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를 따라
※ 본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주관적인 시선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기억해라. 당신은 하나다.
<서브스턴스>를 영화관에서 처음 마주한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SNS에서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고 엄청난 흥행을 이어가기에 별생각 없이 관람했다가
한 시간 정도는 귀를 틀어막고 봤던 것 같다(참고로 난 고어물[잔인성이 두드러지는 장르]을 못 본다).
러닝타임도 141분이라 긴 편이다. 90분만 넘어가도 집중력이 흩어지는,
홍상수 감독 영화의 러닝타임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에겐 여러모로 힘든 영화였다.
141분 동안 관객을 가두고 시각적, 청각적으로 두들겨 패는 느낌이랄까.
참고로 이 영화의 관객수는 56만 명이다.
독립영화인 데다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인 걸 감안하면 거의 해리포터 급 흥행이다(MSG 좀 쳤다).
이 영화를 수입한 배급사 '찬란'의 투자자이자 배우 소지섭 씨...
제발 돈 많이 버셨으면. 이런 영화 많이 수입해 주세요.
소지섭 픽 '서브스턴스' 50만↑..청불 독립예술 외화 '4번째' 기록 < 영화 < 문화 < 기사본문 - 케이스타뉴스
<서브스턴스>의 포스터나 예고편에는 '개미친 영화'라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홍보 문구가 계속 등장한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미쳤다'는 말을 사용하는 걸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하기도 하고,
공식으로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런 표현을 채택했다는 게
작품의 수준을 낮아 보이게 만든달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는데...
영화관을 나오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딱 하나.
미쳤다.
<서브스턴스>를 설명할 완벽한 한 단어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영화 시작 10분 만에 다 끝난다.
그리고 남은 131분 동안 관객은
'미친' 선택을 거듭하는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모습을
찌푸린 미간으로 지켜보는 게 끝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배우: 데미 무어)은
'PUMP IT UP'이라는 헬스 채널에 고정 출연하는 유명한 사람이다.
헬스라고 해서 땅끄 부부 채널처럼 전문적인 운동을 하는 것 같진 않다.
그저 쭉쭉빵빵 몸매를 뽐낼 수 있는 의상을 입고
다리를 올렸다 내리는 게 끝.
하지만 그는 50살이 된 생일날, 어리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영화 시작 5분 만에 엘리자베스는 '미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용변이 급하다는 이유로 남자화장실에 간 것이다.
다른 층으로 가거나 좀 참았으면 안 됐을까?
아무튼 남자화장실에서 채널 사장이 자신이 늙었다며 욕하고,
무조건 어리고 예쁜 여자를 찾아내라는 통화를 엿듣게 된다.
비극의 시작이다.
엘리자베스가 선택하는 다음의 '미친' 선택.
성분이 뭔지도, 판매자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약물을 스스로 주사하는 것!
영화관에서 벌떡 이러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제발 그만하라고!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에선 약물을 스스로 주사하는 일이 흔한가?
주사기는 왜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다루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심지어 판매자는 약물 이후 어떻게 된다는 걸 딱히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더 어리고, 더 나은 나'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할 뿐.
어쨌거나 엘리자베스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강제 하차를 당한 이후
더 어려지고 싶은 마음에 '서브스턴스'라는 이름의 약물을 주사한다.
사실 더 어려지고 싶다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연예계에서 퇴출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을 거다.
그게 그거려나?
어린 시절의 엘리자베스가 나오나 싶었는데,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뚫고(표현 그대로다) 새로 태어난 인물은
전혀 다른 인물! 엘리자베스는 이런 스스로에게 '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주민등록제도가 없는 미국 답게 출생지도, 학력도 전혀 알 수 없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수지만 당당히 라이징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서브스턴스 약물을 사용할 땐 룰이 있다.
바로 밸런스를 지켜야 한다는 것. 예외 없이!
7일은 엘리자베스, 7일은 수로 살아가며 서로의 균형을 완벽히 지켜야만 한다.
