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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네가 혼자일 수 없도록

찰리를 따라

by 원도

※ 본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주관적인 시선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지금 이 순간, 난 확신할 수 있어.
우리의 한계는 없다는 걸.




영화 <월플라워>는 영화 추천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답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스티븐 크보스키의 <월플라워>가 원작이며,

작가가 자신의 책을 영화로 각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원작자가 곧 감독인 셈.

우리나라로 치면 독립영화 정도의 예산인데,

시나리오만 보고 엠마 왓슨이 출연을 결정했다는 후일담도 유명하다.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에겐 영화 <퍼시잭슨> 시리즈로 유명한 로건 레먼이 찰리 역을 맡았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찰리 캐스팅이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로건 레먼은 2025년 기준 무려 13년 전(아마 2012년으로 추정) 내한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전현무가 로건 레먼을 인터뷰한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월플라워> 속 찰리만큼이나 실제 성격도 내향적인 로건 레먼에게

전현무가 시크릿의 '샤이 보이'를 부르게 하고 신발을 뺏는 등 의식의 흐름대로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ItXIxaR3Erg?si=pOyXO4oBDoRZ2qWo

출처: 유튜브


로건 레먼이 샤이 보이를 열창하는 부분은 클립으로도 잘려 영어 제목이 달린 채 퍼져나간 걸 보면,

이 인터뷰는 해외팬들에게도 인상이 깊은 것 같다.

시간 나는 분들은 한 번은 보시길. 난 이 영상을 보며 로건 레먼에게 더욱 흠뻑 빠져들었었다.

전현무의 재치 있는 진행이 말 그대로 샤이 보이인 로건 레먼을 만나 빛을 발한 듯.



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이 영화의 진짜 빛나는 캐스팅은 가운데 인물인 패트릭 역을 맡은 에즈라 밀러인데...

미성년자 그루밍 성폭행 사건이 밝혀지며 저 멀리 가버렸으므로 딱히 언급은 하지 않겠다.

도대체 왜 그랬니? 내 청춘을 지켜주었던 패트릭이 이렇게 가버릴 줄이야...


'플래시' 주연 에즈라 밀러가 미성년자를 그루밍하고 마약까지 제공한 혐의로 부모에게 고소당한 후 피해자와 함께 잠적했다 < 글로벌 < 기사본문 - 허프포스트코리아





출처: 네이버 영화


다시, 찰리로 돌아와서.

대부분의 스틸컷이 영어 교과서에 박힌 저작권 없는 사진처럼 보이는데,

이건 영화 속 찰리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 준다.

뒤에 이름 모를 여학생들이 대놓고 수군거릴 정도로 너드(속된 말로 찐따)인 찰리.


영화의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하자면

"찐따 찰리, 더 찐따인 선배들과 마침내 친구가 되다!"로 표현할 수 있지만

찰리가 찐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책과 영화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


원작 소설 <월플라워>는 찰리가 자살한 친구에게 쓰는 편지로 이어지는, 서간체 형식이다.

영화도 중간중간 찰리의 내레이션으로 시퀀스가 전개된다.

로건 레먼의 차분한 목소리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내면 묘사가 참 잘 어우러진다.

다만 영화에선 찰리가 겪는 근본적 심리 상태를 선뜻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책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풀어낸다.

그리고 찰리 본인뿐만 아니라 누나 캔디스가 겪는 일도 찰리를 더욱 음울하게 만든다.

누나 캔디스의 일화가 책에서 울림이 컸는데 영화에서는 대부분 잘려 나가 다소 아쉬웠다.





출처: 네이버 영화


월플라워(Wallflower)는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어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인기가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찰리를 보며 패트릭이 한 말이다.

'벽'의 Wall + '꽃'의 flower가 합쳐지며 벽에 붙은 꽃, 정도의 숙어가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

뇌피셜이든 오피셜이든 참 재미난 말이다.

미국 하이틴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은 진짜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나 또한 찰리만큼이나 내성적인데 뻑하면 파티에(심지어 독서 파티 같은 것도 아니고 댄스 파티)

운전하면서 음악을 크게 틀지 않나...

호주의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말이 떠오른다.

