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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도 Aug 07. 2019

#5, 늙었다고 바깥으로 밀어버리면 안 되제

경찰, 현장 속으로 5회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08021452061&code=115




어르신에게 직접 들은 ‘늙음, 그 쓸쓸함에 대하여’


순찰을 하면 동네 노인들을 참 많이 만난다. 늙어감은 자연의 순리이고 모두에게는 일상과도 같은 일인데 그들에게서 듣는 늙음은 내가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그러나 씁쓸한 맛이 나는 경험이다. 이 글은 그들이 내게 들려준 말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노인이 내게 했던 그 말들을 그의 입을 빌려 옮겨본다.


사람은 태어나면 온갖 것을 입에 넣는 것부터 배웁디다. 애들 어릴 때는 입에 뭘 집어넣는지 감시하는 게 일이었지요. 먹고사는 게 힘들다곤 하지만 갓난이들한테까지 그 비명이 전해졌는가.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입에 집어넣고 오물거리고 있어. 이도 제대로 안 난 것들이. 그런 애들이 자라서 나 같은 늙은이가 되면 또 입에 음식을 집어넣고 오물거리게 돼. 우리도 이가 없거든. 아기나 죽을 날 받아 놓은 노인들이나 비슷한 점이 퍽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 요즘은 기저귀 찬 노인들이 그렇게 많다잖아. 어쨌거나 이 한 많은 세상에 한 번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늙어가는 건 똑같은데 왜 어느 순간엔 자란다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늙는다고 하는 것이오?


“집집마다 치매 없는 노인이 없소”


늙어도 몸만 늙으면 될 것을 요즘엔 장기들까지 덩달아 늙어간다오. 동네 집집마다 치매 없는 노인이 없소. 하루가 멀다 하고 치매 걸린 노인들이 집을 나가서 경찰들도 고생이더라고. 제정신 아닌 노인들이 어디 갔는지 경찰들이 어찌 알겠소? 전에 동네에 큰 잔치가 열려서 높은 양반들도 오고 가수들도 불러서 동네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고만. 그때 뒷집에 사는 할배가 그 소리에 이끌린 건지, 치매가 갑자기 심하게 도진 것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집을 나간 적이 있었어. 아, 글쎄 할매가 장을 보러 간 사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더만! 평소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양반들이 집 나갈 때만 되면 어찌나 걸음이 빨라지는지 신기한 노릇이야.


뒷집 할매는 눈이 거의 안 보여. 한쪽 눈은 눈동자가 회색으로 변해버렸어. 다른 쪽 눈으로 겨우 앞을 보고 다니는 모양인데, 그런 몸상태로 집 나간 할배를 무슨 수로 찾겄어? 할매의 회색 눈동자엔 투명한 눈물만 뚝뚝 떨어지고 있더만. 결국 그런 것이여. 같은 하늘 아래서도 누구는 뽕짝에 맞춰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는데 그 옆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땅바닥에 앉아 우는 날이 있는 거여. 나이가 팔십이 넘어서도, 구십이 넘어서도 생판 모르는 사람 붙들고 펑펑 우는 날이 있더라고.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파출소에 갔나 봐. 경찰들 도움으로 결국 할아버지를 찾긴 찾았어. 그런데 나는 그 양반이 불쌍하기도 해. 그 할배 치매가 근래 들어 갑자기 심해졌거든. 그러니까 자식들이 전부 이제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자고 지들끼리 얘기를 했나 봐. 그런데 할매는 안 된다고, 바깥양반 불쌍해서 안 된다고 계속 반대를 한 모양이야. 요양병원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지만 대부분 노인네들이 요양병원에 가는 걸 무서워하니까. 아까 뒷집 할매가 엉엉 울다 결국 파출소에 들어가면서 나한테 그러더라고. 이제 바깥양반 찾게 되면 진짜 요양병원에 보내야겠다고. 이 할배가 붙잡혔으니 이젠 꼼짝없이 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어떻게 보면 죽기 직전 마지막 외출이었을지도 몰라. 그 생각을 하니 난데없이 남의 남편이 불쌍해지더구만. 늙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여.


