 있다.


술의 문제가 아닌 인간성의 문제


갓 20살이 된 대학생이 있었다. 자신의 주량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나이. 그 학생은 학과 모임에서 이기지 못할 만큼의 술을 마셨는데 문제는 함께 마신 학생들이 그를 두고 귀가해버린 것이었다. 홀로 남은 학생은 술김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로로 걸어가 중앙분리대에서 잠들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비까지 퍼부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던 불길한 새벽. 결국 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학생을 그대로 들이받았고, 그 자리에서 학생의 머리가 터져 온 도로에 골수가 흥건했다. 수박이 터지듯 ‘뻥’ 하는 소리가 주민들의 잠을 깨웠던 그날 새벽의 일은 경찰에게는 특별히 기억할 일이 아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흔한’ 일이다. 길에서 자다가 지갑이나 휴대폰, 귀금속 등을 도둑맞는 일은 부지기수다. 술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지. 파출소 입구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운전자도 있었다. 파출소 민원인 주차장에 차 한 대가 비틀거리며 오더니 경찰관을 보고 다시 돌아가기에 ‘설마 파출소 앞을 음주운전으로 지나가겠어?’라는 의문과 함께 쫓아가 확인해보니 음주운전이었다. 간이 크다고 해야 할지,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단속된 운전자는 펑펑 울면서 봐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신 술이 눈으로 나오는 듯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애써 못본 척하며 음주측정기를 들이밀었다. 이런 실랑이를 한 번만 해도 야간에 진이 다 빠져버린다.


어떻게,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셔야 저런 행동을 할까 싶지만 이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술을 많이 먹었다고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인간 이하의 존재로 살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술은 결코 핑계가 되지 않는다.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하느라 온몸을 적신 경찰관의 상처는 술이 깨고 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부서진 물건은 술기운이 달아나도 원상복구되지 않을 것이며, 파괴된 목숨과 정신건강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술이 감경요소가 아닌 가중적 요건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세 치 혀로 술 때문이라며 중얼거리는 자들이 수치스러움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길 바란다. 자신의 이성 하나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주취자를 무뢰한으로 낙인 찍고 저지른 죄에 술 취한 죄를 덧붙인 죗값을 치르도록 하고 싶다. 술이 무기가 아니라, 범죄자에게 있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 사법체계가 하루빨리 구축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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