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마 쇼핑
9월 12일 월요일
눈을 뜨니 5시. 새벽이다. 이불속으로 다시 파고들었지만 소용없다. 테라스에 나가 멀리 동터오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침 산책에 나섰다. 더운 나라 몰타는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고 했는데,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 거리가 휑하다.
방향 감각을 내려놓고 동네를 헤매보기로 했다. 바랜 노란빛으로 채워진 골목은 거칠지만 따듯해 보인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라임스톤’의 미감인가.
라임스톤은 해안가에서 조개나 소라 껍데기, 생선 뼈 등이 굳어서 생긴 석회암의 한 종류로 몰타의 건축물은 거의 라임스톤으로 짓는다. 물론 라임스톤이 몰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와 아랍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나라들에도 라임스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의 빛깔은 다른 느낌이다. 분명 몰타를 더 ‘몰타답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또 하나 몰타의 라임스톤을 빛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바로 벽에 볼록 솟아 있는 발코니였다.
갈라리야 말티야(Gallarija Maltija)라고 불리는 나무 발코니에는 초록, 파랑, 빨강, 노랑, 강렬한 원색부터 분홍, 하늘색의 파스텔톤까지 다양한 빛깔이 입혀 있었고, 다채로운 색상들은 라임스톤 벽에 유쾌한 리듬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발코니는 아랍이 통치하던 시절,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이 바구니를 내려서 물건을 사도록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단다. 마침 한 할머니께서 골목 어귀에 서 있는 과일 트럭을 부르더니 바구니를 내려 과일을 주문한다.
낯선 풍경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이방인이 신기했던 걸까. 할머니 곁에 있던 강아지가 발코니에서 빼꼼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손을 흔들자 낯선 사람을 보면 짖어야 할 강아지가 꼬리를 흔든다. 어쩐지 낯선 나라 몰타가 사랑스러워진다.
골목에서 빠져나와 노천카페에 앉았다. 브런치를 시켜놓고 맑은 하늘과 맞닿은 건물들과 그 아래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한 달간 하고 싶은 일들을 손꼽아보았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고, 바다에도 풍덩 빠져보고 싶고(수영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재래시장도 가고 싶다.
그렇게 위시리스트를 헤아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이곳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입고 있는 옷도, 옷장에 있는 옷들도, 고심 끝에 들고 온 수영복도 모두 검은색으로 근엄하다. 가까운 쇼핑몰로 달려가 철 지난 여름옷들을 찾아 헤매 간신히 분홍색과 초록색 원피스, 챙 넓은 모자에 주홍빛 비키니까지 준비할 수 있었다.
옷장에 새 옷들을 걸어두고 보니 마음이 복잡하다. 이게 무슨 도전인가 싶다가도 마음이 쪼그라든다. 그래도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와 친해져야지. 바다에 빠지고, 바다 내음을 실컷 맡아야지. 해산물도 실컷 먹어야지.
참치와 올리브오일, 레몬즙을 사들고 숙소로 가는 길, 언덕길을 오르는데 어제는 보이지 않던 꽃이 환하다. 진한 분홍빛 꽃, 지중해 꽃인 부겐베리아다.
그래, 지중해의 빛깔이 저 정도는 되어야지.
몰타에서 맞는 둘째 날, 나는 변장 아니 변신의 시작을 예감했다.
* 관광지
<식료품 살 곳>
몰타에서 장을 보러 가려면 리들(Lidl), 웰비스(Welbees), 그린스(Greens) 세 곳을 주로 찾는다. 어느 마트에 가나 고기와 와인이 저렴하고 질도 좋다. 과일도 맛있다.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납작 복숭아를 비롯해 지중해 과일로 과육이 짙은 보라색을 띠어 블러드 오렌지라 불리는 모로 오렌지, 적포도, 청포도, 애플망고, 자두, 파인애플, 레몬 (사과처럼 커다란) 등이 싱싱하고 값이 싸다. 냉동식품은 미라클푸드. 쌀, 라면 등은 웬저우 아시안 마트를 이용한다. 동네 곳곳에서 트럭도 만날 수 있다. 몰타에는 길가에 트럭이 많은데 채소, 과일을 팔기도 하고, 도넛이나 꽃을 팔기도 한다.
<더 포인트 쇼핑몰 The point shopping mall >
몰타에서 가장 큰 쇼핑몰. 슬리마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Tigne Point 반도에 위치해 있다. 지하까지 합쳐서 총 4~5층으로 건물 하나에 브랜드들이 모여 있다.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키즈카페도 운영 중이다. 몰타의 최대 쇼핑몰이라지만 1시간 정도면 여유롭게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규모다. 한여름에 시원하고 쾌적해 뜨거운 햇볕을 식히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