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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ul 24. 2020

나라서 다행이다.(1)

수술 이야기 1

가족 중 암으로 돌아가신 분 계세요?


의사의 첫마디였다.

“아니요”

“2년 전엔 없었던 종양이 생겼어요. 크기도 크고 모양도 안 좋아요.”

이게 무슨 말일까? 들으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의사가 웅얼거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암 수치를 보는 피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본 다음 CT 찍어야 할 거 같아요.”

병원을 나와 주차장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겨우 운전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온통 무서운 이야기뿐이다. 발견되면 대부분 4기, 이미 위, 복막, 임파선 등에 전이된 상태로 발견, 5년 생존율 5%. 난소암.


피검사를 기다리는 그 일주일은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암’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출근한 동안은 일하는 간간히 한숨이 올라왔다. 집에 오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울컥, 무언가 정제되지 않은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목을 통해 눈으로, 코로, 입으로 흘러나와 아무도 없는 순간엔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모든 부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무수한 암환자들을 검색으로 만났고 그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생각하기조차 무섭지만 만약 암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와 더불어 딸아이와 엄마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아이는 엄마 없이 어떻게 자랄까? 힘들고 탈 많은 사춘기를, 입시를, 연애를, 결혼과 출산을, 양육을 어떻게 견디어 낼까? 엄마는... 딸을 먼저 보내고 나면 우리 엄마의 노년은 온전할 수 있을까? 우리 키우느라 평생 고생한 엄마의 노년은 어떻게 하지?

이 두 사람이 매일매일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사실 남편은.... 어떻게든 살아갈 거라는 확신 아닌 신념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야기하니 남편은 이 부분을 섭섭해했다. 어쨌든 아이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질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누구를 걱정하냐며, 아직 젊은 나 스스로를 걱정하라고 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보았다. 예약 편지를 써서 앞으로 수십 년 전송해야 할까? 미리 동영상 편지라도 잔뜩 만들어 두어야 하나? 선물을 미리 예약할까? 남은 사람들을 위해 뭘 해야 하지? 이런 영화나 책에서 본 별의별 이야기들이 맴맴맴 빙글빙글 돌아가다 다시 대성통곡으로 이어지고...... 그 일주일은 정말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암 수치는 안 좋은데.....


“제가 암이라고는 안 했잖아요? 아직 아무도 몰라요. 일주일간 별 생각을 다 하셨군요?”

“모양도 안 좋고 크기도 안 좋다고...”

“그래도 이것만으로 암을 확진할 수 없어요. 종양을 제거해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CT라도 먼저 찍어 봐야 하나 언제 시간 되실 때 찍으실래요?”

한숨도 쉬고 모니터를 몇 번이고 들여다 보고 볼펜을 딱딱 거리며 책상을 치는 뭔가 어수선한 의사의 말들....

“큰 병원으로 갈게요.”

“그러실래요? 그러면 전원 신청서 작성해 드릴게요.”

이 말을 하는 의사의 말투는 이제껏과 달리 날아갈 듯 가볍다. 뭔가 어려운 숙제를 떠넘길 절호의 찬스라는 듯. 자신 없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느낌. 그냥 뭐든 확신이 필요했던 나만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또 일주일 후 3차 병원으로 전원해 또 다른 의사를 만나러 갔다. ‘의사도 경험이 있어야지, 경험이 중요해.’라는 생각만으로.

“수치도 안 좋고 모양도 안 좋고...”

“......”

“그래도 이렇다고 다 암은 아니니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수술해서 종양 제거한 후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시간을 두면 안 돼요. 빨리 수술 진행합시다.”


그렇게 몇 차례 방문 후, 수술 날짜를 잡고 처음으로 ‘병가’라는 것을 신청했다.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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