"깃발도 싫고 행진도 싫은 내성적인 레즈비언은 어디로 가야 하죠?"

틈새 홍보) 넷플릭스에 있는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 쇼는 무조건 봐주시길. 정말 명 공연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사진은 찰리가 고등학교에서 온갖 역경을 뚫고 사귄 친구들이다.

사실 이 친구들도 사회적, 윤리적인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딱히 정상적이진 않다.

부유한 환경임에도 도벽이 있는 애, 마약 하는 애, 아빠 뻘 남자랑 자해에 가까운 원나잇을 하고 다니는 애...

이쯤 되면 게이인 패트릭은 지극히 정상으로 보인다. 게이가 무슨 잘못이라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잖아.


모두가 아픈 구석이 하나씩 있는 친구들이 모여 찰리를 결코 혼자 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야기,

이게 영화 <월플라워>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우리의 찰리는 제발 좀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내면의 상처를 이기기 힘들어 종종 황당한 짓을 자행해서 친구들과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이 너무 사실적이라서 나는 보는 내내 <인사이드 아웃 2>의 라일리를 볼 때만큼 괴로웠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럼에도 찰리를 응원하게 된 건, 찰리가 선택한 방식이 너무도 다정하다는 것.

마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내가 선택한 가장 다정한 우주에서 살아남기로 결심한 듯이.


찰리는 샘(엠마 왓슨)의 자해에 가까운 연애관을 들으며 다그치지 않고,

그가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매일 과외를 해준다. 찰리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으니까.

자기가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묵묵히 도와줄 뿐, 샘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심지어 샘을 향한 자기 마음을 고백해야 할 때도 다른 소리만 늘어놓다가,

듣다 못한 샘이 확실히 매듭지어달라고 못 박는 사태까지 만들어내는 우리의 찰리!

난 널 응원해! 나의 어린 시절, 어쩌면 지금 순간까지도 난 지독히 '찰리'스럽게 살고 있으니까.

내가 허둥거리고 서툰 게 모두 너무 다정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참 안심이 돼.

그러니까 제발 잘 살아(제발)!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찰리가 혼자만 끌어안고 있던 비밀을 가족에게 폭로한 이후

진작 이뤄졌어야 할 임상 치료를 시작하며 마무리된다.

영화에선 학교폭력, 성폭력, 교제폭력 등 다양한 폭력을 얼렁뚱땅 청춘의 모습으로 가볍게 그려낸다.

사실 가볍게 드러내든 무겁게 드러내든 폭력 자체의 무게가 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똑같이 무겁게 느껴졌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찰리가 패트릭의 트럭에 타서 함께 도로를 질주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찰리는 짐칸에 탄 뒤, 터널 안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이윽고 터널은 끝나고, 찰리는 차 위에 우뚝 서서 만세를 하며 막이 오른다.

그리고 그 막을 장식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Heroes'!

'우린 영웅이 될 수 있어. 딱 하루 동안만.'


하루면 어떻고, 영웅이 아니면 또 어떠리. 벽에 붙은 꽃일지언정 향기는 영원할 테니까.

찰리의 마지막 대사로 <월플라워> 리뷰를 마무리한다. 너무 좋아서 메모해 두었던 대사다.

동명의 책부터 읽고 영화를 본다면 훨씬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참 좋은 '청춘'의 영화였다.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네가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그걸 알아챈 누군가를 알고 있다거나 해서 그게 더 이상 날 외롭게 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난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알고 있거든.

17살이 되면 16살이란 어떤 건지 다 잊어버리는 사람들도 알고 있고.

언젠가는 이 모든 게 이야기가 되겠지.

우리의 사진은 옛날 사진으로 남을 거고, 그리고 우린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책에서의 이야기가 아니야.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고, 난 여기에 있어.

그리고 난 그녀를 보고 있어. 그녀는 정말 아름다워.

난 알 수 있어. 네 삶이 슬픈 이야기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될 순간이 올 거라는 걸.

넌 살아있어. 넌 일어서서 건물들의 불빛을 볼 수 있어. 널 궁금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어.

또한 지금 달리면서 나오는 노래를 들을 수 있지.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난 확신할 수 있어. 우리의 한계는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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