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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ul 24. 2020

나라서 다행이다.(2)

수술 이야기 2

<이전 이야기>


코로나 시대, 첫 외박은 입원?!


수술 날 아침, 여행 갈 때처럼 이것저것 짐을 챙겨 입원 준비를 하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복강경 수술 예정이었고 2박 3일 일정이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내 도시를 벗어나는 일이 병원 방문이 될 줄이야, 첫 외식이 병원밥이 될 줄이야, 첫 외박이 입원이 될 줄이야. 상상해 본 적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미루면 안 된다는 의사의 강한 말투에 억눌려 어떻게든 밀고 나갔다. 코로나 시대에 수술과 입원이라니......


11시 30분 수술 전 피검사를 위해 피를 뽑고 수술 준비실 앞에 도착했다. 이전엔 수술전 검사를 위해 8개의 시험관에 피를 뽑았고 당일엔 수혈이 필요한 상황을 대비해 1개 뽑았다. 수십차례 경험을 해 보니 피 뽑는 일도 익숙해 지더라. 매번 이렇게 반복적으로 피를 뽑는 저들은 어떨까.... 생각도 하게 돼고. 수술 준비실에는 천천히 들어가자며 남편이 자꾸 시간을 미룬다. 우리는 수술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보호자 대기석에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멍하고 무덤덤하게 실감하지 못하는 나보다 남편이 더 무서워하는 느낌이었달까.....


마취과 의사를 만나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듣고 문진표를 작성하고 각종 동의서를 작성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묶고 모자도 뒤집어쓰고 나니 영락없이 환자가 됐다. 지금껏 통증은 없었으므로 환자가 된다는 실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랑 헤어져 여러 개의 준비실을 거친 후 배정받은 준비실, 수액 바늘 꽂는 곳으로 갔다. 다들 링거를 맞으며 의자에 앉아 대기 중. 모두들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처음 만난 낯선 풍경들....


수액 줄 잡을게요.


처음 찌른 곳은 에러. 수술 중 수혈을 할 수도 있으므로 바늘도 두껍고 길어서 진짜 아픈데 마음은 더더 아픈데 이것 조차 이렇게 어려워서야. 이팔 저 팔 보더니

“제일 아픈 곳이지만 손등에 잡을게요. 마땅한 곳이 없어요.”

손등으로 길고 두꺼운 바늘이 쑥 들어간다. 반창고들이 사정없이 감긴다. 아프지만 이건 아무 것도 아닐거라 생각하니 참아지더라. 조금 후 수술실로 가려고 하니 침대에 누우란다. 걸어서 침대에 누웠다.

“수술실은 많이 추워요. 두꺼운 이불 덮어 드릴게요.”

따스한 남자 간호사분의 말에, 덜덜 떨던 발 위로 덮이는 포근한 모포의 따스함에 참았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제야 뭔가 실감이 나면서 꼭 잡고 있던 의식의 흐름이 툭하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넘치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복도를 지나 눈부시게 밝은 수술실에 도착했다. 다들 분주하고 바빠 보인다.

“마스크 벗으시고요. 혈압이랑 심전도 체크하는  것들 연결할게요.”

이런저런 장치들이 순식간에 몸에 감기고 붙여지기 시작한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순간이구나. 그냥 뭐든 다 맡겨야 하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마취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뭔가 어수선한 꿈을 꾼 것 같다. 눈을 떠보니 1시간 남짓 예정이던 수술은 3시간이 훌쩍 넘긴 후에야 끝났음을 알게 됐다. 궁금했으나 기력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목이 너무나 아프다고 중얼거린 거 같다. 마취로 기도 삽관을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다. 다시 한 시간쯤 잠이 들었던가.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시간이 한 시간 더 지나있었다. 입원실로 간다고 한다. 어딘지 모를 긴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지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와는 달리 직접 침대에 누워 보니 어지럽고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순간이었다. 남편의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흘렀다. 나중에 들어보니 수술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남편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막상 수술을 하니 뭔가 심각한 종양이어서 시간이 지체된 것일까 봐 안절부절못했던 모양이다. 수술 지연 사유를 듣지 못하고 어수선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복강경으로 예정되었던 수술이 장유착으로 종양을 찾기 힘들어 외과 의사가 개복을 해 먼저 붙어있는 장들을 정리를 한 후에야 종양을 제거했다는 이야기를 한참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야? 참 운도 없다.’

수술 전 날 이런저런 설명 중 복강경이지만 장유착이 심할 경우, 예상과 다르게 종양이 다른 쪽에서도 발견되거나 클 경우, 악성으로 의심될 경우 등은 개복으로 진행된다는 항목에 내가 사인을 했던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다 하는 사인을 했을 뿐이라고 무심하게 들었던 터이다.


암 아니면 뭔들...


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간단한 수술일 거라 했고 그럴 거라 생각했다. 이 순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얼마나 아픈지 침대에 누워 다리는 세우는 일, 무통 주사위 버튼을 누르는 일 조차도 힘든 지경이었다.


수술이 복잡해졌으니 금식도 길어지고 입원 일정도 길어졌고 또한 남편의 월차도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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