그런가 하면 요 앞집 양반도 갑자기 사라진 날이 있었어. 할매가 테레비를 보는 사이 지팡이랑 지갑까지 야무지게 챙겨 어딜 가버렸다고 난리가 났었지. 거기도 경찰을 부르고 난리가 났오. 할배가 최근에 고향 얘기를 하더만 고향에 갔나 싶어서 고향 집에 전화를 돌려도 안 왔다는 거여. 그 할배는 뒷집 할배보다 한참 뒤에 찾았구먼. 한참 뒤에, 할매 속 다 시꺼멓게 타들어갔을 때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수. 한 손엔 농약 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오더만. 아이고 할배, 어디 갔다 왔오, 농약은 왜 들고 있소, 물어봐도 할배는 몰라.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배가 늙어서 치매에 걸린 자기 모습을 보고 시방 얼만치 충격을 먹었는고, 농약 먹고 콱 죽어버릴라고 샀다 하더라고. 그런데 할배는 치매가 아니겄소? 농약을 사놓고 자기가 농약을 왜 샀는지 까먹어부렀대. 그래서 죽은 금붕어 새끼마냥 눈만 꿈쩍이다가 농약 덜렁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더라고.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소. 앞집 할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남편처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더만.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말 없이 앉아 있었소.


“언젠간 늙어, 젊음이 영원하진 않아”


목숨은 참 잔인해. 아니, 부처도 없는가봐. 쪼매만 더 정신 붙들어주시지, 고것만 버티면 할배는 질긴 목숨 그래도 스스로 끊어서 덜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 않았겠소. 근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 정신을 뺏어가버려. 뺏어가버리긴. 구십이 넘은 할배가 살아생전 뭘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정신을 뺏어가서 더 살게 만들었을까, 부처님은. 우리 노인들에게 남은 인생이 뭐가 의미 있다고.


농약 하니까 생각났는데, 다른 집 영감은 농약을 먹고도 한참을 살아있었다는구먼. 농약을 먹었는데 죽진 않고 아프기만 하니까 자기가 구급차랑 경찰을 불러서, 출동한 경찰 아저씨 발목을 붙잡고 빌었다더라. 제발 자기 좀 죽여달라고. 죽으려고 마신 농약인데 죽진 않고 내장이 타들어 가고만 있으니 제발 좀 죽여달라고 그랬다네. 결국 그 영감은 병원에 실려 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 죽었소. 어찌 이리 잔인하오. 의사 선생이 그러는데, 뭔 장기들이 다 녹아서 죽었대요. 죽을 때까지 그 고통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던 영감이 참 불쌍하지 않소?


난 요즘에 밖으로 나가는 일을 팍 줄였구먼. 나갔더니 온 사방에 한국말이 없어서 뭔 말인지 모르겄어. 온통 외국말밖에 없고 이래서야 노인들이 밥이나 먹고 다니겠어? 그리고 뭔 놈의 사기가 그렇게 많은지. 며칠 전엔 노인당 할매가 웬 문자를 받고 돈이 빠져나갔다며 화들짝 놀라더라고.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인가 뭔가라는데 경찰관들이 와서 설명을 해줘도 뭔 소린지 모르겠어. 세상 어둡게 사는 죄로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니 각박해서 살 수가 없어야.


지금 젊은 사람들은 늙은이들이 성가시겠지. 나라 입장에서도 팔팔하게 젊은 사람들이 씩씩하게 일을 해야 나라가 굴러갈 터인데 뒷방에 늙은이들만 한가득 있어서 골머리가 썩을 거야. 그런데 말여, 그렇다고 우리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면 우리가 없던 것이 되나? 사람은 언젠간 늙어. 젊음이 영원하진 않아. 그럼 다 같이 살 방법을 강구해야지, 속도가 느리다고, 눈이랑 귀가 어둡다고 우리를 바깥으로 밀어버리면 안 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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