모두의 예상대로 7일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두 인물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스틸컷은 엘리자베스의 거실 모습인데,
통창 구조인 거실에서 대문짝만 한 광고판이 바로 보인다.
영화 보는 내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엘리자베스가 뻑하면 저 광고판을 보고 이성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제발 커튼 좀 달아 언니!
돈도 많은데 왜 커튼을 안 다냐고! 하다못해 블라인드라도!
아니면 뭐 시트지라도 붙이든가!
아오 증말!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 커튼은 왜 아끼는지!
미국엔 오늘의 집 없냐고!
진짜 이 장면 나올 때마다 환장한다.
엘리자베스가 오래 출연했던 헬스 채널의 제작자 하비(배우: 데니스 퀘이드).
이 사람만 나오면 파국에 파국을 얹는 길로 전개된다고 보면 된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거대한 미국 대륙을 횡단하던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선 분노, 짜증, 폭력까지 유발하는 인물.
신기한 건, 141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하비가 출연하는 분량은 단 7분뿐이라는 거다.
7분밖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삶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우리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 삶에서 단 1%도 차지하지 않는 인물의 등장으로 인해
나는 잘못된 선택을 거듭하고, 감정에 취해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나를 오롯이 지켜줘야 할 내가 앞장서서 나를 공격하는 일이 잦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이유 없이 힐난하고 나의 성과를 깎아내리려거든 기억하자.
저 인간은 7분밖에 등장하지 않는 엑스트라일 뿐이라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오로지 나다. 나의 러닝타임은 나를 위해 흘러가야만 한다.
실제로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
말포이가 등장하는 건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REMEMBER. YOU ARE ONE.
몸에 주사기 꽂을 줄은 알아도
커튼을 달 줄은 몰랐던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미친' 선택을 하며 파국의 길로 뛰어간다.
<서브스턴스>는 해석이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시종일관 세상을 비판하는 커다란 줄기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어리고 예쁜 것에 집착하는 미디어와 세상의 시선,
여자는 무조건 그래야만 한다는 남성적인 시각,
과도한 노출을 고집하는 미디어 등을 일관되게 비판한다.
감독 스스로도 50대를 맞이하며
TV 속에서 50대 여성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으로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보디 호러’”[‘서브스턴스’ 감독 인터뷰]
엘리자베스가 사는 집은 정말 그림 같다.
유럽의 고고한 도서관처럼 모든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고
복도가 어찌나 긴 지 화장실까진 한참 뛰어가야 한다.
거실은 또 어떻고?
정신을 갉아먹는 광고판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도시 전망이 한눈에 보이는 통창 구조다.
이 모든 걸 다 가졌음에도 엘리자베스는 '더 나은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진다.
더 나은 나, 더 어린 나는 무엇을 위한 허상일까.
엘리자베스는 어쨌거나 평생 미디어에 노출되며 살아온 여성이기에,
그런 직업을 갖지 않은 나와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
영화를 본 후 내가 느낀 엘리자베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외로움이었다.
대궐 같은 집에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 친구 하나 없이,
전화로 일상을 나눌 가족 한 명 없이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 제작자와의 전화만 붙들고 있다.
TV를 보며 시간을 죽인다.
지금의 나에게 삶이 주어진다는 걸 견딜 수 없다는 듯 처절하게 망가진다.
외로운 건 '더 나은 나'라는 수도 별 다를 바 없다.
수에게 접근하는 남자는 많지만
수가 위험에 빠진 것 같은 상황에서,
그 남자들은 모두 뒤도 안 보고 도망친다.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않고 서로의 젊은 육체만 탐한 인스턴트 관계의 결말이다.
거울을 볼 시간에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누군가의 얼굴을 1초라도 더 봤다면
엘리자베스의 파국은 막을 수 있었을까.
나에겐 그의 외로움이 너무 처절해서
피가 튀는 장면에서도 슬프기만 했던 영화였다.
기억해라.
넌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